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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Aug 31. 2018

언니네이발관의 음악적 출사표

후일담

이 글은 멜론, 한겨레신문, 태림스코어가 공동기획한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 90위~81위 중 90위를 차지한 언니네이발관 2집 [후일담]에 관한 제 사족입니다. 현재까지 20장이 풀린 '명반 100장'은 앞으로 4주간 매주 화, 금요일 멜론을 통해(모바일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10장씩 역순으로 공개되며 책읽기 좋은 10~11월 사이엔 단행본으로도 나온다고 하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언니네이발관은 데뷔작 [비둘기는 하늘의 쥐]를 내고 델리 스파이스, 크라잉 넛, 코코어, 노브레인 등과 함께 한국 인디 시대를 열었다. 그것은 미국에서 너바나가 헤비메탈 시대를 저물게 한 일과 본질적으로 같았고 오아시스와 블러,버브와 펄프가 90년대 브릿팝 시대를 열어젖힌 것과도 사실상 같은 맥락의 일이었다. 언니네이발관 1집은 이후 한국 최초의 기타팝 앨범이라는 오해와 한국 최초의 모던록 앨범이라는 평가를 동시에 받으며 여태껏 대한민국 전설의 인디 앨범으로 남아있다.



98년에 발매한 이 앨범 [후일담]은 1집에 참여했다 잠시 밴드를 떠났던 정대욱(줄리아하트, 바비빌, 가을방학을 이끄는 정바비의 본명)이 연세대학교 합격 후 다시 이석원과 뭉쳐 내놓은 작품이다. 이석원에게 98년은 당시 사귀던 사람과 결혼 직전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등 무척 힘든 시기를 보내던 때로, 그 아픔은 자살 모습을 담은 재킷 그림과 뚜렷하지 않은 가사, 명징한 멜로디에 구구절절 담겨있다. ‘순수함이라곤 없는 정’이라는 제목과 ‘너의 비밀의 화원’ 속 쓸쓸한 피아노 연주 등은 그 사실을 간접적으로 전한다.



[후일담]은 이석원이 작품으로서 앨범을 지향한 최초의 앨범이었다. 1집이 자작곡으로 채운 무명 밴드의 자기만족이었다면, 2집은 더 발전되고 세련된 자작곡들로 대중을 설득해보겠다는 언니네이발관의 음악적 출사표였다. 그리고 거기엔 이석원만큼 중요한 정대욱이라는 기타리스트 겸 송라이터가 있었다. ‘유리’에서 ‘실락원’을 지나 ‘꿈의 팝송’까지 이어지는 동안 정대욱은 앨범 초반부를 마치 자신의 기타 톤 실험실로 여기듯 나풀거리는 이펙터들의 향연을 들려준다. ‘어제 만난 슈팅스타’에서 터뜨린 기타 디스토션도 그중 하나다. 정대욱은 그 안에서 비치 보이스와 틴에이지팬클럽, 스피츠에 빚진 자신의 감성을 마음껏 드러내며 [후일담]이 국내 인디음악 역사를 대표하는 음반으로 남는데 일등공신이 됐다.



그러나 사실 [후일담]의 후일담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후일담]은 발매 당시 평단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다. 그 시절 평단의 역할은 대중 취향을 지배하는 요즘 독과점 음원사이트의 위치와 비슷한 것이어서, 평단이 외면하는 비주류 음악은 그 내용물이 아무리 훌륭해도 어쩔 수 없이 사장될 수 밖에 없었다. 이는 헤비메탈을 즐겨듣고 60~70년대 팝록 음악을 최고로 치는 당시 평론가들의 보편적 음악취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조이 디비전보다 주다스 프리스트가 위대하고 존 레논과 폴 맥카트니가 반신반인이라 생각하는 그들의 보수성이 언니네이발관의 참신한 열정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후일담]의 초도물량은 밴드가 2집 활동을 끝내고 4년이라는 긴 휴식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시장을 떠돌고 있었다. 다행히 90년대 후반에 20대였던 현 40대 평론가들의 펜끝, 혀끝을 통해 [후일담]은 기사회생 할 수 있었지만 당시 이석원은 이 음반을 몰라준 세상으로부터 크든 작든 상처를 받았음이 분명하다. 정대욱이 이 음반을 끝으로 밴드를 떠난 것 역시 앨범의 실패와 연관이 없다 할 순 없겠다.



이 앨범이 모두에게 좋게 들릴 수는 당연히 없다. 보편적 취향이란 허구일뿐더러, 취향의 획일화는 기본적으로 지양되어야 한다. 평단의 평가와 듣는 자들 각각의 취향 역시 한몸이 아닌 별개다. 그럼에도 이 앨범을 ‘명반’이라 부르고 싶은 이유는 그 시대에 국내에서 이만한 록 앨범이 없었고 지금도 이만한 앨범은 찾기가 어렵다는데 있다. 연주곡을 꺼리는 한국 대중을 감안할 때 곡 사이사이에 연주곡을 넣은 트랙 디자인은 아마 밴드 입장에선 모험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했고 그랬기때문에 음악에는 진심이 담길 수 있었다. 시간은 조금 걸렸어도 그 진심은 결국 통했다. 음악이 좋아서였다.





추천곡 ‘어떤날’

들국화의 곡이라 해도 좋을 인트로 피아노 톤이 드럼, 베이스, 기타와 더불어 모던의 영역에 들어설 때 ‘어떤날’의 무지개 멜로디는 비로소 기지개를 켠다. 평범해서 비범한 이석원의 목소리, 곡의 저변에서 곡을 지배하는 건반, 이석원의 작곡 콤비인 정대욱의 찰랑대는 기타, 그리고 이상문(베이스)과 Tazz의 리듬 버팀목이 [후일담]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목을 뽑아내었다. '어떤날'은 ‘유리’와 더불어 가장 대중적인 트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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