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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Sep 04. 2018

완전한 고독, 담담한 슬픔

양희은 - 1991


이 앨범에는 무서울 정도의 고독이 배어있다. 차가우면서 뜨겁다. 이 역설적인 균형은 당시 마흔 중년에 접어든 양희은의 심경과 같은 것이었을지 모른다. 지나간 모든 것들을 그리워하다 이내 체념하게 되는 나이. 어제 일처럼 뚜렷한 추억 앞에서 끝내 눈물만 떨구고 마는 고약한 기억의 습작. 마흔은 서글픈 나이다.


[1991]에는 데뷔 20주년을 맞은 포크가수 한 명과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유학 중이던 클래식 기타리스트 한 명만 있다. 그 외 모든 건 배제되었다. 베이스도 드럼도, 피아노도 브라스도 없다. 당황스러운 건 그 철저한 부재들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더 큰 풍요다. 이는 가사 때문이다. 수록한 8곡 중 6곡에 숨결을 불어넣은 그 시절 양희은의 사유는 맑고 예리했다. 그것은 사랑한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에 관한 고찰이요 깨달음이었다.



당시 26살이었던 이병우가 깨끗한 우리말로 쓴 ‘가을아침’은 그 넉넉한 한가로움에도 불구하고 중년의 육중한 고독을 담은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의 깊이엔 이르지 못했다. 영화 <겨울나그네>의 민우와 다혜가 떠오르는 ‘그해 겨울’, 떠나간 젊음 곁에 삶을 내려놓는 ‘그리운 친구에게’의 노랫말들 역시 이 앨범의 ‘부재 속 풍요’에 일조했다.


보컬과 기타의 음반인 [1991]은 사실 따로 떼어 놓아도 별개의 작품이 될 만큼 저마다 완성도를 지녔다. 양희은의 보컬만 들어도 좋고 이병우의 기타만 듣고 있어도 좋다. 양희은의 목소리에 담긴 엄숙한 운치, 침묵을 닮은 이병우의 연주는 살아가는 자의 고민, 사랑했던 사람을 향한 그리움, 홀로 있어 깨닫는 외로움, 꾹꾹 눌러담은 슬픔을 담담하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풀어낸다.


그래서 장르는 다르지만 이 음반은 조 패스와 엘라 피츠제럴드의 [Easy Living], [Sophisticated Lady]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다른 연주나 목소리가 끼어들 여지가 없는, 오히려 그것들이 방해만 될 것 같은 두 사람의 완벽한 호흡에선 차라리 법률적 단호함마저 배어나온다. 이는 역시 공간을 주무르는 사운드 디자이너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일이라, 조와 엘라의 작품들에 노만 그란츠라는 이름이 있었다면 이병우, 양희은의 [1991]엔 제랄 벤자민(프로듀서)과 마이클 맥도날드(레코딩 엔지니어)가 있었다.



이들은 ‘저 바람은 어디서?’라는 양희은의 물음에서 간절함이 묻어나게 했다. 또 스페인 클래식 기타리스트 페르난도 소르의 연습곡에 양희은이 가사를 붙인 ‘나무와 아이’엔 세련된 외로움을 더했고, ‘11월 그 저녁에’를 통해선 인생이라는 아득한 숙제를 좀 더 명료하게 다듬어 우리에게 건네주었다. 벤자민과 맥도날드는 [1991]에 냄새를 입혔다. 냄새의 정서는 그리움과 쓸쓸함이고 냄새의 계절은 가을과 겨울이다. 구름 위 신선처럼 클래식기타를 뜯어나가는 이병우는 최소의 소리를 위해 차려진 그 공간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 이병우의 이해는 양희은이라는 쉽지 않은 보컬과의 호흡으로 치달았고 이내 음악을 완전한 고독과 슬픔에 바칠 수 있었다.



이병우는 이 앨범이 듣는 이들에게 편안함을 줄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그의 의도는 적중했다. 흐르는 연주와 담담한 노래, 읊조리는 가사는 듣는 이들의 마음 속 상처를 천천히 치유했다. 거기에는 그 상처 우리가 다 가져가겠다는 구원의 뉘앙스마저 있다. 다친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다는 건 어쩌면 음악이 가진 가장 큰 미덕이자 가치일지 모른다. 27년 전 양희은과 이병우의 만남은 그래서 결국 ‘음악의 이유’였다. 기타와 보컬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어울림을 둘은 들려주었다. 뻥 뚫린 가슴을 뻥 뚫린 음악이 메웠다. 무심함이 복잡함을 무너뜨리면서 앨범 [1991]은 태어났다.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단순히 이 곡이 이 앨범의 대표곡이어서 추천하는 것은 아니다. 이 곡은 이 앨범이 아닌 양희은의 대표곡이다. ‘아침이슬’과 ‘한계령’ 그리고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가 나는 양희은의 심장과 폐, 간이라고 생각한다. 이별을 관조하며 이별을 슬퍼하는 목소리, 헤어짐에게 바치는 차분한 오열(‘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는 이 세상도 끝나고’)은 언제 들어도 사람을 잠기도록 만든다. 많은 리메이크가 있었지만 어떤 리메이크도 양희은의 오리지널은 넘어서지 못했다. 아이유가 ‘가을아침’에서 찾을 수 없었던 것은 이 곡을 다시 부른 이들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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