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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Sep 11. 2018

신해철 음악세계의 시작

Myself


또 그를 썼다. 음악을 대하는 관점,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생각하는 힘, 절망하는 방법과 희망 찾는 방법을 모두 가르쳐준 그를 나는 힘껏 썼다. <신해철 다시 읽기>에서 가장 좋아하는 넥스트 앨범(2집)을 썼고 이번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선 가장 좋아하는 그의 솔로 앨범(2집)을 썼으니 여한이 없다. 20위권에는 들 줄 알았는데. 생각은 다 다른 것이니 그러려니 할 밖에. 다음달은 그의 4주기다. 나는 [Myself]를 정말이지 눈물을 머금고 썼다.




이것은 신해철 음악세계의 시작이었다. 무한궤도와 솔로 1집은 이 앨범을 위한 디딤돌이었으며, 신해철은 그 디딤돌을 딛고 순진한 소년에서 진지한 청년으로 거듭났다. 낙원상가 전자악기매장에 있던 미디와 시퀀서, 신시사이저를 손에 넣은 청년은 가슴으론 사랑을, 머리론 사유를 하며 세상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Myself]는 아직 록커 신해철을 유예하고 있다. 이 앨범에서 그는 딥 퍼플보단 디스코와 전자음악에 더 빠져 있었다. 넥스트 1집과 노땐스, 크롬과 모노크롬으로 이어질 장르적 교두보는 이미 이때 다져지고 있었던 것이다. 가슴 뭉클한 건반 테마 아래 끊임없는 비트의 중첩을 새겨넣은 ‘나에게 쓰는 편지’와 ‘날아라 병아리’ 이전에 넥스트식으로 죽음을 바라본 ‘50년 후의 내 모습’은 그 장르적 특성을 가장 구체적으로 들려준다.



힙합의 ‘스웩’을 응용한 자기소개 ‘The Greatest Beginning’과 더불어 라틴 리듬을 기계와 대치시킨 ‘다시 비가 내리네’처럼 신해철은 이 앨범에서 비트 쪼개기에 제법 공을 들인 느낌이다. 섹시한 저음 랩에 필사적으로 맞서는 하이햇 비트, 브라스와 건반의 황홀한 난투극, 소울 코러스 위에 올라탄 신해철의 격정을 앞세운 ‘재즈카페’도 그랬다. 무한궤도가 데뷔하던 해 쓴 ‘내 마음 깊은 곳의 너’와 함께 이 앨범의 얼굴이 된 ‘재즈카페’에선 인간 드러머가 연주할 수 없는 리듬을 향한 신해철의 강박마저 느껴졌다. 그가 이 작품에 임하기 전 잡았다는 구체적인 방향성이 무엇인지 이 곡은 들려준다. ‘재즈카페’는 뮤지션 신해철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



생전에 고인 자신의 곡들 중 뽑은 ‘무덤까지 가져갈 노래 베스트 11’에서 3위에 오른 ‘그대에게’는 더 화려하고 세련된 편곡과 사운드에 힘까지 더해 이 앨범에 다시 실렸다. 그 유명한 전자 건반 인트로엔 밀도감을 더했고, 드럼 톤엔 박진감을 심었다. 이 곡에서 일렉트릭 기타와 베이스는 반상균과 민재현이 연주했다. 둘은 ‘내 마음 깊은 곳의 너’에서도 같은 악기로 참여했다. 이처럼 [Myself]는 신해철이 모든 걸 통제했고 모든 곡을 신해철이 쓴 건 맞지만 모든 연주를 신해철이 한 건 아니었다. 반상균, 민재현 외에도 여러 사람들이 그를 도왔다. ‘내 마음 깊은 곳의 너’에서 각각 피아노와 드럼을 친 정석원과 민병직, ‘아주 오랜 후에야’에서 기타를 연주한 박청귀, 러닝타임 6분에 이르는 ‘길 위에서’에 어쿠스틱 기타를 입힌 김의석, 공일오비라는 같은 둥지를 공유하는 윤종신과 김태우 등이 이 앨범의 조력자로 남았다. [Myself]는 그래서 김수철의 [One Man Band]나 존 서먼(John Surman)의 [Private City]와는 조금 다른 의미에서 ‘원맨밴드’ 앨범이었다.



그럼에도 [Myself]는 90년대를 대표한 한 뮤지션의 고독한 자기성찰과 지독한 작가주의가 함박 녹아있던 작품이었다. 그것은 단편의 싱글이 아닌 장편의 앨범을 만들었다는 표시요 선언이었다. 당시 해설지를 썼던 팝 칼럼니스트 이영주도 그런 이 음반을 듣고 신해철이 “한 마리의 거대한 공룡으로 성장했음을 인정”했다.


신해철은 [Myself]의 성공으로 있던 빚을 다 갚았다. 하고자 했던 음악으로 큰돈을 벌었으니 아마 뛸 듯이 기뻤을 것이다. 물론 넥스트라는 종착지에서 팬층은 극렬히 양분되지만 그래도 신해철은 후회하지 않았다. 그에게 돈은 좋은 음악의 조건, 그 음악을 만들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Myself]가 없었다면 넥스트도 없었다.



추천곡 ‘길 위에서’



커다란 신시사이저의 홍수, 절망의 모퉁이를 돌아 만나는 희망의 멜로디. 곡이 시작되고 43초에 이를 때까지 음악은 철학을 지탱한다. 이어 철학은 고독의 시로, 그 시는 다시 음악으로 스며들며 ‘길 위에서’는 조용히 몸부림 친다.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와 ‘The Dreamer’ 사이에서 세상을 더듬는 이 곡은 음악을 대할 때 신해철의 자세이자 신념이었다. 고독한 자기반성, 아련한 감수성이 뒤엉겨 송곳 같은 성찰을 피워낸다. 들짐승 같은 매서움으로 ‘이중인격자’를 부르짖기 전, 청년 신해철은 이 곡으로 자신의 청춘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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