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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Sep 21. 2018

'아마추어리즘 프로'라는 80년대의 역설


송골매는 한국에서 하드록으로 대중을 사로잡은 첫 밴드였다. ‘대중적인 하드록’이라는 전제를 달 때 송골매를 이을 만한 이름은 부활과 넥스트 정도 뿐이다. 송골매의 역사는 1972년 한국항공대 항공전자공학과에 입학해 스쿨밴드 활주로에 들어간 배철수라는 인물에서 시작한다. 음악은 선택받은 사람들만 하는 줄 알았던 그는 1977년 대학가요제를 보기 전까지 음악을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1회 대학가요제에서 샌드 페블즈가 ‘나 어떡해’로 대상 받는 걸 보며 배철수는 자신감이 생겼다. 저 정도는 자신도 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든 것이다. 그는 복학 후 대학가요제에 나갈 생각을 하고 샌드 페블즈가 대상 받은 그해 제대했다.



배철수는 샌드페블즈가 '나 어떡해'로 대학가요제 첫 대상을 거머쥐는 모습을 보고 자신감을 얻었다.


제대 후 활주로를 이끈 배철수는 이듬해 열린 제1회 해변가요제에서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를 불러 인기상을 받았다. 그리고 한 달 뒤 군대에서 다짐했던 대학가요제에 출전해 ‘탈춤’으로 은상을 손에 쥔다. 그러나 활주로의 운명은 길지 못했다. 배철수는 해변가요제에서 노래 잘하고 얼굴도 잘생긴 블랙테트라의 멤버 구창모를 기억했고 그와 함께 밴드를 만들려 했다. 하지만 군대 문제로 나머지 멤버들이 하나 둘 빠지면서 구창모도 포기를 해 결국 새로운 밴드 송골매는 배철수(보컬, 드럼)와 지덕엽(기타)을 주축으로 이응수(베이스), 이봉환(키보드)까지 4인조로 결성, 79년에 데뷔작을 발매했다.


활주로의 '탈춤'



레인보우(Rainbow)의 ‘Starstruck’ 리프를 닮은 ‘세상만사’, 2집에 다시 실리는 ‘길지 않은 시간이었네’ 등으로 약간의 반응을 이끌어낸 송골매엔 그러나 역시 제대로 된 메인 보컬리스트가 필요해 보였다. 장기하에게 영향을 준 배철수의 창법도 물론 가치가 있지만 그럼에도 송골매의 역사는 구창모의 음악성, 구창모의 성대를 요구했다. 송골매 1집이 나오고 이응수와 지덕엽 마저 군대에 가면서 배철수는 라인업을 다시 짜야 했다. 설악산 오색약수터 암자까지 가서 설득한 구창모, 같은 산에서 만난 4막5장 기타리스트 김정선, 김정선과 함께 활동한 드러머 오승동, 송골매 1기 멤버 이봉환(키보드, 보컬), 베이시스트 김상복, 그리고 기타와 보컬에 배철수까지. 4인조 송골매는 어느새 6인조 록밴드가 되어 있었다.


‘모두 다 사랑하리’는 MBC 국제가요제를 앞두고 배철수가 김수철에게 부탁해 받은 곡이다.


그리고 82년 1월 송골매 2집이 나왔다. 어느 한 두 사람에 기대지 않은 멤버들의 고른 작곡 안배가 눈에 띈 이 작품은 발매 36주년을 맞은 2018년 현재까지도 한국을 대표하는 록 앨범으로 회자되고 있다. 그랜드 펑크 레일로드의 마크 파너와 곧잘 비교된 구창모의 가창력은 배철수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했다. 이봉환과 함께 건반까지 맡은 구창모는 펑키한 ‘어쩌다 마주친 그대’와 헤비한 ‘다시 한 번’을 동시에 쓰며 탁월한 작곡력을 발휘, 송골매가 스타 밴드로 발돋움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여기에 잘 익은 김정선의 기타와 후덕한 김상복의 베이스, 부지런히 리듬을 부수는 오승동의 드럼이 어울리며 음악은 비로소 완전해진다. 이 작품을 대표하는 히트곡 ‘모두 다 사랑하리’는 MBC 국제가요제에 나가려 배철수가 김수철에게 부탁해 받은 곡으로, 김수철만의 고독한 기운이 김정선이 쓴 가사와 완벽하게 조화를 이뤄 명곡으로 남았다.


영미권 하드록에 깊이 영향 받은 2집으로 송골매는 전설이 되었다. 배철수의 말처럼 송골매는 균형 잡힌 밴드였다. 약간의 대중성, 중간은 갔던 음악성, 적당한 연주력. 그들은 ‘아마추어리즘을 가진 프로’라는 80년대의 역설이었다.




배철수는 '어쩌다 마주친 그대'를 처음 듣고 ‘무조건 될 곡’이라 생각했다.


추천곡 ‘어쩌다 마주친 그대’

구창모가 곡을 쓰고 키보드를 연주하고 노래까지 불렀지만 이 곡의 임팩트는 김정선의 쫄깃한 펑키 기타와 쩍쩍 뜯어내는 김상복의 베이스 슬래핑에 있다. 이 곡의 넘치는 그루브는 중반부 디스코 건반 솔로와 더불어 모두 거기에서 나온다. 배철수는 이 곡을 처음 들을 때부터 ‘무조건 될 곡’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신해철은 생전에 ‘밴드가 즐거운 직업이라는 것을 가르쳐준 존재’가 송골매라며 선배들을 기렸다. 신해철이 그런 생각을 한 이유가 바로 이 곡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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