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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Feb 09. 2016

넥스트 음악의 노른자

The Return of N.EX.T Part I: The Being

“정말 제가 무한궤도서부터 지금까지 음악을 만들어온 과정들을 보면 이건 총기 난사예요.(웃음) 레드 제플린과 딥 퍼플과 주다스 프리스트와 비틀즈를 사랑하고 경배하던 그 수많은 아이들 중 한 명에게 정말로 총이 주어진 거예요.” <신해철의 쾌변독설> P.251


무한궤도로 프로 궤도에 진입한 뒤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1990)로 ‘가수’가 된 신해철. 다시 미디 시퀀스 작법의 가능성을 확인시킨 『Myself』(1991)로 ‘뮤지션’의 길로 접어든 그가 자신의 근본과도 같은 밴드 음악을 위해 넥스트를 결성한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숙명에 가까운 일이었다. 펑크(Funk)와 로큰롤을 뒤섞은 이른바 ‘펑큰롤’을 들려준 데뷔앨범 『Home』(1992)은 ‘도시인’과 ‘Turn Off The T.V.’의 냉소적 그루브에 ‘인형의 기사 Part.II’와 ‘아버지와 나’의 애절한 멜로디를 첨부하며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잡는데 성공, 신해철이 마주한 그 숙명에 커다란 빛이 되어주었다.

2년 후, 음악을 목숨만큼 사랑한 이 90년대 천재는 지난 앨범과는 전혀 다른 접근을 감행한 앨범을 들고 왔는데 바로 『The Return Of N.EX.T Part 1 : The Being(이하 ‘The Being’)』이다. 시퀀스에 기대 자신의 내면을 표현한 솔로 2집, 록과 전자 음악을 디스코로 버무려 그 때까지 한국인들이 느껴보지 못한 비트 세계를 펼친 넥스트 1집을 넘어 신해철은 이 앨범에서 자신이 동경해온 장르들 즉, 헤비메탈과 하드록, 프로그레시브록과 아트록, 펑크(Funk)와 포크 뮤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엮어내며 “헤비메탈 작법에 의한 가요성 히트”를 실현한다. 그는 생전에 밴드로서 가장 행복했던 때를 [개한민국] 시기라고 말했지만, 사실 넥스트 팬 입장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는 온갖 장르들을 창의적으로 버무린 넥스트 2집을 만났을 때였던 것 같다. 적어도 글쓴이는 그랬다.


1분11초간 헐리웃 SF 영화를 방불케 하는 장엄한 스코어로 ‘넥스트의 귀환(The Return of N.EX.T)’을 알리며 『The Being』은 문을 연다. 자타공인 ‘전영혁 키드’였던 신해철의 취향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음악의 장엄함은 다시 이미지의 추상으로 번지며 앨범 전체를 삼켰는데, 그래픽 디자이너 전상일이 그린 그 미래는 누가 봐도 암울한 디스토피아였다. 나는 어린 시절 그가 만든 북릿(Booklet)에 압도되어 어떤 공포마저 느꼈었다. 우주 질서를 암시하는 시간과 탄생, 행성의 이미지, 그리고 저승사자 같던 멤버들의 모습. 그들 앞에서 지구는 이미 종말을 고한 듯 보였다. 죽음의 그림자는 그렇게, 넥스트의 두 번째 앨범과 당시 신해철의 정신 위에 똑같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트랙이자 앨범의 실질적인 출발인 「The Destruction of the Shell : 껍질의 파괴」가 들끓던 용암처럼 터져 나온다. 호기롭게 진격하는 인트로가 「그대에게」를 닮은 이 곡은 「Music」(1976)을 부른 John Miles에 Judas Priest와 Asia를 접붙인 듯 증축된 사운드와 번뜩이는 전개가 일품이었는데, 당시로선 파격적이었던 러닝 타임은 그 환상적인 드라마 앞에서 흔적도 없이 상쇄되었다. 학업 성적만으로 한 인간의 가능성을 얕잡아보는 선생(과 부모)들에 대한 청춘의 자문(“이대로 살아야 하는가”)이 일렉트릭 기타의 절박한 헤비니스와 키보드의 화려한 박력에 실려 넘실대고, 뛰어도 돌아도 더 큰 원을 그릴 뿐이라는 가사 마냥, 윤회에 가까운 곡 구성은 지금 들어도 도발적이다. 변박과 폴리리듬에 두루 능숙했던 이수용의 드러밍 역시 이 곡을 바닥부터 지탱한 요소였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되겠다.

「껍질의 파괴」의 파상공세가 끝나고, Megadeth의 작법(더 정확히는 Dave Mustaine의 창법)을 빌어 남 눈치만 보며 사는 인간 군상을 풍자한 두 번째 트랙 「이중인격자」가 쳐들어온다. Rob Halford와 니하라 미노루(二井原実, Loudness)를 우상으로 삼은 ‘메탈러’ 신해철의 새로운 창법을 감상할 수 있는 지점으로, 그의 리프 메이킹 감각이 어느 정도였는지도 팬들은 이 곡을 통해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잘못 넣었다면 과유불급이 되었을 키보드 간주는 다행히 잘 어울려, 비열하게 질주하는 곡에 숨통을 터 주었다.  

마니아들이 좋아했을 거친 두 곡이 끝나고, 「내 마음 깊은 곳에 너」를 숙성시킨 록발라드 「The Dreamer」가 흐르면서 앨범은 약속된 한 숨을 돌린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처럼, 절망의 껍질을 깨고 힘차게 날아오르려는 화자의 의지가 때론 고독한 독백으로, 때론 엄숙한 합창으로 푸석하게 설익었던 침묵을 으깬다. 나는 언제나 이 곡을 「길 위에서」 파트2 정도로 여겨왔다.

2006년 발매한 5.5집 『Regame』에서 윤도현이 하모니카 연주로 피처링한 「날아라 병아리」는 고인이 생전에 “철학적으로 쓰고 싶어서 만든 유일한 노래”라 밝힌 곡이다. 초등학생 시절, 육교 위 네모난 상자 속에서 데려온 노란 병아리 ‘얄리’로부터 배운 죽음을 노래한 이 곡에서 신해철은 긴장 섞인 텐션 코드를 배제한 3화음 코드 즉, “수학이 아닌 산수적인 구조”를 의도했다 밝힌 바 있다. 덕분에 곡은 향기로운 멜로디와 어쿠스틱 무드로 동요 같은 가요가 될 수 있었는데, 내 기억에 「날아라 병아리」는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와 더불어 대한민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90년대 발라드였다. 그러나 이 곡은 얄궂게도 「민물장어의 꿈」과 함께 너무 일찍 죽음을 맞은 신해철의 장송곡이 되면서, 결과적으로 불길을 예견한 곡이 되고 말았다. 죽음을 가르쳐 준 얄리가, 죽음을 배운 신해철을 영원히 데려가 버린 것이다.

철학도의 유일한 철학적 사유가 끝나고 신해철의 베이스 실력(이 앨범에서 베이스는 사실 모두 신해철이 연주한 것이다)을 감상할 수 있는 디스코 프록 메탈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생전에 그가 일관되게 거부한 ‘(남과) 같은 것’을 정면에서 다룬 곡으로, 어쩌면 이 작품에서 신해철이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 담긴 트랙일지 모른다. 또한 크롬과 모노크롬이라는 반전을 예고한 「Life Manufacturing : 생명생산」은 Pink Floyd 또는 그들의 「Time」(1974)이 신해철에게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으로, 이 창의적인 '「Time」 일렉트로닉 버전'을 다 듣고 나면 누구나 ‘생명생산’을 위한 이성간 사랑의 몸짓을 조금이나마 체험해볼 수 있을 것이다. 언뜻 스탠리 큐브릭이 떠오르는, 그야말로 음악을 통한 ‘버추얼 시스템’인 셈이다.

「날아라 병아리」와 함께, 신해철의 드문 철학적 사유 안에서 피어난 「The Ocean : 불멸에 관하여」는 Renaissance와 Emerson, Lake & Palmer, Asia라는 그의 우상들이 한꺼번에, 그러면서 차분하고 내실 있게 응용된 대곡이다. 인트로에 스민 이정식의 쓸쓸한 플루트와 키보디스트 신해철의 곤두 선 전자음의 대치가 “복합 차용”과 “혼성 모방”이라는 넥스트의 음악 스펙트럼을 관념적으로 대변해내었다. 이제는 「껍질의 파괴」 아니면 이 곡일 정도로, 음악성 면에서 이 앨범의 얼굴과 같은 트랙이 되었다.


'내실 있는 엔터테이너'인 Prince와 John Lennon의 사회적 역할을 함께 강조했고, “선입견과 공포가 지배하는 종교의 영역에서도 개인의 투쟁을 포기하지 않은” 버트런드 러셀을 좋아한 신해철이 『Lazenca : A Space Rock Opera』(1997) 이전 음악적으로 가장 훌륭했을 때를 나는 이 시절로 기억한다. 그의 말처럼 화려함에선 『The Return Of N.EX.T Part 2 : The World』에 뒤질 진 몰라도 밀란 쿤데라와 니체가 뒤섞인 작자의 의식 세계가 이처럼 완벽에 가깝게 음악적으로 표현된 예는 이 앨범이 유일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또한 ‘마왕’이라는 별칭에 버금가는 ‘교주’라는 애칭이, 신해철에겐 추구가 아닌 연구의 대상이었던 히틀러에서 나왔다는 근거가 이 음반이라는 것 역시 작품의 가치를 따로 높여주는 ‘철학적’ 에피소드라 할 만하다.


* 이 글은 책 <신해철 다시 읽기>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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