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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Nov 11. 2018

브리스톨 사운드의 정점

Massive Attack [Mezzanine]


트립합의 다른 이름, 매시브 어택

영미권에서 지역과 음악 장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어떤 것이다. 가령 뉴욕 하면 힙합, 시애틀 하면 그런지, 뉴올리언스 하면 재즈가 떠오르듯 영국에서도 맨체스터와 런던은 브릿팝, 브리스톨은 트립합의 성지로서 곧잘 언급된다. 물론 거기엔 장르를 대표하는 뮤지션들이 또 반드시 있게 마련이라 뉴욕의 노터리어스 비아이지(The Notorious B.I.G.), 시애틀의 너바나(Nirvana), 뉴올리언스의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 맨체스터의 오아시스(Oasis), 그리고 이 글의 주인공인 브리스톨의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은 그 구체적인 이름들이 되겠다. 우린 여기서 트립합(Trip Hop)이라는 장르에 집중해야 하는데 쉽게 말하면 "환각적인 힙합"이랄 수 있고 따져 말하면 일렉트로니카 또는 덥(Dub), 힙합과 레게, 그리고 70년대 소울이 뒤섞인 대중음악의 한 장르라 할 수 있다.



트립합은 1988년 와일드 번치(The Wild Bunch)라는 사운드 시스템(Sound System, DJ와 엔지니어가 함께 꾸려나가는 음악 작업 팀)의 운명과 궤를 같이 한다. 멤버였던 로버트 델 나자(Robert "3D" Del Naja)와 그랜트 마샬(Grant "Daddy G" Marshall), 그리고 앤드류 보웰(Andrew "Mushroom" Vowles, 이하 '머쉬룸')은 첫 싱글 'Any Love'를 낸 뒤 이른바 '브리스톨 사운드'를 확립한 최초의 트립합 앨범으로 간주되는 [Blue Lines]로 매시브 어택의 탄생 즉, 트립합의 탄생을 일궈낸 것이다. 매시브 어택의 데뷔 앨범은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와 퍼블릭 이미지 리미티드(Public Image Ltd.), 빌리 콥햄(Billy Cobham)과 허비 핸콕(Herbie Hancock)으로부터 '콘셉트 앨범'이라는 콘셉트를 차용해 이전까진 없었던 어둡고 축축한 소리 디자인으로 영국 대중음악계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Unfinished Sympathy'는 그 반향의 상징이었고 이 곡은 끝내 트립합의 상징이 되었다.


'Unfinished Sympathy'는 트립합의 상징이 되었다.


3년 뒤 발매한, 향후 이들의 양대 명반이라 일컫게 되는 1집과 3집([Mezzanine]) 사이에서 그 위치가 다소 애매해져 버린 [Protection]은 그래도 <롤링 스톤>의 "역대 가장 쿨한 앨범"이라는 총평과 칠 아웃(Chill Out) 성향에서 도출된 "새벽 4시 드라이브에 어울리는 음악"이라는 부분평에 힘입어 적어도 팀의 성공 길에 장애물은 되지 않을 수 있었다. 차분하고 섬세한 라임을 자랑했던 트리키(Adrian "Tricky" Thaws)는 사라 넬슨(Shara Nelson)이 부른 'Any Love' 때부터 매시브 어택과 함께 해온 랩퍼였지만 2집을 끝으로 팀을 나와 솔로 앨범 [Maxinquaye](1995)를 발매, 한 해 앞서 [Dummy]를 내놓은 포티스헤드(Portishead)와 더불어 '브리스톨 3인방'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매시브 어택, 포티스헤드, 트리키가 이끈 이 경향을 매체들은 브리스톨 신(Bristol Scene)이라 불렀고 그 결과물인 브리스톨 사운드는 곧 트립합의 다른 이름이 되었다. 같은 시기 블러(Blur)와 오아시스, 스웨이드(Suede)와 라디오헤드(Radiohead), 버브(The Verve) 등이 두 번째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퍼붓고 있을 때 브리스톨의 돌연변이 장르는 그렇게 천천히 하지만 질기게 현대 대중음악의 한 줄기가 되어갔다.



매시브 어택의 다른 이름, [Mezzanine]

[Blue Lines] 최고로 치는 사람들은 매시브 어택의 대명사로  앨범을 빗댄 것에 무슨 소리냐며 반문할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Mezzanine] 깨알 같은 별점 세례를 받고 무려 4백만  이상이 팔려나가며 매시브 어택에게 부와 명예를 안겨준 객관적 명반이다.  앨범의 특징이라면 소리가   거칠어졌다는 , 그리고 간헐적이었던 샘플링이 전면화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  해진 사운드로 보다 다채로운 접붙이기를 시도했다는 것인데 케이엘에프(The KLF) 스타틀드 인섹츠(Startled Insects), 그리고 리퀴드 리퀴드(Liquid Liquid) 정도에서 그친 전작 [Protection] 비한다면   곡을  모든 곡들에 샘플링을 가한 [Mezzanine] 모양새는 확실히 눈에 띄는 것이었다.  인터뷰에서 매시브 어택 측은  과정을 "공황상태에 가까운 스트레스를 짓누르며 찢고 붙이고 다듬"었다는 말로 대신하며 자신들이 겪은 창작의 고통을 넌지시 내비치기도 했다.


힙합 장르의 특징이자 매력이기도 한 샘플링 소스는 잘만 활용하면 듣는 귀를 넓힐 수 있고, 원곡과 비교해 듣는 것도 나름 쏠쏠한 재미가 될 수 있다. 첫 곡 'Angel'을 보자. 시리고 건조한 베이스 라인과 또각대는 비트는 사실 인크레더블 봉고 밴드(The Incredible Bongo Band)의 'Last Bongo in Belgium'을 샘플링한 것이다. 봉고와 콩가라는 남미 전통 리듬 악기와 일반 어쿠스틱 드럼을 더해 재즈 록을 표방했던 원곡과 달리 포스트록의 휘몰아치는 기운을 입힌 편곡의 느낌은 'Group Four'라는 곡과 더불어 매시브 어택의 전, 후작들과 확실한 차별선을 긋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어지는 'Risingson' 역시 근래 세상을 등져 세계 음악 팬들을 고개 숙이게 한 루 리드(Lou Reed,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의 리더)의 곡 'I Found a Reason'을 어둡고 차가운 자신들만의 문법으로 완전히 새롭게 빚어낸 곡이다. 이러한 매시브 어택의 저온다습한 개성은 폭력적인 이웃사람을 주제로 삼은 'Man Next Door'에서도 유효한데, 곡에서 소환된 큐어(The Cure)의 '10:15 Saturday Night'와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When the Levee Breaks'는 원곡의 느낌이 거의 사라진 채 하늘거리거나 일그러진다. 이처럼 싸이키델릭과 그로테스크라는 불안한 정서적 개념을 음악으로 표현해내는데 있어 매시브 어택은 탁월한 감각을 지닌 팀이었다.


'Teardrop'은 미국 소울 재즈 피아니스트 레스 맥캔의 'Sometimes I Cry'를 가져다 쓴 곡이다.


앨범을 대표하는 싱글 'Teardrop'은 미국 소울 재즈 피아니스트 레스 맥캔(Les McCann)의 'Sometimes I Cry'를 응용한 것으로, 서걱대는 림숏(Rimshot) 비트에 근육을 입힌 것 외엔 원곡의 서정성을 그대로 가져와 사랑이라는 "상냥한 충동"을 노래한다. 매시브 어택은 마치 한국의 공일오비(015B)처럼 객원 보컬을 주로 썼는데, 이 곡은 에브리씽 벗 더 걸(Everything but the Girl)의 트레이시 손(Tracey Thorn)에 이어 러브콜을 받은 콕토 트윈스(Cocteau Twin)의 엘리자베스 프레이저(Elizabeth Fraser)가 직접 가사까지 쓰고 불렀다. 하지만 이 곡이 비극인 이유는 만들어진 시점이 엘리자베스의 친구였던 제프 버클리(Jeff Buckley)가 익사해 목숨을 잃었을 때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 슬픈 우연 덕분에 'Teardrop'은 본의 아니게 제프에 대한 반 추모곡이 되어버렸고, 매닉 스트릿 프리처스(Manic Street Preachers)와 모비(Moby), 페이스 노 모어(Faith No More), 인엑시스(INXS), 마돈나(Madonna) 같은 거물급들과 작업한 월터 스턴(Walter Stern)의 뮤직비디오 속 태아 역시 좀 더 많은 해석의 여지를 남기게 되었다. ‘Teardrop’은 앨범을 넘어 매시브 어택의 대표곡인 만큼 뉴튼 포크너(Newton Faulkner)나 엘보우(Elbow), 심지어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 같은 팀도 커버했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샘플링이라는 작업은 표현 확장을 위한 수단이면서 동시에 표절이라는 함정을 갖는 양날의 검과도 같아 항상 주의해야 한다. 매시브 어택도 그 함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으니 바로 'Black Milk'라는 곡에서다. 이 곡은 영국 프로그레시브 록밴드인 만프레드 맨스 얼스 밴드(Manfred Mann's Earth Band, 이하 '만프레드 밴드')가 72년에 발매한 셀프 타이틀 앨범 수록곡 'Tribute'를 샘플링 한 것인데, 밴드 측이 허락 없이 자신들의 곡을 썼다는 이유로 매시브 어택을 고소한 것이다. 실제 곡의 루프는 원곡의 베이스 프레이즈와 진배없어 다소 민망한 것이었고, 때문에 소송 결과는 이 앨범의 찜찜한 오점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매시브 어택은 이후 라이브 공연에서 제목을 'Black Melt'로 바꾼 이 곡의 리믹스 버전을 계속 연주했는데 그 안에 만프레드 밴드에서 가져온 샘플 소스는 사라지고 없었다.


'Black Milk'는 표절 소송에 휘말리며 앨범의 오점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샘플링은 장르를 가리지 않았다. 가령 [Mezzanine] 안에선 펑크(Punk)와 펑크(Funk)가 뒤섞여 샘플링 되곤 했는데 'Inertia Creeps'가 영국 포스트 펑크 밴드 울트라복스(Ultravox)의 'Rockwrok'을 샘플링 한 것인데 반해, 두 개 버전으로 나뉘어 실린 'Exchange'는 소울, 펑크의 대부 아이작 헤이즈의 'Our Day Will Come'과 퀸시 존스(Quincy Jones)의 'Summer in the City'를, 타이틀곡 'Mezzanine'은 펑크와 소울을 주메뉴로 삼은 세션 드러머 버나드 퍼디(Bernard Purdie)의 'Heavy Soul Slinger'를 비튼 것이다. 여기서 매시브 어택은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 같은 울트라복스의 원곡에선 기타 이펙터 소릴 지운 뒤 비트와 분위기만 가져다 썼고, 버나드 퍼디의 원곡이 가진 들뜬 느낌은 거칠게 압축, 왜곡해 전혀 새로운 일렉트로니카 넘버로 만들어냈다.



샘플링의 종착역?!

영국의 유력 음악지 <큐 매거진>은 [Mezzanine]을 '위대한 브리티시 앨범' 100장 중 15위에 랭크시켰고, <롤링 스톤>은 '역대 최고 앨범' 500장 안에서 412번째로 이 작품을 꼽았다. 그러나 [Mezzanine]의 가치는 서로 다른 순위에 있지 않다. 샘플링을 중심 삼았던 매시브 어택이 이 앨범을 끝으로 해당 작업 방식에 마침표를 찍고 순수 창작으로 눈을 돌렸다는 사실. 3집의 의미는 바로 거기에 있을 것이다. 예컨대 트렌트 레즈너(Trent Reznor, 그는 실제로 매시브 어택의 음악에 강한 영향을 받았다)를 듣는 듯한 ‘Dissolved Girl’이나 ‘Group Four’는 그 복선 같았다. 거기에 담긴 소리의 질감, 구조, 형식은 5년 뒤 [100th Window]라는 앨범에서 매시브 어택이 들려줄 음악의 진지한 힌트였던 셈이다.


2003년, [Mezzanine]의 음악 색깔이 못마땅했던 머쉬룸은 팀을 떠나고 육아에 집중한 그랜트 마샬을 대신해 로버트 델 나자가 신보에 담길 거의 모든 곡을 썼다. 보컬은 다시 바뀌어 시네이드 오코너(Sinead O'Connor)와 데이먼 알반(Damon Albarn)이 마이크를 잡았다. [100th Window]는 명반이었다. 샘플링은 매시브 어택이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었지, 매시브 어택이 선택해야만 하는 전부는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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