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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Jul 31. 2018

도재명, 멤낙 외

멋이 들지않은 밴드 사운드로 일단 친근감을 준다. 곡들은 밴드 측 설명처럼 “감미롭고 익살스럽고 소소”하다. 서태지를 떠올리게 하는 목소리는 ‘착하다’와 ‘심심하다’ 사이에서 호불호를 살 것 같지만 멜로디만큼은 ‘이 정도면 들을만 하네’로 타협에 이를 듯 보인다. 첫곡 ‘오늘은’만 듣고 그런 곡들만 있으리라 섣불리 판단하진 말길. 몇 트랙만 지나면 ‘쭉쭉쭉쭉’과 ‘비포선라이즈’ 같은 신스록, 펑크(Punk)도 만날 수 있다. 



팀 이름만 봐선 장미여관이나 술탄 오브 더 디스코 같은 음악을 할 것 같지만 아니다. 김창완을 닮은 나른한 보컬. 앨범 제목 '대단한 환희의 오후'는 히스 레저가 주연한 닐 암필드 감독의 2006년작 <캔디>에 나오는 그림 제목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음반을 좋아할만한 사람들은 밴드가 밝혀두었듯 펄프, 블러, 스미스 팬이거나 90년대 모던록을 편애하는 이들일 확률이 높다.



시가 가진 은유와 다의(多義)의 감동을 전하기 위해 활동명까지 시인(Poeta)’으로 잡았다. 음악을 들어보니 김광석과 이문세김동률을 즐겨 듣는 부모님의 취향이 곧 그의 취향이다. 에릭 클랩튼을 닮은 홍준호의 따뜻한 기타 톤도 좋다어쩌면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말일지도 모를 그건 네 잘못이 아냐를 영화 <굿 윌 헌팅>에서 건져와 자신의 오선지에 널은 포에타는 타인을 위협할 수 있는 선택 앞에선 좀 더 신중해지자며 소심한 사회적 발언도 하고, 타인의 꿈을 응원하며 그들이 관계를 통해 받은 상처도 위로한다.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썼다는 빈자리에선 어쩔 수 없이 고 노회찬 의원이 떠오르기도 한다앨범 제목 표현의 도구는 결국 음악이었다.



박기영의 스튜디오 라이브다. 그곳엔 60명만 입장할 수 있고 입장한 60명은 "전문 레코딩 스튜디오 사양의 고감도 헤드셋"을 쓴 채 공연을 감상한다. 음악과 노래와 환호를 듣고 있으면 그 풍경이 고스란히 눈앞에 펼쳐진다. '마지막 사랑'에서 그의 표현력을 좋아하는 나는 재즈 보컬리스트 박기영을 만날 수 있는 ‘Take Five’를 이 앨범의 백미로 꼽고 싶다. 잦은 고음역대 발성이 살짝 불필요하게도 느껴지지만 분명한 건 박기영은 항상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둘은 2017년 서울숲 재즈페스티벌 무대에 함께 서며 인연을 맺었다. 도재명은 [토성의 영향 아래] 이후 1년 4개월 여만, 이선지는 세월호의 아픈 기억을 되새긴 [Song Of April]을 내고 3개월 여만이다. 다섯 곡 중 도재명이 첫곡과 끝곡을 썼고 나머지는 이선지가 썼다. 노래는 도재명이, 이선지는 건반 연주와 코러스에만 집중했다. 쓸쓸하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도재명의 목소리, 한발 물러서 수줍게 반짝이는 이선지의 피아노. 앨범은 록킹한 ‘더딘시간’ 정도를 빼면 대체로 정답고 소박하다. 곡들마다에서 감상할 수 있는 홍갑의 일렉트릭 기타 연주는 이 앨범을 듣는 또다른 재미다. 앨범의 제목이 되기도 한 터키 시인 나짐 히크메트의 시 ‘진정한 여행(A True Travel)’은 마지막 동명곡의 가사로도 쓰였다. 그 시는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고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이며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도재명과 이선지는 바로 이 얘기를 하려 앨범을 발매한 것이리라.



멤낙은 신인이 아니다. 90년대 한국 데스메탈 1세대로 활약한 오프(OFF)의 곽인호(보컬, 베이스)와 김민수(기타)가 다시 데스메탈을 하기 위해 바꾼 이름이다. 여기에 심포닉 블랙메탈 밴드 다크 미러 오브 트래지디(Dark Mirror ov Tragedy)와 김경호 밴드에서 활약 중인 드러머 김승휘가 가세했다. 잔혹한 그로울링, 대전차 엔진같은 리프의 박진감, 그리고 옹골찬 리듬 근육이 세련된 녹음의 질과 그림같은 조화를 이뤄냈다앨범 재킷만 서포케이션(Suffocation)급이 아니다음악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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