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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Jul 26. 2018

조용한 폭력 속에서

포크 뮤지션 버둥의 데뷔작

'조용한 폭력 속에서'.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다. 화자는 무언가에 화가 나있는 게 분명하다. '폭력'은 여성을 향한 이 사회의 차별일 수도 있고, 을을 향한 갑들의 안하무인일 수도 있다. 버둥은 이 사회에 할 말이 있었고 그래서 앨범을 냈다. 그는 '주저앉거나 자빠지거나 매달려서 팔다리를 내저으며 몸을 자꾸 움직이는 것'을 자신의 이름으로 삼고 반대편 가장 미니멀한 방식에 기대 음악을 만들었다. 텅빈 곳에서 꽉찬 것을 추구하는 그런 버둥의 역설은 이 앨범 전체에 드리워져 있다.

버둥은 듬성듬성한 여백을 추구한다. 선우정아와 시와가 함께 걸어가는 느낌의 노래와 기타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소리가 침묵이라 말하려는 듯 투명하다. 가사 역시 소설식 서사보단 시적 임팩트에 방점을 찍은 모습이다. 콜라주처럼 썰어 붙인 불안한 문장들은 이야기를 드러내려기보다 이야기를 들어내려는 독립된 섬마냥 떠다닌다. 그런 꿈 같은 단어들의 나열에는 그러나 현실적인 힘이 녹아있어, 그는 국악 같은 'How Much'를 통해 페미니즘 담론이 사회적 담론이 된 한국의 일상에서 20대 여성의 입장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버둥의 표현대로 "나직히, 하지만 무시할 수 없도록 힘주어" 울리며 듣는 이들의 가슴에 덥석 안긴다.



앨범 크레딧에 익숙한 이름 하나가 보인다. 박준형. 그는 프로그레시브 싸이키델릭 록밴드 줄리아 드림의 선장이다. 박준형은 이 작품에서 프로그래밍과 신시사이저, 편곡과 믹싱, 프로듀싱을 총괄했다. '실망'이라는 곡에선 아예 코러스까지 도우며 버둥의 음악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 자신이 쓸쓸하고 무심한, 그러면서 사회적인 음악을 해온 터라 버둥과 박준형의 만남은 어떤 면에선 예견된 만남처럼 보일 정도다. 적어도 소리의 공간을 두고 두 사람은 치밀하고 단단한 억제의 균형을 함께 일구어냈다. 애정과 조화를 표현한 물밭(Waterfarm)의 재킷 그림을 그냥 흘려볼 수 없는 이유다.

버둥의 노래에는 개성적인 표현들이 몇 있다. "넙데데한 발"('How Much')이라든지 "널 원하지만 결국 밀어내는 더럽고 추잡한 나"('이유')라는 자괴와 "나를 바라보던 눈이 아니면 죽어버려라"('다시 날 잊어가기 전에')는 서슬퍼런 주문 등이 그렇다. 그는 통기타 한 대를 들고 자신의 뜻을 전해야 하는 포크 싱어송라이터가 어떤 식으로 노래해야 하는지를 매우 잘 알고 있는 듯 보인다. 자신만의 목소리가 있고 자신만의 언어가 있다. 오는 8월10일 금요일 오후 8시, 버둥은 홍대 카페 '언플러그드'에서 데뷔 EP 발매 쇼케이스를 연다. 쇼케이스 제목은 '이유가 있겠지'다. 그가 단 4곡으로 어떻게, 왜 무덤덤한 분노를 삼켜낼 수 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들어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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