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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Aug 06. 2018

#88 : Princess Princess

일본 걸스밴드의 원조로 통하는 프린세스 프린세스의 전성기 모습.


프린세스 프린세스는 80년대 글램록 사운드에 긍정의 일본어 가사를 심어 동시대를 함께 산 소녀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다.


듣기 편하고 따라부르기도 쉬웠던 팝록으로 80년대 일본 소녀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준 프린세스 프린세스(Princess Princess, 애칭은 푸리푸리(プリプリ))는 일본 걸스(ガールズ)밴드의 원조로 통한다. 화이트베리(Whiteberry), 존(Zone) 같은 밴드들에게 큰 영감을 준 이 역사적 5인조는 83년 티디케이 레코드(TDKレコード)가 걸스밴드를 만들기 위해 치른 오디션을 통해 태어났다. 당시 밴드 이름은 아카사카 코마치(赤坂小町). 이 이름은 그시절 TDK 사무실이 있던 곳이 도쿄 아카사카여서 쓰게 됐다는 이유를 비롯해, 한 잡지 편집장이 “한자 4글자로 밴드명을 만들면 좋겠어”라고 말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단순히 잡지 공모로 뽑은 이름이라는 얘기도 있다. 같은해 5월29일, 아카사카 코마치는 긴자에 있는 야마노홀(山野ホール)에서 첫 라이브를 치렀다.



프린세스 프린세스는 오리콘차트 넘버원 싱글 ‘다이아몬드(Diamonds)’로 89년을 자신들의 해로 만들었다.


이은하와 비슷한 허스키보이스를 가진 키시타니 카오리(岸谷香, 보컬, 기타)는 밴드 해체 전까진 오쿠리 카오리(奥居香)라는 이름을 썼지만 밴드 해체 직후 결혼한 남편 키시타니 고로(岸谷五朗)의 성을 쓰면서 지금 이름으로 알려졌다. 카오리는 보컬리스트이기 전에 다른 가수들에게도 곡을 많이 준 작곡가이기도 한데, 가령 ‘안녕, 몽상가(ソーロング、ドリーマー)’ 같은 곡은 그가 중학교 때 쓴 곡으로 당시 제목은 ‘밴드 걸스(バンドガールズ)’였다. 카오리는 현재 1남1녀의 엄마다.


존(Zone) 같은 걸스밴드의 원조를 거슬러가보면 거기엔 언제나 프린세스 프린세스가 있다.


키스 리차즈(Keith Richards, 롤링 스톤스)를 좋아하고 비주얼록풍 헤어스타일을 주로 했던 기타리스트 나카야마 카나코(中山加奈子, 기타, 코러스)는 현재 록밴드 부두 하와이안스(VooDoo Hawaiians)의 프론트우먼으로 활약하고 있다. 또 밴드의 리더였던 베이시스트 와타나베 아츠코(渡辺敦子, 베이스, 코러스)는 현 도쿄 스쿨 오브 뮤직 전문학교(東京スクールオブミュージック専門学校)의 부교장을 맡고 있으며, 일러스트에 일가견이 있었던 키보디스트 콘노 토모코(今野登茂子, 키보드, 코러스)는 음악 뿐 아니라 영화, 광고, 예능 방송에도 출연하며 지치지 않는 팔방미인 끼를 과시했다. 그리고 리듬을 건축하며 작사까지 담당했던 드러머 토미타 쿄코(富田京子, 드럼, 코러스)가 있었다. 푸리푸리 라인업의 시작은 곧 라인업의 완성이었다.



보수적인 일본에서 여성들만으로도 하드록 밴드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증명한 아카사카 코마치는 84년 TDK를 통해 첫 싱글 ‘방과 후 수업(放課後授業)’을 발매했다. 이때 카오리는 ‘보컬, 베이스’에서 ‘보컬, 기타’로, 와타나베는 ‘기타’에서 ‘베이스’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이듬해 밴드는 줄리안 마마(JULIAN MAMA)로 한 차례 이름을 바꾸지만 다시 1년 뒤 문라이더스(Moonriders)의 키보디스트 오쿠다 토로(岡田 徹)가 제안한 '프린세스 프린세스'로 밴드명을 최종 결정, CBS소니(현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에서 미니 앨범 ‘키스 범죄(Kissで犯罪)'를 내놓으며 성공을 향한 본격 시동을 건다.



88년 스포츠 용품 브랜드 빅토리아(ヴィクトリア) 광고에 세 번째 싱글 ‘My Will’이 쓰이며 밴드는 와타나베가 그토록 동경해온 후지테레비의 <저녁의 히트 스튜디오 디럭스(夜のヒットスタジオDELUXE)>까지 출연하게 된다. 여기에 푸리푸리의 전성기를 활짝 열어준 ‘다이아몬드(Diamonds)’와 ‘세상에서 가장 더운 여름(世界でいちばん熱い夏)’이 1년 후 오리콘차트 정상을 찍으며 밴드는 마침내 일본의 대표 록밴드로 우뚝 섰다. 하지만 인생사 호사다마라 했으니, 생방송 <저녁의 히트 스튜디오 슈퍼(夜のヒットスタジオSUPER)> 1회 방영에서 사회자였던 카가 마리코(加賀まりこ)가 카오리에게 “돼지(ブタ)” “생리 중 아냐?”라는 망언을 해 화가 잔뜩 난 카오리와 밴드 측이 해당 방송 출연을 거부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동경해온 방송프로로부터 뒷통수를 맞은 셈이다. 이 일은 지금까지도 프린세스 프린세스를 논할 때 빠지지않고 회자되는 에피소드로 남아있다.


푸리푸리의 대표곡 ‘세상에서 가장 더운 여름(世界でいちばん熱い夏)’. 입추를 앞두고 조금씩 꼬리를 내리고 있는 이번 대한민국의 기록적인 폭염이 떠오르는 제목이다.


프린세스 프린세스는 96년에 해체했다. 그들은 13년을 활동하며 라이브 관객수 190만명 동원, 15장의 앨범(베스트 앨범 포함), 21장의 싱글, 그리고 120곡이 넘는 오리지널 곡들을 남기며 제이팝 역사에 깊은 한 획을 그었다. 그리고 이들은 다시 돌아온다. 2012년 1월, 동일본대지진 자선공연을 계기로 재결성을 한 것이다. 중년을 훌쩍 넘긴 멤버들이 다시 일본 최고 무대인 부도칸에 선 그들. 89년 걸밴드로선 최초로 부도칸에 선 이후로 치면 23년만, 밴드 해체 때 섰던 96년부터 따지면 16년만이었다. 하지만 푸리푸리가 재개한 활동은 오래 가진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해야할 일을 다했다고 느낀 듯 2016년 3월25, 26일 이틀간 치른 ‘프린세스 프린세스 투어 2012-2016 재회 –포에버- “후야제”(PRINCESS PRINCESS TOUR 2012-2016 再会 -FOREVER- "後夜祭")’를 끝으로 재결성 활동의 막을 내렸다. 일상 생활에 직격탄을 맞은 이재민들에겐 따뜻한 위로를, 밴드를 그리워한 팬들에겐 잊지못할 감동을 선물하고 푸리푸리는 마지막 남은 재마저 다 태운 뒤 그렇게 연기처럼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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