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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Aug 22. 2018

'비의 장르' 재즈 앨범 5선

흔히 재즈는 커핏빛 낙엽으로 흥건한 가을에 어울리는 음악 장르로 알려져 있다. 실제 음악은 장르별로 그에 걸맞는 계절들을 갖는다. 예컨대 감미로운 인디팝은 , 발랄한 로큰롤은 여름, 차분한 재즈는 가을, 더운 헤비메탈은 겨울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나에게  ‘비의 음악이다. 아니, ‘비와 어울리는 음악  맞겠다. 재즈가 비와 섞일 , 거기에선 무지막지한 낭만이 피어난다. 장마철이 훌쩍 지난 태풍(솔릭) 전야. 문득 내가 좋아하는 재즈 앨범  장을 소개하고 싶어졌다. 취향은 본질적으로 '개취'여서  앨범들은 온전히 글쓴이 개인 취향임을 감안해 읽어주시길 바란다.  취향에 공감해주시면 물론 더할 나위 없다.


나는 항상 몽크와 함께할 때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무엇이 진행되는지 늘 인식하고 있지 않으면, 갑자기 엘리베이터의 빈 통로에 발을 헛디디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 존 콜트레인


1962년 콜롬비아 레코드와 계약한 밥 피아니스트 셀로니어스 몽크의 68년작이다. 테너 색소폰에 찰리 라우스, 베이스에 래리 게일스, 그리고 드럼엔 벤 라일리가 앉았다. 빌보드지가 “한 음으로 된 리프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재즈 녹음의 문제작”이라고 평한 47년 작품 ‘thelonious’를 시작으로, 몽크의 레코딩 중 유일한 왈츠로 기록된 ‘ugly beauty’, 불협화음 블루스 넘버 ‘raise four’, 딸 애칭을 곡 제목에 넣어 역시나 비정통적 구성을 꾀한 ‘boo boo's birthday’, 그리고 재즈 싱어 조 헨드릭스가 우정 출연하고 몽크의 절친 버드 파웰에게 헌정된 ‘in walked Bud’까지 그의 60년대 중후반 대표곡들이 망라되었다. 불협화음을 재즈 화성의 본질적 요소로 정립시킨 위대한 거장. 살아서 무려 1,000 여 곡을 남긴 듀크 엘링턴에 비해 초라한 곡 수(60 여곡)임에도 재즈인들로부터 가장 많은 인용과 응용을 당한 몽크의 진수를 맛보고 싶다면 이 앨범도 괜찮다.




재즈 베이시스트 겸 리더 찰스 밍거스의 아틀란틱 레이블 데뷔작으로 56년 1월30일 녹음하였다. 밍거스 스스로 코드 배치와 송라이팅 대신 귀(ear)로 어레인지 하는 방법을 배운 첫 번째 레코드라고 밝힌 본작은 재키 맥린(알토 색소폰)과 J.R. 몬터로즈(테너 색소폰)에 말 왈드론(피아노)과 윌리 존스(드럼)가 가세해 때론 현란하게, 때로는 침착하고 차분한 선율로 재즈 팬들의 두 귀를 어루만졌다. 유인원과 현생 인류의 중간 단계에 속하는 화석 인류를 뜻하는 단어 ‘Pithecanthropus Erectus(직립 원인, 直立猿人)’를 타이틀로 택한 만큼 첫 곡은 진화(evolution)와 우월감(superiority complex), 쇠퇴(Decline)와 멸망(Destruction)이라는 네 가지 주제로 악장을 나눈 일종의 풍자 뮤지컬로서, 밍거스의 유머 감각과 주제 의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재키 맥린이 주도하는 발라드 ‘profile of Jackie’, 밍거스의 작곡가로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14분 59초짜리 대곡 ‘love chant’, 그리고 조지 거쉰의 스탠더드 ‘a foggy day’까지. 이 작품은 탁월한 솔로이스트를 넘어 그룹의 리더, 그리고 한 사람의 재즈맨으로서 찰스 밍거스를 맛볼 수 있는 중요한 모던 재즈 앨범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루이 암스트롱, 듀크 엘링턴, 찰리 파커, 마일즈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 오넷 콜맨. 그 이름만으로도 장르 한 두 개를 대표하는 재즈 거장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놀랍게도 음악을 위한 제대로 된 교육을 단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는 은연 중 '아카데믹 장르'로 여겨지는 재즈. 그 장르 음악의 뿌리 같은 대가들이 역설적이게도 관련 교육은 받은 적이 없는 것이다. 지난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빌리 홀리데이도 그런 거장 중 한 명이다. 그에게 가르침을 준 것이라곤 그저 남의 집 하녀로 일하며 콧노래로 따라 부른 베시 스미스와 루이 암스트롱이 전부였다. 테디 윌슨(Teddy Wilson) 캄보의 레코딩 성향에 맞추어 “혼(horn)처럼 노래"했던 빌리 홀리데이. 하지만 그는 이내 재능을 살려 가사 내용을 음미하며 노래하는 법까지 터득하게 되었고 그렇게 유명세를 위한 첫 발을 내디딘 것이 바로 에디 헤이우드(Eddie Heywood) 악단이 함께 한 코모도어(Commodore Records) 시절이다.


1939년 4월20일에 녹음한 1~4번 트랙, 1944년 3월25일에 녹음한 5~8번 트랙, 같은 해 4월1일에 녹음된 9~12번 트랙, 그로부터 일주일 뒤 녹음한 나머지 트랙들까지 총 열 여섯 트랙이 빼곡히 담긴 본작엔 백인들에게 집단 구타 당한 흑인의 시체가 포플러 나뭇가지에 목 매인 사연을 노래한 ‘starange fruit’를 시작으로 “블루스를 부르는 여인” 빌리 홀리데이가 직접 작곡한 ‘fine and mellow’, 전쟁터로 떠난 애인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마음 ‘I’ll be seeing you’(이 곡은 실제 태평양 전쟁 당시 녹음되었다), 마이클 커티즈 감독의 42년작 <카사블랑카>로 히트하기 전 부른 빌리 홀리데이 버전 ‘as time goes by’, 그리고 도로시 필즈와 지미 맥허프가 쓴 명 스탠더드 ‘on the sunny side of the street’까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우울하며 또한 아름다운 재즈 보컬 음원이 담겨 있다.




존재의 평화는 마음의 평화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스스로 추구할 수도 있고 어느날 문득 찾아올 수도 있다. 자의냐 타의냐라는 차이에서 평화의 질감은 달라진다. 찾아헤맨 탓에 피로를 동반하는 평화와 찾아와주어 피로와 작별하는 평화. 마음 평화에도 '짜가'가 있다는 게 한 편으론 께름칙하지만 나는 어쨌든 뒤에 말한 평화가 '진짜' 평화라고 생각한다.


그런 나에게 이 앨범은 단순한 '재즈 앨범'이 아니었다. 셰익스피어라는 전통(traditional)의 두레박이 보컬, 피아노, 색소폰이라는 재즈의 전통을 퍼올릴 때 평화는 선물처럼 따라왔다. 가령 'brigg fair'는 본작 재킷 사진의 완벽한 배경 노래다. 인간 소리와 자연 빛깔의 어울림. 그것은 늘 아름답고 고요하고, 그래서 평화롭다. 음악은 사람의 마음에 관여할(수 있을)때 가장 경이롭다. 때문에 음악이 위대한 예술인 것이고 나 같은 사람이 이토록 집착하는 것일 게다. 집착이 평화를 가져다 주다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이율배반조차 음악의 매력이고 이 앨범의 가치인 것을 보면 음악은 그 자체로 평화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도 싶다. 버거운 이 세상도,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1963년, 뉴욕에 정착한 재즈 색소포니스트 앨버트 아일러가 세실 테일러와 함께 무대에 오르며 갈고 닦은 실력은 같은 해 3월 발매된 'Witches and Devils'를 통해 처음 알려졌다. 그리고 1년 뒤 이 혁신적인 프리 재즈 애호가는 자신의 생애 최고 앨범을 내놓게 되는데 바로 본작 'Spiritual Unity'이다. 버나드 스톨먼이 갓 차린 레이블 ESP-Disk가 내놓은 첫 번째 재즈 앨범이었던 이 작품은 베이시스트 개리 피칵과 퍼쿠셔니스트 서니 머레이가 64년 7월10일 앨버트와 처음 만나 이루어진 녹음으로, 앨버트의 표현대로라면 그것은 “합주”라기 보단 차라리 서로의 연주를 “감상”하는 것이었다. 후덕한 서니 머레이, 깡마른 키다리 개리 피칵, 무뚝뚝하고 신중했던 앨버트 아일러가 만나 뿌려대는 음가루들은 그러나 취향이 아니라면 소음에 가까울 수 있으니 주의 바란다. 참고로 올뮤직(allmusic.com)은 이 앨범에 별 다섯 만점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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