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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Oct 24. 2018

빅밴드 스윙으로 요리한 한국과 서양의 스탠더드

* 이 글은 책 <신해철 다시 읽기>에도 실렸습니다. 27일, 그의 4주기를 맞아 여기 옮겨놓습니다.



신해철의 다섯 번째 솔로작 『The Songs For The One』은 지극히 사적인 앨범이다. 음악이 뮤지션에 있어 사적인 것 아닌 게 어디 흔할까만, 그는 이 앨범을 “개인용 노래방을 만들어 놓고 혼자 즐긴 것”이라고까지 표현하며 작품에 담긴 ‘개인성’을 강조했다. 28인조 빅밴드를 거느리고 스윙을 건드렸다 해서 본작을 재즈라는 장르의 틀에만 가두는 건 그래서 반만 옳은 행위다. 왜냐하면 이 초콜릿 빛 음악은 어디까지나 신해철이 자신과 아내 사이 로맨스를 우선으로 생각하고 실천한 ‘다시 부르기’이기 때문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 지극히 일반적인 것이 된다며, 도전의 결과물이 자신을 넘어 누군가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배경음악이 됐으면 했던 고인의 착한 바람이 좀 더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건 그래서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신해철의 솔로 5집은 찬사보다 비판을 더 받은 앨범이다. 혹자는 『개한민국』과 더불어 신해철의 디스코그래피에서 ‘졸작의 양대 산맥’으로 이 앨범을 기억할 지도 모르겠다. “가요 팬들에게는 어렵고 재즈 팬들에게는 가벼운” 이 문제작 앞에서 재즈를 좀 아는 사람들은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가 주제인 이 앨범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이게 재즈냐”라고만 몰아세웠고, 그나마도 「P.M. 7:20」 정도에서 그쳐야 했을 비교 대상을 토니 베넷(Tony Bennett)과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에까지 확장해 그의 부족한 스윙감을 나무랐다. 세계적인 뮤지컬 편곡자 피터 케이시(Peter Casey)가 이끄는 빅밴드와 5일 만에 녹음을 끝낸 그의 야심찬 시도는 그렇게 장르적 재단 앞에서 괜히 머쓱해지고 말았다.



신해철은 뮤지션으로서 생전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재즈 앨범을 위해 삼척동자도 아는 해외 스탠다드와 자신이 중학생 때 불렀던 우리 노래들을 쉬지 않고 그러모았다. 보컬 녹음은, 서양 사람들 앞에서 “쪽 팔리기” 싫어 세 번씩 미리 불러본 뒤 임했다. 녹음에 들기 직전 가사를 쓰는 버릇 때문에 레코딩과 노래 연습을 병행할 수 없었던 그는 이 앨범을 만들며 노래 연습을 가장 많이 했다고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밝혔었다. 그렇게 신해철은 보컬리스트로서 필요 이상의 열등감을 종종 내비치곤 했는데, 사망 전 몸무게가 불은 모습이 보다 노련한 목소리를 갖기 위해 감행한 주기적 비책이었다는 사실은 돌이켜보면 참 가슴 아픈 이야기다. 조용필과 전인권이 될 수 없었던  신해철 스스로의, 스스로에 대한 일상적인 과소평가가 결국 이런 도발적인 시도를 불렀다고 나는 본다. 그런 그가 태어나 처음으로 보컬 녹음의 재미를 맛본 순간이 바로 이 앨범에서였다는 사실, 이 사실이 글쓴이는 매우 흥미로웠던 것이다.


물론, 재즈는 신해철과 그리 어울리는 음악은 아니었다. 가령 「A Thousand Dreams Of You」를 넥스트 때 창법으로 부르고, 앨범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트랙이 「재즈카페」의 변주라는 건 분명 안쓰러운 일이었다.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에서 들려준 보컬리스트로서 선전은 따로 칭찬할 만한 것이었지만, 「Thank You and I Love You」를 들으면서는 말 그대로 “개인용 노래방”에서 부른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나마 트로트가 득세하던 시절에 “트로트가 아닌 귀한 곡”이어서 선곡했다는 「하숙생」을 장르적으로 해석한 부분(“만약 최희준씨가 노래할 때 우리나라 음악계에 재즈가 어느 정도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면 이렇게 가지 않았을까 한다”)은 곡의 완성도를 떠나 음악이 음악을 비평했다는 점에서 높이 살 만 했다.



신해철의 재즈 앨범은 닷새 만에 녹음을 끝냈지만, 그 녹음을 위해 신해철의 고민은 꽤 깊고 길었다. 짧게 쓰면 이런 얘기다. 디지털 편집의 가능성과 음악 수준을 높여준다는 이유에서 스스로 개척한 미디 음악 시장이 언젠가부터 공장 조립형으로 변해가며 신해철에게 피로감을 안겨주었고, 그 연속된 피로감에서 비롯된 하나의 의지 즉, “인간이 연주하고, 인간의 손길이 느껴지는 음악”을 만들겠다는 따뜻한 각오가 실행으로 옮겨진 것이 바로 이 작품 『The Songs For The One』이었던 것이다. 더 이상 미디의 매력과 위력 때문이 아니라, 빈사상태의 음반 시장 상황에 비례한, 그저 “싸게 가기 위해” 미디를 사용하는 2000년대 한국의 대중음악 시장 앞에서 신해철은 철저하게 사람 냄새 나는 소리와 연주로 ‘한국 최초 미디 아티스트’라는 자신의 원죄 아닌 원죄를 씻어낸 셈이다. 이 앨범의 숨은 가치는 바로 거기에 있다.  


여전히 말들이 많지만, 글쓴이는 이 앨범을 지지한다. 앨범 제작을 위해 찍은 프로모션 사진 중 한 장이 그의 영정 사진이 된 기막힌 사연을 뒤로 하고서라도 이 음반은 반드시 재평가 받아야 할 작품이고, 또 그렇게 될 것이다. 존재의 자유만큼 장르의 자유도 철저하게 향유한 신해철에게 재즈라는 도전 과제는 결국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의 『Kind Of Blue』보다 더 본질적인 곳에 숨어있었으리라 나는 생각한다. 빅밴드 스윙. 이 위대한 재즈 장르로 서양 스탠다드와 한국 스탠다드를 동시에 요리한 뮤지션이 과연 우리 가요사에 있었는지를, 나는 이 앨범을 비웃었거나 혹평한 이들에게 되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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