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대 Nov 02. 2018

위험한 세계, 그래도 희망의 세계

윤영배 [위험한 세계]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다루기 힘들고 접근하기 쉽지 않다고 여겨지는 현실을 꽁꽁 가둬두는 방법이자, 꼼짝 않고 그대로 제자리에 있게 만드는 방법이다.

수전 손택


‘위험한 세계’라는 긴장의 타이틀과 이미지를 젖히면 그 곳엔 의외로 시원한 맥주 한 잔과 고요한 호수, 그리고 박명이 있다. 이어 또 한 장을 젖혔다. 따뜻해 보이는 스웨터를 입은 사람의 왼쪽 팔과 왼쪽 자전거 손잡이, 그리고 접사된 ‘자전거 타는 사람’의 비에 젖은 이미지. 그 옆을 본다. 자본주의, 선언, 백 년의 꿈, 점거, 위험한 세계, 빈 마을, 목련, 그리고 구속. 윤영배의 세 번째 앨범 첫 인상은 이처럼 평화로운 이미지와 아픈 텍스트의 대립이다. 그리고 현실은, 바로 그 안에 있다.


비에 젖은 대로변. 역시 자전거가 보이고 경찰차도 보인다. 클로즈업 된 중성 느낌의 젊은이가 내비친 불안한 얼굴 뒤로 첫 곡 「자본주의」가 적혀있다. 너무 당연해서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살아내는 우리의 현실이지만 그만큼 버거운 것이기도 하다는 짧은 시가 펑키(Funky)한 연주를 벗삼아 흐른다. 음악은 신나지만 이미지와 텍스트는 전혀 신나지 않은 역설의 순간이다.


사진은 풀과 나무로 이어진다. 그리고 「선언」이 흐르는데, 앞 곡이 ‘우리’의 현실을 직시했다면 여기에선 “하나 뿐이라 거래 할 수 없는” 개인을 관조한다. 여리고 슬픈 멜로디. 관조는 다시 시인과 마을로 이어져 이상순(앨범엔 그의 아내 이효리도 출연한다)의 어쿠스틱 기타를 타고 「백 년의 꿈」을 꾼다. 펼쳐진 북릿(Booklet)을 꽉 채운 사진은 “동백의 마른 잔가지”와 “편백의 젖은 생가지”를 노래하는 윤영배의 무덤덤한 미소처럼 느껴져 좋다.



그러나 한 장을 더 넘기면 「점거」된 「위험한 세계」가 타는 노을 아래 눌려있다. 윤영배, 이상순의 협업이 빚어낸 멋진 편곡과는 별도의 우울한 정서. 인내가 양식이 되어버린 곳, 지친 농부의 슬픔으로 취한 그 (위험한)세계는 사실 당신과 내가 두 발 딛고 사는 ‘여기’였다. 소심한 성격으로 연대하는 윤영배의 한숨은 그래서 멍든 하늘 만큼 짙다.


감자를 움켜쥔 농부의 손을 보여주며 청춘의 열망을 얘기하는 「빈마을」, 그래도 화창한 미래가 오리란 듯 시원한 풍광을 배경 삼아 멍들고 지는 「목련」과 「구속」까지 윤영배의 그 한숨은 계속 된다. 그리고 글이 빠진 마지막 두 장의 사진(흙 묻은 손과 타 들어가는 담배, 그리고 상처 입은 아이의 발). 언젠가 영화감독 루이스 부뉴엘은 “왜 영화를 만드느냐”는 질문에 “지금의 세계가 가능한 모든 세계 중 최고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고”라고 대답했다. 필자는 ‘고산방앗간’이 배치한 마지막 두 장의 사진과 윤영배의 음악 역시 같은 이유에서 찍히고 만들어졌다 믿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빅밴드 스윙으로 요리한 한국과 서양의 스탠더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