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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Nov 07. 2018

스래쉬메탈 명반들

* 이 글은 음악웹진 <이명(diffsound)>이 기획한 '우리가 꼭 들어야 할 스래쉬메탈 50선'에도 실렸습니다.




Kreator [Pleasure To Kill](1986)



[Pleasure To Kill]의 핏빛 블래스트 비트와 슈레딩 기타의 살벌한 어울림은 4인조 이상이 모여야만 낼 수 있는 소리와 리듬에 가까웠다.


Kreator의 출발을 논하며 ‘트리오’라는 라인업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리드와 리듬 기타에 리드 보컬까지 맡은 Miland Petrozza , 사나운 비트를 쉬지 않고 솎아내는 Jürgen Reil (드럼), 그리고 이 둘 사이를 낮게 오가는 Roberto Fioretti (베이스)까지. 스래쉬메탈을 넘어 프로토-데스 메탈까지 소화하는 Kreator가 3인조라는 사실은 이들의 음악을 제대로 들어본 사람들에게는 그 자체가 충격일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앨범의 인트로 격인 ‘Choir of the Damned’가 끝나고 ‘Ripping Corpse’부터 시작되는 핏빛 블래스트비트와 슈레딩(shredding) 기타의 살벌한 어울림은 누가 들어도 4인조 이상이 모여야만 낼 수 있는 소리와 리듬에 가깝기 때문이다. 1986년을 ‘스래쉬메탈의 랜드마크’로 만든 걸작들 즉, Metallica의 [Master of Puppets], Slayer의 [Reign in Blood], Megadeth의 [Peace Sells… but Who’s Buying?], Destruction의 [Eternal Devastation], Dark Angel의 [Darkness Descends] 중 이에 필적할 수 있는 앨범은 Destruction의 것 뿐이다. 쉬 감당해내기 힘든 물리적 한계를 실력과 영감으로 극복해냈다는 점에서 두 사례는 똑같이 역사적이다. ‘Carrion’과 ‘Awakening of the Gods’의 그루브를 온 귀로 받아내며, 나는 그 역사를 새삼 긍정하였다.



Metallica [Master Of Puppets](1986)



‘스래쉬메탈의 랜드마크’ 해였던 1986년의 중심에 바로 메탈리카의 [Master Of Puppets]가 있다.


이 앨범 앞에선 스래쉬메탈의 교과서 또는 바이블이라는 진부한 표현을 싫어도 해야 한다. 땀내 나는 언더그라운드 장르를 단박에 주류로 끌어올린 타이틀 트랙의 그 유명한 기타 리프만으로도 Metallica 3집은 위대하다. 서정과 무정을 넘나드는 ‘Battery’의 에너지는 물론 Lars Ulich의 드럼에서 나온 것이지만, ‘Orion’을 쓴 Cliff Burton의 감성과 ‘Welcome Home (Sanitarium)’과 ‘Disposable Heroes’를 작곡한 James Hetfield의 진지한 자질이 없었다면 이 앨범 아니, Metallica의 존재는 지금보다 훨씬 야윈 모습이었을 것이다. Kreator의 [Pleasure to Kill] 리뷰에서 언급한 ‘스래쉬메탈의 랜드마크’ 중심에 바로 Metallica의 이 앨범이 있다. [Reign in Blood]를 더 중요한 앨범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Metallica의 대중적 영향력을 잊었거나 외면한 것이다. Slayer와 [Reign in Blood]는 거기까진 이르지 못했다. 가령 대한민국의 잠실 메인 스타디움에서 Tool을 오프닝으로 세우고 단독 공연을 연 Metallica와 칠흑 같은 새벽을 동대문 운동장에서 보내고 간 Slayer의 운명은 결코 같을 수 없었다. 정통 스래쉬메탈을 대중의 코앞에 들이밀었다는 사실. Metallica와 [Master Of Puppets]의 가치와 성취는 바로 거기에 있다.



Sodom [Agent Orange](1989)



[Agent Orange]는 지독하고 정갈한 소돔식 스래쉬메탈의 후폭풍을 미리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복선과 같았다.


기타리스트 Frank “Blackfire” Gosdzik이 이 앨범을 끝으로 ‘독일 스래쉬’의 저 편에 있는 Kreator에 합류했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Sodom도 그들처럼 3인조였고 이 체제는 2013년작 [Epitome of Torture]까지 이어져 왔다. 팀의 브레인인 Tom Angelripper(보컬/베이스)가 베트남 전쟁을 사유한 끝에 나온 1989년작의 타이틀(‘Agent Orange’는 악명 높은 고엽제 암호 중 하나였다)은 지독하고 정갈한 Sodom식 스래쉬메탈의 후폭풍을 미리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복선과 같았다. Metallica의 훅과 Slayer의 속도에 빚진 이 황금 비율은 앨범 [Agent Orange]를 독일 앨범 차트 상위권(36위)에 든 최초의 스래쉬메탈 앨범으로 남게 해주었고, 소돔은 이를 계기로 전세계 메탈 마니아들의 사랑과 지지를 덤으로 얻게 된다. The Damned의 Algy Ward가 결성한 Tank의 커버 ‘Don’t Walk Away’로 앨범이 마무리 될 때까지 Sodom의 성향은 한결 같다. 비트의 변덕을 다스리는 Christian “Witchhunter” Dudek의 드러밍은 그 멍석이며, Tom의 비열한 보컬과 Frank의 펑크(punk) 메탈 리프는 멍석 위에서 벌어지는 박수무당의 살풀이다.



Annihilator [Alice In Hell(1989)



애니힐레이터가 스래쉬메탈의 마지막 전성기에 대중에게 크게 어필하지 못한 이유는 아마도 개성의 부재 탓이었던 것 같다.


Annihilator는 Testament와 Overkill 정도에서 끊기는 ‘스래쉬 대표 밴드 명단’에서 아슬아슬하게 빠지는 밴드이다. 마니아들은 그게 무슨 소리냐며 반문하겠지만 이것은 객관적인 관점에서 하는 얘기이고 그 시선은 또한 어느 정도 사실이다. 1989년 4월17일에 내놓은 이 데뷔 앨범은 틀림없는 Kreator와 Megadeth의 반죽이다. 가령 프로듀싱과 커버 아트까지 손 본 Jeff Waters의 기타 톤과 리프, Randy Rampage의 비웃듯 공격적인 보컬, 그리고 Ray Hartmann의 거친 드러밍은 분명 저 두 밴드를 떠올리게 하는 장치들이다. ‘Schizos (Are Never Alone) Parts I & II’에서 들려주는 탄탄한 드라마는 또한 Iron Maiden을 닮았지만 긴장을 줄이는 막간의 훅에선 필연적으로 Metallica가 떠오르기도 한다. 바로 이것인데, Annihilator가 스래쉬메탈의 마지막 전성기에 대중에게 크게 어필하지 못한 이유는 아마도 개성의 부재 탓이었던 것 같다. 잘 하는 것 같기는 한데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기타 리프와 솔로, 구성이다. 대중은 그걸 귀신 같이 알아차린다. 하지만 마니아들은 거기에서 다시 Annihilator만의 개성을 찾아낸다. 이것은 오버와 언더에 양다리 걸친 밴드들의 공통된 운명이요 역설이다. [Alice in Hell]을 마니아들이 전설의 명반이라 부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 Annihilator만의 빠르고 탁한 개성 때문이고, 대중이 Annihilator를 낮게 평가하는 이유 역시 Megadeth와 Kreator를 참고한 그 ‘개성’ 때문이다. 개성이 개성을 죽인 것이다. 슬픈 얘기다.



Mekong Delta [The Music Of Erich Zann](1988)



메콩 델타 음악을 스래쉬메탈에만 가둘 수 없는 이유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곡 구성과 치밀한 연주 때문이다.


Mekong Delta의 음악을 스래쉬메탈에만 가두는 것은 위험하다. 냉소와 광기가 함께 도사리는 Wolfgang Borgmann(보컬)의 구식 성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좀 더 전위적인, 예컨대 ‘Interludium (Begging for Mercy)’의 장르 파괴 장면에서 나의 주장은 좀 더 힘을 얻는다. 이들의 음악을 논할 때 굳이 ‘테크니컬’이라는 전제를 스래쉬메탈 앞에 다는 이유도, 아예 이들 음악을 프로그레시브메탈로 분류하는 뜻도 결국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곡 구성과 치밀한 연주 때문이라고 나는 보는 것이다. 어쩌면 Rage의 Peter “Peavy” Wagner (보컬/베이스)가 [The Music Of Erich Zann] 발매 직전까지 Mekong Delta에서 베이스를 연주한 이유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겉으론 느슨하게 들리지만 긴장을 늦출 수 없는 ‘I, King, Will Come’의 변태적 박력을 놓고 보더라도 Mekong Delta의 두 번째 앨범은 그래서 Mekong Delta 음악의 요약본처럼 느껴진다. 에필로그까지 따로 챙겨가며 헤비메탈과 오페라 사이의 ‘밀당’을 주선하는 이들의 음악이 역사상 중요한 이유는 다 그런 실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일 터. 우선 베트남의 ‘메콩 삼각주’라는 밴드 이름부터가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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