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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Nov 12. 2018

영국 올해의 신인

Laurel [Dogviolet]


검은 바탕 위 깨진 코발트블루 거울 속엔 하얀 꽃무늬 시스루 블라우스를 입은 채 눈을 아래로 치뜬 여성 한 명이 서있다. 도그바이올렛(dogviolet). ‘향기가 없는 야생제비꽃’이라는 뜻이다. 디지팩 케이스를 열었다. 이 음반을 설명하는 건 여섯 줄로 요약된 크레디트와 빛이 할퀸 거울의 클로즈업 피사체를 얹은 CD 알맹이 말곤 아무것도 없었다. 크레디트는 작사, 작곡, 연주를 로렐(Laurel)이 했고 프로듀싱과 믹싱을 아넬-컬렌(Arnell-Cullen)이 했다는 정보를 시작으로 드러머(Samuel Roux), 마스터링 엔지니어(Ed Deegan), 레이블(Counter Records), 아트워크(Elliott Arndt), 매니지먼트(Chris Bellam/Underplay)를 차례로 폭로하고 있다. 내가 알았던 건 이 음반이 로렐이라는 아티스트의 데뷔작이라는 사실 정도였다. 나머지는 이 음반을 열어보고 알았다. 이제 앨범을 플레이어에 걸 차례다.


첫 곡 'Life Worth Living'부터 예사롭지 않다.


음반을 걸었다. 음악은 시작(‘Life Worth Living’)부터 남다르다. 리버브를 고루 바른 일렉트릭 포크 사운드와 보컬 어레인지가 들불처럼 번지는 사이 주위는 이내 라나 델 레이와 캣 파워의 새드코어로 사위어간다. 일단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어떤 면에선 에이미 와인하우스도 느껴지는 그것은 깨지고 멍든 섹시함과 싱싱한 고독을 함께 머금었다. 이건 비범함을 넘은 음악의 핵심으로서 보이스다. 싱어송라이터의 타고난 역량 중 하나인 음색에서 로렐은 이미 1승을 거두었다. 


로렐은 자신이 음악 할 운명임을 남들보다 조금 일찍(4살) 알았다고 한다. 7살 때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꿈꿨던 그는 11살 때부터 곡을 쓰기 시작했고, 13살 때 친구가 링크 걸어준 로라 말링의 ‘New Romantic’을 들은 뒤 음악 취향을 완전히 바꾼다. 로렐은 로라의 곡을 들은 그 길로 브리트니의 댄스 팝을 보류하고 스패니시 기타를 사 포크에 빠져들었다. 


로렐의 음악은 퀸 오브 진스(Queen Of Jeans)보단 밝고 젠 챔피온(Jenn Champion)보단 침착하다.


엘리 굴딩의 ‘Guns And Horses’를 카피하며 자신의 미래를 점치던 로렐은 집에서 만든 데모 ‘Blue Blood’를 온라인에 풀며 세상에 노크 했다. 프로 세계 입문은 2014년 싱글 ‘Fire Breather’를 통해서였다. 이 앨범 ‘DOGVIOLET’은 그렇게 로렐이 스무 살 때부터 다져온 실력을 세상에 펼쳐 보인 첫 번째 음악 고백이다.


황홀하면서 추한 사랑의 두 얼굴을 주제로 삼은 이 앨범은 퀸 오브 진스(Queen Of Jeans)보단 밝고 젠 챔피온(Jenn Champion)보단 침착하다. ‘Same Mistakes’와 ‘Adored’의 당당한 비트, ‘South Coast’에서 차분한 사색, 기도 같은 ‘Sun King’의 격정은 그 디테일이다. 어떤 트랙 어느 구간에 멈춰서도 앨범은 자신의 주인이 로렐이라고 증언한다. 싱글로서가 아닌 앨범으로 승부하겠다는 뮤지션의 다부진 선언이 이 앨범엔 있다. 적지 않은 트랙 수임에도 작품은 별로 지루하지 않다. 선언이 납득되는 순간이다.


2018년 영미권 인디팝/록씬은 귀한 신인 둘을 건졌다. 바로 스네일 메일과 로렐이다. 나이는 로렐이 5살 더 많지만 그래봤자 24살이다. 음악 색깔이 친가까진 아니어도 사촌 지간은 될 만큼 두 사람의 스타일은 통하는 구석이 있다. 둘을 나눈 개성이지만 둘의 공통점 또한 그 개성이다. 이룬 것보단 이룰 것이 더 많은 두 싱어송라이터의 첫 발이 여기저기 자국을 남길 연말연시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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