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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Jan 20. 2019

탠저린 드림과 골드프랩이 만난 데이빗 보위

Manic Street Preachers [Futurology]


내가 매닉 스트릿 프리처스(이하 ‘매닉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하드할 땐 하드하고 부드러울 땐 또 한없이 낭만적인 그 양면성 때문이다. 'Revol'이 전자라면 'The Everlasting'은 후자일 것이고 'You Love Us'는 아마도 둘의 절충쯤 되겠다. 물론 마르크스와 니체, 포크너와 카뮈를 넘나드는 풍성한 인문학적 성찰이 밴드의 장점이요 강점이라는 것 역시 팬이라면 익히 알고 있을 사실. 리치 제임스가 없어도 니키 와이어의 정치, 사회적 은유는 언제나 촌철살인이었고 그것들은 그 나름 듣는 사람들에게 느닷없이 던져지는 철학적 화두이기 일쑤였다.



2013년에 차분한 [Rewind The Film]을 내며 예고했던대로 매닉스는 비교적 거친 [Futurology]를 10개월 만에 공개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 앨범은 롤링 스톤즈와 엘비스 프레슬리의 조화를 들려주어야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 안에선 탠저린 드림과 골드프랩이 ‘베를린 트릴로지’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70년대 후반의 데이빗 보위를 만나고 있었다. 'Speed Of Life'와 'Heroes'가 연상되는 'Dreaming A City (Hugh Eskova)', 'Black Square'는 그 분명한 증거들이다.



하지만 이 앨범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따로 있다. 가령 현대인들의 욕망을 네 단어로 압축 풍자한 'Sex, Power, Love And Money'의 헤비니스는 팬들을 잠시나마 [Everything Must Go] 이전 시절로 데려가주는데, 혹자가 창법과 비트를 두고 데뷔앨범의 'Repeat (Stars And Stripes)'와 이 곡을 비교한 건 때문에 그럴 듯 했다. 가사에서도 모종의 노골성은 담보되거나 확장되고 있으니 자본주의 세상에 순응할 수 밖에 없는 워킹클래스의 체념을 불협 코드와 시로 엮은 'Let’s Go To War'와 무역회사 노조원의 자손인 독일 배우 니나 호스가 자국어로 피처링한 'Europa Geht Durch Mich'는 돈 나고 사람 난 현실을 냉담하게 바라보는 매닉스의 사상적 정체를 새삼 폭로한다.


이념과 진배없이 도전하고 고민하는 뮤지션들로서 진보 성향도 그대로라 영국과 웨일즈를 오가며 활동하는 하피스트를 초빙했는가 하면('Divine Youth') 콜드플레이도 울고 갈 사운드 스케이프를 자랑하는 다운템포('Between The Clock And The Bed')도 서슴없이 들려준다. 신스와 스트링 세션 위를 가로지르는 션 무어의 Punk 드럼('Misguided Missile'), 러시아 저항시인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를 구호로 내걸고 디지털 칩튠에 짧고 반복적인 기타 속주를 덧입히는 광경('Mayakovsky') 역시 그런 치열한 음악적 고민의 산물일 것이다.


[Futurology] 디럭스 에디션.


첫 싱글 'Walk Me To The Bridge'와 키보디스트 시안 시아랜이 가세한 조이 디비전의 환영 'The Next Jet To Leave Moscow'가 가장 듣기 편한 트랙들임을 부정하진 않겠다. 다만, 들으려는 의지를 거기서 멈추진 말았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멜로디만 들어선 앨범에서 최고라 해도 될 'The View From Stow Hill'에서 트위터와 페이스북으로 값싼 자아를 마주하는 우리의 일상이 다뤄지고 있는 건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좋은 음악과 날선(또는 불편한) 가사. 그런 면에서 매닉스의 12번째 작품은 1집과 3집 또는 4집 사이 어느 지점에서 [Know Your Enemy]와 [Lifeblood]를 반성하는 작품처럼 나에겐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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