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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Jan 02. 2019

신해철의 부활

Ghost Touch Part. 1


알고 있다. 이 앨범이 받을 오해를. 팬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자신들의 영웅을 계속 상품화 하는데 반감을 가질 수 있고, 큰 관심 없는 사람들은 부재하는 주인공의 기존 곡들로 채워진 트랙리스트에 쓴웃음을 지을 수 있다. 게다가 세상 뜬지 햇수로 5년이 지난 망자(Ghost)의 손길(Touch)이라니. ‘우려먹으려 한다’는 뜻하지 않은 오해는 이 앨범의 제목과 컨셉에서 이미 배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오해는 오해일 뿐이다. 뮤지션의 사후(posthumous) 앨범들에 들씌워지곤 하는 장삿속에서 이 앨범은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 죽은 신해철을 다시 살려 우리 앞에 세운 이 음반은 프레디 머큐리를 되살려 팬들 앞에 세운 퀸의 ‘Made In Heaven’과 마이클 잭슨에게 다시 춤 출 기회를 줬던 빌보드 뮤직 어워드의 홀로그램 무대만큼 감동적인 무엇을 담고 있다. 그건 단순한 반가움도 아니고 옛 추억에 잠겨 울먹이는 청승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음악의 질이 좋기 때문이다.

데뷔 30주년을 내건 이 앨범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건 신해철의 또 다른 이름인 크롬과 모노크롬 시절, 그러니까 신해철이 영국 런던에 머물 때 그와 함께 음악을 고민한 프로듀서 크리스 생그리디가 고인의 보컬 트랙을 20년 넘게 보관하고 있었던 덕분이다. 여기에 신해철이 생전에 남긴 미디 데이터를 그대로 입력해 작품은 고인의 의지와 별개로 비춰질 여지를 사전에 차단했다. 앨범 제목이 ‘고스트 터치’인 이유다.


트랙 리스트는 90년대 솔로와 넥스트 시절을 가로지르는 두 곡, 나머지는 모두 크롬/모노크롬 때 것들로 채웠다. ‘해에게서 소년에게’는 크리스 왈든의 장엄한 오케스트라 편곡을 거쳐 더 거대해졌고, 고인의 대표곡인 ‘재즈카페’는 담백한 재즈 퓨전 유전자를 머금어 여태껏 버전들 중 가장 말끔한 자태를 뽐낸다. 아마도 청량감 넘치는 비트는 이수용이 아닌 그렉 비소넷의 솜씨이리라.

또 욕정과 욕망의 그늘 아래서 질척이는 일렉트로닉 넘버 ‘월광(Moon Madness)’에는 김진표가 목소리를 입혔고, 신해철이 늘 존경했던 주다스 프리스트에게 ‘Metal Messiah’라는 표절 곡을 건넨 크리스의 흑역사가 담긴 ‘Machine Messiah’엔 폴 길버트가 무지막지한 기타 솔로를 선물했다. 20년 전 유학 떠난 신해철의 안부를 전했던 ‘일상으로의 초대’는 원곡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단아함을 그대로 지니고 있으며, ‘(마지막)민물장어의 꿈’은 고인이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 공연에서 팬들과 소통했던 순간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그는 이 공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여러분들에게 할 말이 있고 도움이 될 거라 믿는 건 내가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겁쟁이니까, 겁나는 게 뭔지 아니까 여러분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고, 그래서 음악을 계속 하기로 한 거예요.”

하지만 그는 음악을 계속 할 수 없었다. 5년 전 그는 어이없이 우리 곁을 떠났고 노랫말처럼 정말로 “미련없이 긴 여행을 끝”냈다. 이 앨범은 ‘part 1’이다. 마왕은 오는 24일 우리를 한 번 더 찾는다. 그가 살아있어 직접 뽑아낸 듯한 이 말쑥한 결과물이 한 장 더 남아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기쁘게 함과 더불어 우리를 슬프게 만든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 음악은 영원의 다른 이름이라는 걸, 이 앨범을 통해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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