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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Jan 09. 2016

Whitesnake - The Purple Album

실패한 추억 놀이  


화이트스네이크 앨범에서 퍼플(Purple)이라는 단어를 본 순간 걱정부터 앞섰다. 우려의 포인트는 세 가지였는데 먼저 지난 번 내한공연 때 ‘Burn’과 ‘Soldier of Fortune’을 간당간당 부르던 데이빗 커버데일의 목 상태,두 번째로 방대한 딥 퍼플의 디스코그래피에서 커버데일의 이름이 오른 건 단 세 장(그마저도 [Come Taste the Band]의 주인공은 그가 아닌 토미 볼린이었다)이라는 물량적 한계, 그리고 지금의 화이트스네이크 멤버들이 70년대 딥 퍼플 멤버들의 연주를 과연 성공적으로 재연(또는 변주)해낼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그 세 번째였다. 늘 적중한다는 불안한 예감이 이번만큼은 틀리길 바랐으나 아쉽게도 글쓴이의 우려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추억을 팔아 이익을 보려는 소속사의 압력이었건, 전성기를 그리워한 커버데일 본인의 의지였건 [The Purple Album]은 맥 빠진 백전노장이 딥 퍼플 앨범 세 장을 무리하게 우려먹은 방향상실의 앨범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선곡은 커버데일이 딥 퍼플과 처음 만난 [Burn]에서 여섯 곡, 과소평가된 [Stormbringer]에서 다섯 곡, 그리고 토미 볼린이 딥 퍼플을 재즈 록의 세계로 안내한 [Come Taste the Band]에서 두 곡(디럭스 에디션 보너스 트랙 ‘Lady Luck’과 ‘Comin Home’까지 더하면 네 곡)이 이루어졌다. 다시, 나는 이 앨범을 왜 만들었는지가 정말 궁금하다. 돈벌이를 위한 레이블 측의 주도였다면 차라리 속 편하겠는데 커버데일과 렙 비치(이젠 덕 앨드리치도 없다)의 고민에서 나온 결과물이라면 다시 들어보아도 실망스럽기 때문이다. ‘Burn’의 기타 솔로와 키보드 솔로가 그래도 귀에 들어오는 건 렙 비치와 조엘(Joel Hoekstra)이 잘 쳐서도, 미셀 루피(Michele Luppi)가 건반을 잘 다루어서도 아니다. 그것은 리치 블랙모어와 존 로드가 잘 만들었기 때문에 누가 연주해도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화이트스네이크의 ‘Burn’에서 나는 그 이상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었다.

편곡도 죄다 실패다. 마이클 데빈이 ‘You Fool No One’에서 분 하모니카는 이언 페이스의 카우벨 플레이를 대신할 수 없었다. 쫄깃했던 ‘Sail Away’의 그루브는 어쿠스틱 기타로 흥건해졌고 ‘Lady Double Dealer’의 샤프한 맛은 장비 발전 덕분에 쓸데없이 헤비해지기만 했다. 거친 이펙터와 화려한 어레인지는 ‘Holy Man’의 광활한 운치도 반감시키며 원곡들에 민폐를 끼쳤다. 드럼과 일렉트릭 기타 솔로를 빼고 보컬 키도 쑥 낮춘 ‘Soldier Of Fortune’ 역시 원곡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귀를 설득하기에는 벅차 보인다. 옛 정으로 이 앨범을 구매한 팬들이 원한 것은 이런 사소하고 뻔한 변주가 아니라 ‘딥 퍼플을 얼마나 화이트스네이크답게 연주했느냐’였을 것인데 렙 비치는 그럼에도 ‘Lay Down Stay Down’ 인트로에서 테크닉 시전에만 여념이 없다. 도대체 이 앨범은 왜 세상에 나온 것인가. 변함없는 물음은 끊임없이 나의 뇌리 또 앨범 주위를 맴돈다.

중요한 것은 이제 데이비드 커버데일도 ‘늙었다’는 사실이다. 팬은 그걸 인정하고 있는 것 같은데 유독 그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 나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Good to Be Bad]와 [Forevermore]를 [Slide It In]이나 [1987], [Slip of the Tongue]에 견줄 수는 없다. 하물며 딥 퍼플이라니. 영광의 과거는 전설로 남기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토미 엘드리지의 드러밍이 이언 페이스를 흥미롭게 재해석 한 것이 함께 평가 절하 되는 것 같아 아쉽지만 화이트스네이크가 딥 퍼플의 전체도 아닌 커버데일이 있었던 부분만을 가져와 우린 것은 어쨌든 패착이었다. 기대가 작았음에도 실망이 컸던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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