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대 Dec 13. 2019

90년대 대중가요의 시작


90년대 대중가요의 시작엔 김민우가 있었다. 대중은 착하게 생긴 김민우의 「사랑일뿐야」를 사랑했고 「입영열차 안에서」를 들으며 안타까워했다. 당시 그에게 대적할 만한 가수는 이승환과 신승훈 밖에 없었다. 서태지와 아이들도 없었던 시절. 김민우는 그 때를 살았던 우리 모두에게 말 그대로 "휴식 같은 친구"였다.


그 해는 온통 「사랑일뿐야」였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신드롬'이라 불러도 좋았다. 그 해 김민우는 터진 상복에 노래만큼 눈물겨워 했다. 재킷 이미지처럼 한 계단 한 계단 밟아 올라가는 곡의 중층적 구조는 20대 청년의 슬픈 낭만에 서정의 깊이를 더해 주었다. 부풀어 오르는 벅찬 스트링을 뒤로 하고 피아노와 함께 고백하기 시작하는 김민우의 수줍음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발라드의 진부한 패턴이 되어버린 중반부 드럼의 등장조차 이 곡에선 전혀 진부하지 않았다. 점점 커지는 김민우의 고백에 드럼은 외려 힘을 실어줬고 김민우는 덕분에 더 용감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박주연과 하광훈. 어느날 사랑하는 사람의 집 앞 가로등 밑에서 서성대는 이의 심리를 두 사람은 이처럼 아름답게 풀어냈다. 그 아름다움은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들어도 여전히 가슴 설레는 그런 보편적인 아름다움이다.



군대는 모든 것을 앗아갔다. 사랑하는 이도, 그리고 김민우 자신도. 입대 전 김민우를 대표했던 이 곡은 제대 후 김민우를 기억하기 위한 조건이 되었다. 윤상의 감성과 짧은 드라마 한 편 같은 박주연의 가사는 「이등병의 편지」 「훈련소로 가는 길」과 더불어 군대 가는 남자의 심리를 가장 설득력 있게 풀어냈다. 사랑하는 이를 두고 입대했던(또는 입대하는) 대한민국 남자들은 군주 자리에서 꼭 한 번은 이 노래를 불렀었다.


기다리지 말라고 한 건 미안했기 때문이야 …… 그대를 그리워하기 전에 잠들지도 모르지만 …… 내 손에 꼭 쥔 그대 사진 위로


언제 들어도 슬픈 가사다. 징병으로 인생이 바뀌어 버린 김민우의 이후를 생각하면 더더욱.


다시 박주연과 하광훈 콤비의 명곡 「휴식 같은 친구」다. 자칫 동성애 코드로 오인할 수 있는 가사는 남자들만의 우정이라는 것이 때론 연인과의 사랑보다 더 소중할 수 있음을 환기시켜 준다. 인트로에서 기타와 드럼이 치고 받는 사이 어느새 피어 오른 피아노와 김민우의 목소리. 김민우는 여기서 곡의 절정에 해당하는 코러스와 딱히 구별되지 않는 고음으로 일관하며 ‘휴식 같은 친구’ 내지는 ‘친구와의 휴식’을 강조하고 있다. 정말 자신에게 그런 친구가 있는 듯, 지금 그런 친구에게 달려가고 있기라도 한 듯 김민우는 해답을 보여주는 친구를 마음껏 자랑스러워한다. 후반부 터져 나오는 기타 솔로와 샤우팅은 이 곡의 통쾌한 반전이다.



전형적인 윤상식 발라드 「다시 얘기를 해줘」는 앨범의 숨겨진 보석. 90년대 발라드의 공식, 그것을 사랑했던 한국 대중의 정서를 이 곡은 들려준다. 앨범 전곡의 가사를 쓴 박주연의 어머니에 대한 고백 「나의 어머니」는 세련된 스패니시 기타로 곡에 모종의 엄숙함을 부여한 하광훈과의 또 다른 시도다. 그 시도는 차분한 김민우의 저음과 훵키 베이스 리듬에 의한 역설 「부탁해」에서 정점을 찍는데, 이 곡은 앨범 뿐 아니라 김민우 음악 전체 역사에서도 다소 이질적인 것으로 남았다. 마지막은 다시 느려진 「헤어지는 연인들을 위한 노래」. 첫 곡과 비슷한 정서를 유지하면서 떠나간 사람을 생각하는 그 절절함이 6분을 넘기면서까지 이어진다. 나레이션과 중성 합창의 배치는 작곡가 하광훈의 소소한 음악적 실험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김민우는 무엇이었고 어떤 가수였는가. 어설픈 외모, 좋아하는 사람에게 말 한 번 제대로 건네지 못할 것 같은 '쑥맥' 김민우는 그러나 90년대의 혜성이었고 한국 대중음악의 수확이었다. 그 시작이 이 앨범이고 90년대는 이 앨범으로 시작됐다. 가소로운 세월. 김민우는 지금도 플레이 되고 있다. 나를 포함한, 그 때를 기억하는 모든 이들의 방 안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43년 걸렸다" U2 첫 내한공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