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대 Jan 22. 2020

제17회 한국대중음악상 추천, 선정의 변들

오늘 제17회 한국대중음악상 장르별 후보들이 발표됐습니다. 올해도 록, 모던록, 메탈&하드코어 분과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썼던 공식, 비공식 '짧평'들을 여기 옮겨 놓는데요 단, 장르 판단은 내 생각과 그들의 생각이 조금 달랐다는 점 미리 말씀 드립니다. 특별히 공로상을 받으실 김수철 님에 관해 적을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공식 후보 및 수상자


공로상 - 김수철



그는 록과 국악으로 팝의 본질을 꿰뚫었다. ‘별리’와 ‘못다 핀 꽃 한 송이’가 구구만리에 묻어두었던 추상적인 우리 것이 ‘서편제’와 ‘황천길’을 딛고 구체적인 우리만의 것으로 우뚝 섰을 때 ‘작은’ 거인은 비로소 한국 대중가요사의 ‘진짜’ 거인이 되었다. 서양의 전기 기타에 우리네 산조를 접붙여 기어이 ‘동서양의 음악적 조화’를 피워내고야 만 그. 43년 세월 동안 그가 천착하고 집착한 것은 오로지 우리 음악과 서양 음악이 더불어 춤추며 어울리는 일이었으니, 그 야무진 의지는 여태껏 올림픽·월드컵·드라마·영화를 불문 기탄없이 스며들거나 들이쳤다. 바로 김수철의 업적이다.  


최우수 록 음반 후보 - 오칠 (Oh Chill) [Oh, Two Animals]



오칠은 미니멀 라인업으로 맥시멈 에너지를 뽑아낼 줄 아는 팀이다. 퀸스 오브 더 스톤에이지에 뮤직(The Music)을 더한 이 헐벗은 그루브는 수년 전 로열 블러드라는 팀이 떠들썩하게 소개한 바 있다. 스토너 록과 그런지를 디스코에 담갔다 뺀 이 '동물'적 사운드는 그러나 오칠의 것이기도 하다. 아니, 수록된 곡들의 변별력에서 본다면 오칠의 첫 작품은 어쩌면 로열 블러드 것보다 더 나은 데뷔작일지 모른다.


최우수 록 노래 후보 - 잠비나이 ‘온다(ONDA)’



우리네 베이스(거문고)와 저들네 베이스(bass)가 엎치락뒤치락 이글거리는 가운데 "내 품으로 와 내 품에서 잠들라"는 성스런 주문이 피어오른다. 굽이굽이 태평소의 설움을 지나 추상같은 타악의 불호령이 떨어지고, 이내 곡의 내막은 무국적의 혼돈으로 치닫는다. 을씨년스러우면서 따뜻한 조선의 국악과 거칠어도 뜨거운 서양 헤비메탈의 밀애. 그 짜릿한 만남을 잠비나이가 또 한 번 주선했다.


최우수 모던록 노래 후보 - 검정치마 ‘섬 (Queen of Diamonds)’



부드러운 드림팝이 쫄깃한 펑크(Funk)를 만나 터프한 헤비메탈 기타 솔로와 함께 부서지는 이 변덕스러운 곡은 검정치마가 자신의 세 번째 앨범의 두 번째 결과물을 단 한 곡으로 요약한 지점이다. 피로와 허무, 체념으로 점철된 노랫말과 함께 조휴일은 앞으로도 남 눈치 보지 않는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펼쳐나갈 의지를 이 한 트랙으로 천명한 것이다. 역시 영리한 친구다.


최우수 메탈&하드코어 음반 후보 - Eighteen April [Voices]



일말의 군더더기도 없다. 드럼의 파괴적인 질서, 클린·그로울링·스크리밍을 넘나드는 보컬의 3단 변신, 뱀처럼 유연한 기타·베이스의 철벽 리프가 작품이 지닐 뻔한 인간미에 제동을 건다. 그렇게 강박과 완벽주의가 맞물려야만 허락되는 '명반'이라는 종착역에 [Voices]는 얼추 닿아 있다. 무지막지한 호흡 끝에 이끌어낸 메탈코어, 젠트의 단단한 그루브가 무너질 뻔한 2019년 한국 헤비메탈의 자존심을 지켜냈다.


비공식 후보 추천


록 음반


쏜애플(Thornapple) [계몽]



해독되기 힘든 언어의 더께와 거칠게 날뛰는 리듬의 혼돈 속에서 음산하고 서글픈 음악적 살풀이가 펼쳐진다. 레이니썬, 어어부 프로젝트, 코코어가 지배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기이하고 매력적인 한국 록의 변태적 탈피를 오랜만에 목격했다.


소닉스톤즈 [Before The Storm]



솔로로서, 껌엑스와 소닉스톤즈의 리더로서, 또 한 레이블의 수장으로서. 창작과 제작, 연주와 발굴의 틈바구니를 종횡무진 누비는 이용원이 펑크와 헤비메탈, 팝 멜로디를 마음껏 뒤얽는 모습은 무조건 호쾌하다. 'This Is Hell!'과 '델피늄',  'Obsolete Punk Rocker'와 'Mariann Reathling'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기억해둘 만한 2019년의 록 에너지.


노브레인 [직진]



서늘한 트립합에서 일순 딕 데일풍 서프록으로 뛰어드는 '유령잔치국수'로 노브레인의 '직진'은 시작부터 '후진'한다. 촌스러운 것을 세련된 것으로 치부하는 세상에서 꺼내든 파워레인저 카드('노브레인져'), 노골적인 이기 팝 따라 하기('같이 가보자')로 감행하는 진정한 '직진'. 마니아 뿐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펑크를 퍼다 날라야 하는 밴드의 위치를 반영하는 노브레인의 무난한 현재.


잠비나이 [온다]



완전한 밴드의 골격을 갖춰 퍼붓는 가락의 절규, 현의 마수, 그리고 사상의 몽타주.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장르의 사각지대에서 오직 자신들만이 누리거나 펼칠 수 있는 음악이 있음을 이들은 여전히 알고 있고 나아가 더 깊이 깨달은 터다. 마지막곡 '온다(ONDA)'로 땅과 하늘에 입맞추는 사이 잠비나이는 어느새 종교의 영역에까지 음표를 뻗친다.


SAZA최우준 [SAZA]



자칫 흉내에 그칠 수 있을 장르를 최우준은 자신의 세계 안에서 완전히 통제해낸다. 블루스와 사이키델릭 록을 펑크(funk)에 어떻게 담금질 하면 되는지, 그는 기타 한 대로 11트랙을 지나오는 동안 요모조모 펼쳐보인다. 뻔한 레퍼런스와 기교에만 집착하지 않은, 순수한 '기타 사랑'이 담뿍 담긴 수작이다.


록 노래


코토바 '소멸의 소실'



없어지고 사라진다. '언어'를 뜻하는 밴드 코토바(言葉, cotoba)의 싱글 뜻은 결국 '무(無)'다. 그리고 곡 중간을 가로지르는 단 한 문장 "네 곁에 있으면 나는...". 언어의 여운은 건들거리고 비틀대며 제자리를 찾아가는 리듬들에 실려 반복되거나, 겹쳐지는 아르페지오 기타 리프를 타고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너를 찾아헤매는 이 4분 28초의 긴밀한 여정은 때론 언어가 없을 때 더 많은 언어를 들을 수 있다는 철학적 사실을 환기시켜 준다. 바로 음악의 이유이자 힘이다.


DamoNomaD 'The Alchemist'



리암 갤러거의 솔로 앨범 믹싱 엔지니어와 디 안젤로의 [Brown Sugar] 마스터링 엔지니어가 가세했다는 이유로 이 곡을 들어보자는 건 아니다. 그저 2분 24초부터 치닫는 록의 황홀경에 함께 빠져보자는 것이고, 시간을 순환으로 바라보는 밴드가 들려주려는 "꿈을 좇으며 시련에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 중 한 조각을 함께 바라보자는 것이다. 2019년 4월에 대한민국에서 이런 록밴드가 데뷔를 했다는 것 자체가 물론 감사한 일이겠지만.


에이퍼즈 'What The Fuzz'



제프 벡이 44년 전 들려준 퓨전록을 더 말끔하고 쫄깃하게 변주해내는 능력에서 에이퍼즈의 성장을 본다. 이 곡은 떡잎부터 '될성부른 나무'였던 에이퍼즈의 자신감 넘치는 현재이며, 한국 인스트루멘틀 록밴드의 가장 잘 다듬어진 현재다.


퍼플레이디 블루스 '그는 그렇게 전설이 되었다'



재야 블루스 명인과 신촌블루스 출신 블루스 명인이 뭉친 밴드가 쏟아내는 순도 200% 델타블루스. 최고 기타 실력을 얻기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로버트 존슨의 이야기를 느슨하게 풀어내는 도연블루스와 SAZA최우준의 콤비플레이는 한국 블루스 역사에서 손에 꼽을 만한 순간으로 남을 듯 하다.


블랙홀 'Rain'



30년이라는 관록, 그것이 낳는 여유. 관록과 여유는 다시 쉬운 멜로디와 단단한 리듬을 머금어 힘차게 팽창한다. 힘들이지 않고 곡 속에 힘을 불어넣을 줄 아는 힘이 밴드의 내공을 증명한다. 주상균의 치뻗어나가는 샤우팅이 반갑고 또 고맙다. 블랙홀. 어렵게 버텨준 이 땅의 록.


모던록 음반


구와 숫자들 [서울시 여러분]



2010년대 한국 모던록 문법을 제시, 완성한 팀이 자신들 음악의 첫 매듭은 서울 소시민들 삶에 현미경을 들이댄 콘셉트 앨범으로 마감했다. 한 곡의 가사는 한 편의 단편 소설이고 보컬(송재경)의 따뜻한 음색과 멜로디는 이야기를 전달할 최적의 운반 도구다. 과유불급을 되새기게 하는 '숫자들'의 안정된 연주, 수려하지도 수수하지도 않은 악기들의 소리 균형도 이 정도면 됐다. 장르를 떠나 국내 '올해의 앨범'으로 손색 없는 작품. 반드시 앨범으로 들어야 하는 앨범이다.  


브로콜리 너마저 [속물들]



브로콜리 너마저 음악의 보편성을 아직도 [보편적인 노래]에서 찾는 사람이라면, 그들의 [졸업]에서 아직 졸업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이 앨범이 모자라게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속물들]엔 거짓 없는 브로콜리 너마저의 음악이 담겼다. 그 감성, 그 말들, 그 멜로디와 리듬이 여전히 듣는 이의 가슴 한켠을 울컥하게 만든다. 윤덕원은 솔로일 때보다 밴드에 있을 때 더 좋은 곡을 쓴다. 계피가 없어도 브로콜리 너마저가 이어질 수 있는 이유다.    


로큰롤라디오 [You've Never Had It So Good]



카뮈와 헤밍웨이를 인용하며 이들이 구축한 염세의 음악은 그러나 단어가 지닌 부정적 느낌관 정반대의 완결(또는 완벽)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 크루너(Crooner) 같은 김내현의 보컬과 펑키하거나 몽롱한 김진규의 기타를 중심으로 로큰롤라디오는 마침내 자신들만의 음악세계를 주저없이 굳혔다. 그들의 시지프스는 그 지옥같은 '바위의 형벌'에서 비로소 벗어난 것이다.


검정치마 [Thirsty]


남 눈치 안 보고 천천히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다. 호불호는 갈릴지언정 쉽게 그 길을 틀렸다 말할 수 없는 건 조휴일이 뽑아내는 결과물들이 가진 평균 이상의 완성도다. '틀린질문'에서 'Lester Burnham'으로 넘어갈 때, 넘어가서 도달하는 5분 여 끝에 나는 계속 검정치마의 편이 되기로 했다. 물론 남은 10곡을 들은 뒤에도 내 다짐은 변하지 않았다.   


The Bowls [If We Live Without Romance]



대중성과 예술성을 함께 잡았다는 진부한 표현을 할 수 밖에 없는 작품이다. 음악을 향한 밴드의 짙은 고심이 아직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진 못 한 것 같지만, 그러나 반드시 전달되어야 하는 2019년의 수작이다. '모던'록이라는 장르 이름이 가진 혼용성, 시의성을 따졌을 때 이 앨범만큼 그 이름에 부합하는 작품이 또 있을런지. 적어도 2019년 국내 음반들 중엔 없을 것 같다.


모던록 노래


천용성 '대설주의보'



2019년 가장 아름다운 싱글 중 하나인 '대설주의보'는 작사 따로 작곡 따로가 아닌, 싱어송라이터 한 사람의 생각, 경험, 정서, 느낌이 뒤섞였을 때 어떤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지를 보여준 귀한 사례다. 브로콜리 너마저의 신보가 나온 해에 가장 브로콜리 너마저다운 곡은 의외로 천용성의 감성에서 잉태됐다.


넬 '오분 뒤에 봐'



더는 모던록 밴드로만 부를 수 없는 넬이 발매한, 더이상 모던록 앨범이 아닌 신보에서 건진, 그럼에도 모던록을 들려주고 있는 넬의 대중적 감성 싱글. 검정치마의 'Everything'을 닮은 인트로에서 김종환의 목소리로 넘어가는 대목에서 팬들의 '심쿵'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더더(TheThe) 'Heroes'



데뷔 22주년. 더는 나올 게 없을 것 같은데 김영준의 송라이팅 감각은 그 판단이 경솔했거나 틀렸음을 즉시 반박한다. 질주하는 얼터너티브록 기타, 그 안에 보석처럼 감춰진 희망의 메시지와 멜로디는 90년대 후반에 더더를 맞았던 세대에게 기어이 가슴 뭉클한 무엇을 남긴다.


스몰타운 'Starlight'



2010년대 국내 모던록 밴드들이 가장 많이 구사하는 일렉트릭 기타 톤. 이에 앞서 곡의 밑그림을 그리는 브라스 편곡과 그 밑그림에 채색을 가하는 혼성 보컬 화음은 자칫 평범하게 들릴 수도 있었을 이 곡에 무지갯빛 반전을 심었다. 한국 모던록의 20년 간극을 줄여낸 단 한 곡.


양반들 'Skyway'



스산한 방랑과 뜨거운 혁명을 일삼던 전범선이 군 제대 후 밴드 이름에서 자신을 누락시켰다. 그랬더니 음악은 대뜸 하드록에서 브릿팝으로 선회, 듣는 사람들을 당혹케 한다. "수묵화에서 유화로 바뀐 느낌"이라는 혹자의 짧평은 이 건전한 변신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해내었다.


메탈&하드코어


메써드 [Definition Of Method]



'메써드의 정의'라니. 자신감 넘치는 타이틀 그대로 혼비백산 하는 리듬과 박진감 넘치는 리프의 얼개는 군더더기를 용납하지 않는 스래쉬 메탈 사운드로 내리 치닫는다. 이들이 앨범을 낼 때마다 국내 헤비메탈계에 이들의 대안이 없다는 사실을 안도해야 할지 아쉬워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Eighteen April [Voices]


젠트(Djent)와 메탈코어의 경계를 악착같이 넘나들며 자신들의 소리(voices)를 빚어내는 밴드다. 가장 돋보이는 건 김영일의 처절한 그로울링 및 사악한 프라이 스크리밍과 홍성봉의 철저한 리듬 통제다. 두 사람이 줄 쳐둔 경계 안에서만 트윈 기타와 베이스는 비로소 완전한 그루브에 이를 수 있다.  


체인리액션 [Features / Creatures]



보컬의 매서운 스크리밍도, 기타와 베이스의 메마른 톤도, 드럼의 펄떡이는 프레이즈도 온통 긴장 투성이다. 절망과 희망, 분노와 미소가 한끗 차라고 외치는 듯한 이 불같은 하드코어는 지금 우리가 겨우 견뎌내고 있는 현실의 부조리를 모두 태워버릴 듯 일관되게 뜨겁다. "상처만 가득히 몸 안에 품고 내일을 바래도 여전히 쓰린걸"이라는 'Vertigo'의 가사가, 아프다.


The Geeks [The Constant]



대한민국에서 결성한 하드코어 펑크 밴드가 20년을 버틴 건 기적을 넘어 그냥 신기한 일이다. 더구나 결성 20주년 기념 앨범을 이토록 입이 쩍 벌어지는 양질로 만들어내니 그 세월이 더욱 값져 보인다. 해외에서 더 통하는 이 글로벌한 광기는 'Two Suns / The Constant'에서 화나의 랩을 통해 끝내 어떤 감동으로   


번 마이 브릿지스 [I Never Want Your World]



10년 밴드 생활 끝에 '마지막 출사표'라니. 이 앨범 보도자료가 남긴 묵직한 형용모순이 일순 짠했다. 저 말은 번 마이 브릿지스가 신(scene)에서 10년을 버텨보았지만 더는 버틸 수 없을 것 같다는 고백 같았다. 밴드의 늦은 데뷔는 이들의 이른 은퇴를 전제한 셈이다. 'Fixed Future'에 피처링한 김동경의 써틴 스텝스와 함께 부디 이 날선 분노의 소리를 좀 더 이어나갔으면 싶다. 마지막 출사표가 아니길 빈다.


http://koreanmusicawards.com/2020/


매거진의 이전글 90년대 대중가요의 시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