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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May 01. 2020

결핍의 현실에 도전한 록 콘셉트 앨범

ABTB [Daydream]



대중이 음악보다 영화를 더 찾는 이유는 바로 ‘이야기’ 때문이다. 물론 음악에서도 곡 단위로 마치 ‘내 이야기’ 같은 걸 발견하기도 하지만, 노래는 짧고 압축적이어서 영화만큼 구체적이고 질긴 감동을 적어도 불특정 대중에겐 주지 못한다. 눈으로 보는 서사 대신 귀로 듣는 상징만 있는 그것에 사람들의 진심과 공감이 끼어들 여지는 적다.


ABTB는 그런 음악이 지닌 약점 아닌 약점 보완을 자신들 신보의 겉옷으로 삼았다. 밴드 측이 굳이 핑크 플로이드와 드림 씨어터, 퀸스라이크를 레퍼런스로 말한 것은 좀 더 길고 깊게 음악으로 ‘이야기’를 해나가겠다는 의지로 나에겐 읽혔다.


밴드의 두 번째 작품은 드러머 강대희가 쓴 단편소설 ‘백일몽(Daydream)’에 기반 했다. 모르긴 해도 첫 곡 ‘Nightmare’는 가위눌림에 가까웠던, 주인공 세준이 광화문 ‘태극기 부대’를 지나친 273번 버스 안에서 꾸었던 꿈이었을 것이고 ‘인정투쟁’과 ‘무리수’는 화가 친구의 전시회 오프닝 현장에서 세준이 만난 “이빨 터는 꼬라지가 심상치 않”았던 무례한 헛똑똑이와 관련된 사연일 것이다. 그 헛똑똑이는 세준에게 “그냥 가만히 있는 건 비겁하다. 어느 쪽으로든 선택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치 자신은 전지전능, 무결점의 절대자인 것 마냥.


두 번째 싱글 ‘A-void’ 역시 안정된 삶을 택한 자신의 현실 논리로 불안한 삶에 집착하는 상대의 이상론을 짓밟는 친구의 비꼼에 세원이 연거푸 맥주를 마시고 마주한 거리의 인상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이 앨범이 지닌 핵심 정서를 냉소와 자조에서 찾을 수 있다면 이 곡의 코러스는 어쩔 수 없이 핑크 플로이드의 ‘Another Brick In The Wall Pt.2’가 머금은 창백한 투쟁과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사계’로 표현한 무표정한 분노를 떠올리게 한다. 재능도 없으면서 음악을 붙잡고 있다며 세원에게 타박을 준 직장인 친구와 에피소드는 소설의 다섯 번째 챕터 ‘한 사람의 마음 속엔 얼마나 많은 역설이 숨어 있는가’를 묘사한 듯한 ‘Paradox’에서 한 번 더 다뤄진다.



물론 저기 뒤 신윤철이 기타를 친 타이틀 트랙 ‘Daydream’은 아홉 번째 챕터 ‘그것은 마치 죽은 것도 같고 죽지 않은 것도 같았다’ 이후를 그린 것일 터. 이처럼 밴드가 지향한 문학적 서사는 ABTB 2집 전반에 드리운 특징이요, 그 특징은 곧 앨범의 분명한 콘셉트다. 터프한 샤우팅으로 박력의 냉소를 내리꽂는 박근홍, ‘인정투쟁’과 ‘My People’에서 각각 존재감을 뽐낸 강대희와 장혁조(베이스),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서도 분명한 자신만의 영역을 가꿀 줄 아는 기타리스트 황린. 이들 모두가 하나 돼 구축한 이야기의 성은 [The Astonishing](드림 씨어터)의 장엄한 상상보단 [Operation: Mindcrime](퀸스라이크)의 준엄한 관찰에 더 가깝다.


하지만 이 또한 귀로 듣는 음악이라, 멤버들의 노력과 재능과 의지도 결국 좋은 사운드로 거듭나야 비로소 설득력을 갖는다. 그래서 나는 만약 이 앨범이 누군가의 칭찬을 들을 일이 있다면 부분 녹음과 전체 믹싱, 마스터링을 맡은 타이탄스튜디오의 타이트 한 결과물에 제법 많은 빚을 진 것이라 감히 말하겠다. 저들이 빚어낸 양질의 소리 디자인이 없었다면 앨범 [Daydream]은 분명 지금보단 덜 빛났을 거다.


시인 오민석의 책 <밥 딜런, 그의 나라에는 누가 사는가>엔 이런 말이 있다.


예술은 현실을 결핍의 공간으로 읽음으로써 현실에 도전한다
진정한 예술가는 자신의 과거와 끊임없이 작별을 고한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ABTB가 “자신의 과거에 작별을 고하며 결핍의 공간인 현실에 도전한” 음반이다. 메시지로서 단단한 콘셉트를 음악으론 깔끔한 소리 근육을, 이들은 묵묵히 3년 여를 견딘 끝에 기어이 일궈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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