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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Jul 28. 2020

서태지와 김태원도 쓴 기타

크리스 기타 공방 박민병 대표

진주시 금산면에 있는 크리스 기타 공방 박민병 대표.



크리스(Chris). 경남 진주시 금산면에 있는 기타 공방 이름이다. 진주에서 초중고를 모두 다닌 대표 박민병 씨는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하다 ‘음악의 조형성’을 고민한 나머지 악기의 세계로 발을 들이게 된다. 그에게 음악을 시각화 할 수 있는 게 바로 악기였기 때문이다.


2004년부터 기타 제작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그는 온라인을 통해 클래식 기타 세계 100대 장인 중 한 명인 ‘알마 기타’ 김희홍 선생에게 가르침을 얻어 2010년 즈음 진주에 터를 잡고 지금까지 기타와 살고 있다.


해외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기도 한 그는 기타도 자신만의 철학을 담아 만드는데 그 철학은 다름아닌 ‘진심’이다. 판매에 급급해 만든 기타는 그 가벼운 동기가 소리에도 반영돼 결국 기타의 소리를 해친다. 만든 사람의 진심이 들어가지 않으면 기타는 제대로 울 수 없다. 그래서 박 대표는 “하얀 도화지 같은” 기타를 추구한다. 화가가 백색 캔버스 위에 자신의 세계를 그려나가듯, 연주자도 그런 기타여야만 자신의 음악 세계를 온전히 그려나갈 수 있으리라 그는 생각하는 것이다.


부활의 김태원이 주문한 기타. 서태지가 공연에서 ‘take3’를 연주한 기타. 크리스 기타 공방 박민병 대표를 진주 언론 ‘단디뉴스’ 김순종 편집장과 함께 만났다. 


김성대 대중음악평론가(이하 '김'): 진주가 고향인가.

크리스 기타 공방 박민병 대표(이하 '박'): 그렇다. 진주에서 초, 중, 고등학교를 다 다녔다.


김: 중학교 때 직접 기타 연주를 하신 걸로 안다. 연주에는 미련이 없는 건가.

박: 미련은 없다. 제 실력에 한계도 있고, 연주가로 살기 위해선 경제 여력도 있어야 계속 공부를 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전 제가 만든 악기를 다른 사람이 연주해 빛을 발하는 게 더 좋다.


김: 손에 상처가 보인다.

박: 작업 하다 톱에 베였다. 이 상처 때문에 클래식 기타처럼 터치가 중요한 연주는 거의 할 수 없는 상태다. 사실 대학교 때 (록)밴드를 한 적이 있어 지금도 여건이 되면 할 마음은 있지만, 집중력이 필요한 저녁 시간을 많이 뺏겨 못 하고 있다.


김: 기타 제작 일은 2004년도부터 시작한 걸로 안다.

박: 대학을 미대 조소과엘 다녔다. 당시 제 작품의 주된 모티프가 ‘음악의 조형성’을 표현하는 것이었는데, 음악의 요소를 시각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악기였다. 처음엔 오브제로 만들다 나중엔 제대로 만들어봐야겠다 싶어 취미로 악기를 만든 것이 시작이었다. 그러다 2005년도에 클래식 기타 제작에 도전했는데 독학으로 될 일이 아니라는 걸 알고 온라인 누리집을 통해 자문을 구하다 우연히 기타 장인 한 분을 만나게 됐다. “이건 온라인, 전화 통화로 안 되는 거다”는 그 분 말씀에 당시 작업하던 것들을 싸들고 경기도 이천으로 가 열심히 배운 기억이 난다. 


김: 그 분이 누구신가.

박: 지금은 충북 괴산에 터를 잡고 계신, 클래식 기타 세계 100대 장인이시기도 한 알마 기타(Alma Guitar)의 김희홍 선생님이다. ('클래식 기타 세계 100대 장인'은 전세계 저명한 기타 제작가들과 연주자들이 선정한 결과에 따른다-필자주)



김: 문하생으로 들어간 건가.

박: 보통은 문하생으로 들어가 배우는 게 보통이지만 저는 제작 이론과 기법들을 배워 다시 진주로 내려와 작업한 케이스다. 그러면서 계속 연락을 드려 궁금한 것 여쭤보고, 찾아 뵙기도 하면서 실력을 다졌다.


김: 지금 이 공방은 언제 문을 열었나.

박: 처음엔 진주시 구 교육지원청(상대동) 뒤쪽에 공방을 열어 6년 정도 했다. 2010년 말에 시작해 2011년 초부터 체계를 잡기 시작했는데, 이곳 금산면에선 올해로 3년 조금 넘게 해오고 있다.


김: 2000년대 중후반에 공백이 보인다.

박: 제가 카톨릭 신자인데 2007~2010년 사이 선교 활동 겸 신학, 철학 공부를 위해 유학을 갔다. 머문 곳은 주로 인도와 파키스탄이었고 이탈리아 로마와 스페인 마드리드에도 조금 있었다. 2010년 즈음 파키스탄에서 정치 분쟁이 일어났고 마침 건강도 좋지 않아 귀국하게 됐다.


김: 그때도 기타 제작은 계속 생각하고 있었나.

박: 제가 뭘 만드는 걸 좋아한다. 해외에 있을 때도 ‘시간 날 때 해야지’ 생각하며 기타 재료를 모았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공방 차리기 전 김(희홍) 선생님께 조언을 구했다. 선생님은 “산에 오를 때 가이드가 있으면 단시간에 올라갈 수 있는데, 가이드가 없으면 헤맬 일도 있을 거다. 내 밑에서 몇 년 제대로 배우면 좋겠지만 혼자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 다만 힘들긴 할 거다. 실패하는 경우도 있을 거고.” 말씀하시며 응원해주셨다. 선생님은 내가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이다. 선생님도 그걸 원하시는 것 같다.


김: 마케팅은 따로 하는지.

박: 지난해 10월 KBS, MBC에서 취재를 오긴 했지만 지금까진 주로 입소문이었다. 클래식 기타 전공생, 기타 애호가, 통기타 동아리, 밴드 하는 사람들이 주로 찾아주신다. 이유는 ‘소리’다. 제가 만든 악기를 써본 사람들, 수리나 셋업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도 악기 소리에 끌려 오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공방에서 들었던 기타 소리가 잊혀지지 않아 사간 사람들도 있다. 주로 중부권(대전과 충청권) 쪽 고객이 많은 편이다.



김: 크리스(Chris)라는 이름은 무슨 뜻인가.

박: 크리스는 크리스찬에서 ‘찬’을 뗀 이름이다. 어쿠스틱과 일렉트릭 기타는 ‘크리스’라는 이름을 쓰고, 클래식 기타는 ‘기따라 아구스티나(스페인어로 ‘아구스티나 기타’라는 뜻-필자주)’라는 이름을 쓴다. 아구스티노는 제 세례명이다. 


김: 철학, 신학을 배운 게 기타를 만드는 데 영향을 주었나?

박: 물론이다. 소리를 만드는 건 공식이 아니어서 저는 늘 ‘왜 이런 소리를 만드는가’ ‘왜 이런 소리를 추구하는가’를 고민한다. 가령 특정 기타 소리를 내기 위해선 그에 맞는 내부 설계를 해야 하는데, 일렉트릭 기타는 목재 자체를 잘 고르거나 조합만 잘 해주면 좋은 소리가 나지만 클래식과 어쿠스틱 기타 경우엔 하나만 소홀해도 소리에서 티가 나 더 세밀하고 세심하게 접근해야 한다. 이처럼 기타는 ‘진심’으로 만들어야지, 빨리 만들어 빨리 팔려고만 들면 그 마음가짐이 악기에도 반영 돼 퀄리티에 분명히 영향을 준다. 연주가가 편하게 연주할 수 있고, 연주가의 손이 계속 가는 악기는 결국 만드는 사람의 진심에서 나오는 것이다.


김: 기타 한 대를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되나. 가격도 알고 싶다.

박: 일렉기타 경우엔 두 달 반에서 석 달 정도 걸리고 어쿠스틱, 클래식 기타는 넉 달 가량 걸린다. 일렉기타 가격은 150만원에서 300만원 사이, 어쿠스틱 기타는 저렴한 게 130~180만원, 스탠더드는 250만원, 스페셜 기타는 350만원이고 마스터 모델은 500만원 이상까지 간다. 스탠더드, 스페셜, 마스터 모델에서 클래식 기타 가격은 어쿠스틱 기타와 비슷하다.


김: 추구하는 기타 톤 같은 게 따로 있는지.

박: 화려하지 않고 단정하되 치우치지 않는 ‘중도’의 소리를 추구한다. 화가가 있다 치자. 화가는 보통 하얀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린다. 화가가 올린 색깔들은 그 하얀 캔버스 위에서 비로소 제 빛을 내지, 빨간 캔버스에 올리면 색깔은 묻힌다. 기타 연주도 마찬가지다. 소리가 치우치지 않아야 연주자가 하얀 도화지 위에 그림을 그리듯 제대로 표현할 수 있다. 흰 바탕이 아닌 원색 바탕이 처음엔 특이하다 여겨질 수도 있지만 결국엔 한계에 부딪힌다. 저는 하얀 도화지 같은 악기 소리를 지향한다. 


박민병 대표가 김태원(부활)에게 제작해준 일렉트릭 기타.


박민병 대표가 자신이 만든 기타 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김: 서태지와 김태원(부활)의 기타도 만들었다고.

박: 2009년 즈음 방학 때 한국에 잠깐 들어와 지인 공방에 있을 때 과거에 처분한 제 기타를 써본 김태원씨 후배께서 연락을 해왔다. 제 악기의 마인드가 좋아 김태원 씨가 한 번 써보고 싶다는 용건이었고, 흔쾌히 제작 해드렸다. 서태지 씨 경우엔 제 ‘팬심’으로 만들어드린 거다. 2004년 군대 말년 휴가 때 구해둔 양질의 로즈 우드로 2014년, 그러니까 서태지 씨가 9집을 내기 전 ‘이쯤이면 새 앨범이 나오겠구나’ 생각하고 만들기 시작했고 실제 기타가 완성될 즈음 그가 컴백 했다. 만든 기타는 컴백 후 부산 콘서트 때 전달했다. 이후 제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전국 투어 앙코르 콘서트 때 서태지 씨가 제가 드린 기타를 소개하고 솔로 연주를 했다고 들었다. 그 콘서트에선 제가 드린 기타로 ‘take3’를 최초로 연주한 걸로 안다. 얼마 뒤 그의 공연장에 직접 가니 “친구, 당신이 만든 기타 소리 들어볼래?”라며 연주를 해주기도 했다. 무척 기뻤다.”


김: 서태지 외 내가 만든 기타를 한 번 연주해줬으면 하는 사람이 있나.

박: 브라질의 기타리스트 파브리지오 마토스다. 몇 년 전 김희홍 선생님과 관련 얘기가 오갔는데 그(파브리지오 마토스)가 언젠가 제가 만든 기타 소리도 듣고 싶다 하니 김 선생님도 허락을 해주셨다. 기회가 닿는다면 그 친구가 제 기타를 연주하는 걸 들어보고 싶다.


김: 예전에도 지금도 국내 연주자들은 깁슨이나 펜더, 마틴 등 외국산 기타를 선호한다. 이와 관련해 한 말씀.

박: 당연히 외국 유명 뮤지션들이 써서 검증이 된 악기들이기 때문일 거다. 그럼에도 대량생산 된 악기들은 한계가 있다. 기타 제작에 쓰는 목재들은 저마다 톤과 결이 다른데 대형 브랜드는 자신들이 인증한 설계 그대로 기타를 만든다. 외국도 마찬가지지만 소규모 공방에서 만든 하이엔드 기타와 공장에서 만든 기타는 일단 소리에서 질 차이가 많이 난다. 물론 대형 브랜드 기타들도 어느 정도 소리는 나오지만 디테일에선 수제 공방 악기들과 비교할 수준은 아니다. 무엇보다 국내 연주자들이 국내 공방 악기들을 많이 써주셔야 제작가들이 더 발전할 수 있고 업계도 활성화 될 수 있다. 무조건 이름 있는 외국 브랜드 기타를 쓰는 것보단 자기 손에 맞고 자신이 선호하는 소리에 맞는 악기들을 고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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