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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Sep 18. 2020

판단은 대중의 몫이다

또치아나 '뉴스속보'


한 케이블 방송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이 불을 지핀 ‘트로트 열풍’이 심상치 않다. 그야말로 여남(女男)이 따로 없고 노소(老少)가 무의미한 국민적 반향이다. 


일본의 엔카(演歌)와 미국의 폭스트롯(Foxtrot)을 반씩 섞은 트로트라는 장르는 사실 한국 기성 세대에겐 오랜 음악 친구였다. 홀로 있는 공간에서든, 함께 부르는 공간에서든, 차가 쉬어가는 휴게소에서든 트로트는 끊임없이 그네들의 취향을 대변해왔고 또 저격해왔다. 그렇게 ‘라떼’와 ‘꼰대’로 종종 비하 되는 특정 세대의 지지 장르가 한 프로그램에 힘입어 수 십 년의 궤를 돌아 부풀어 터진 것이고 급기야 지금의 문화 현상을 낳은 것이다. 어떤 유행이든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건 없는 법. 70년대 포크, 90년대 인디음악, 2010년대 힙합과 아이돌 일렉트로닉 팝이 모두 그랬다. 지금 대한민국은 누가 뭐라 해도 ‘트로트의 시대’다.


그리고 여기, 이 전면적이라면 전면적일 트로트 붐에 가세 하려는 여성 한 명이 있다. 욕심도 끼도 똑같이 많아 보이는 그는 아나운서 겸 다수 축제/행사 진행자로, 단편영화의 배우로, 또 모델로 활동해왔다. 바로 박윤미(활동명: 또치아나)다.


곡 ‘뉴스속보’는 수년간 지역 mbc에서 뉴스데스크 진행을 맡아 온 아나운서 박윤미가 가수로 출사표를 던지고 내놓는 첫 결과물이다. 사랑의 감정을 뉴스 보도에 비유한 라임과 가사는 혹자가 던진 “성인가요의 미학적 파산”이라는 일갈 앞에서 다소 움츠러들 만도 하지만, 디스코 리듬에 펑키 기타를 곁들인 김재우의 연주와 보컬 디렉팅, 프로듀싱을 책임진 재즈 싱어 김주환의 존재감은 음악 완성도 면에서 따로 챙겨야 할 요소들이다. 박윤미는 이 요소들을 저변에 깔고 자신의 주종목인 앵커 멘트까지 곡에 더해 이 곡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에둘러 설명해 낸다. 이렇듯 표면적 표현은 언뜻 가벼워 보여도 노래 부르려는 자의 속내는 한 없이 진지하다.



그동안 트로트(성인가요)는 민망한 가사 내용과 그 곡이 그 곡 같은 멜로디 구성의 천편일률성으로 꾸준히 저평가 되어 왔다. 하지만 그런 문제 의식은 그것을 문제로 의식하는 자들의 입장일 뿐, 그것을 딱히 문제로 보지 않는 대중의 생각은 달라 보인다. 작금 트로트 문화를 두고 감행한 소수의 날카로운 지적과 예리한 사색은 정작 받아들이는 대중에겐 크게 가 닿지 못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생각과 달리 대중에게 '저급과 고급의 기준'은 희미하다. 어쩌면 그런 구분 자체가 대중에겐 무모하거나 무의미할 지도 모르겠다. 음악을 ‘미학적 고찰’의 대상이 아닌 ‘즉흥적 소비’의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대부분 사람들에게 일각에서 논하는 성인가요의 ‘품위와 격조’는 그저 하품나는 그들만의 고지식한 주장일 수 있다. 그렇다고 그런 대중이 패티김이나 최백호, 조용필과 배호, 임희숙과 김수희의 깊이를 과연 모를까. 상황이 아무리 절망적으로 보여도 성급한 일반화는 피해야 한다.


누구나 자신이 생각하는 취향과 수준을 주장할 순 있어도 그걸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순 없다. 대중을 생각하고 만든 대중문화 작품(또는 상품)에 대한 판단은 당연하게도 그걸 접하는 대중의 몫이다. 박윤미가 고심해 내놓은 '뉴스속보'도 마찬가지다. 미학적 판단으로 무조건 홀대하는 대신 대중의 판단을 기다리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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