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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Sep 06. 2020

매닉스의 리더, 칠레 영웅 빅토르 하라를 추모하다

James Dean Bradfield [Even In Exile]

제임스 딘 브래드필드의 두 번째 솔로 앨범(사진)은 칠레 민중 음악가 빅토르 하라에게 헌정됐다.


지난 8월 14일, 웨일즈의 보석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이하 ‘매닉스’)를 이끄는 싱어송라이터 제임스 딘 브래드필드가 새로운 솔로 앨범을 냈다. 2006년작 [The Great Western]에서 따지면 두 번째, 벤 파커 감독의 2016년작 ‘더 체임버’ 사운드트랙까지 친다면 세 번째 솔로 결과물이다.


이 앨범은 첫 싱글 ‘The Boy From The Plantation’에서 풀네임이 언급되는 칠레의 민중 음악가 빅토르 하라(1932.9.28~1973.9.16)에게 헌정됐다. 빅토르는 칠레 민중을 위해 음악과 연극 활동을 펼치며 사회주의 정치인 살바도르 아옌데를 지지한 인물. 따뜻한 좌파 성향 록밴드 매닉스의 리더가 선택한 음악적 헌정 대상으로 적격인 것이다.


빅토르는 1973년 9월 11일 미국 CIA의 지원 아래 군사 쿠테타를 일으켜 사회주의 성향인 아옌데 정부를 전복하고 정권을 잡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군인들에게 쿠데타 5일 뒤인 9월 16일 끌려가 사형 선고를 받은 뒤 총살 당했다. 그렇게 40년의 칠레 민주주의가 군사 독재 정권의 40여 발 총알이 되어 빅토르 하라의 몸을 뚫었다.


하지만 역사는 그의 죽음을 헛되이 두지 않았다. 2009년, 빅토르 하라의 시신이 부검을 위해 무덤에서 나왔고 칠레는 그의 장례식을 국장으로 치렀다. 그리고 6년 뒤엔 빅토르를 고문하고 살해한 혐의로 전직 군인들 10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저들을 조종하며 독재와 학살을 일삼은 피노체트는 이 앨범의 첫 곡 ‘Recuerda’에서 마거릿 대처, 리처드 닉슨과 함께 다뤄지고 있다. 닉슨은 매닉스의 2004년작 [Lifeblood] 수록곡 'The Love Of Richard Nixon'에도 등장했었다.




이번 작품은 크게 두 사람의 협업에서 나왔다. 리차드 비크, 로즈 윌리암스와 공동 작곡한 ‘Seeking The Room With The Three Windows’, 개빈 피츠존과 함께 곡을 쓴 ‘Under The Mimosa Tree’, 그리고 빅토르 하라의 원곡 ‘La Partida’를 뺀 모든 곡을 제임스가 썼고 가사는 시인 겸 극작가 패트릭 존스가 썼다. 매닉스의 베이시스트인 니키 와이어의 형이기도 한 패트릭은 지난 2008년 11월 ‘암흑은 별이 뜨는 곳이다(Darkness Is Where The Stars Are)’라는 시집을 내고 영국 기독교 단체 크리스천 보이스(Christian Voice)와 대립한 인물로, 해당 단체는 패트릭의 책이 “매우 저속하고 신성모독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주장해 당시 웨일즈 카디프 서점에서 예정 됐던 작가 사인회와 책 진열을 동시에 무산시켰다. 패트릭 존스는 매닉스의 명곡 ‘The Everlasting’에 제목과 영감을 준 사람이기도 하다.



이 같은 작곡가와 작사가의 1:1 구도는 마치 실종된 매닉스의 전 멤버 리치 제임스의 가사로 만든 [Journal For Plague Lovers]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음악은 [Know Your Enemy] 이전 보단 [Lifeblood] 이후에 가까운데 딱히 단정 지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가령 ‘There’ll Come A War’처럼 축축한 분위기를 머금은 곡은 [This Is My Truth Tell Me Yours]와 [Rewind The Film]을 넘나들지만, 이어지는 ‘Seeking The Room With The Three Windows’는 확실히 [Futurology]와 [Resistance Is Futile]에 좀 더 가깝다. 엄숙하면서 아름다운 피아노 리프를 장착한 ’Thirty Thousand Milk Bottles’나 남편이 죽은 뒤 망명해 반(反)피노체트 운동을 벌인(이 작품의 제목은 다름 아닌 ‘망명 중에도(Even In Exile)’이다) 조안 하라를 기억하는 ’Without Knowing The End (Joan's Song)’은 [Everything Must Go]에 담아도 어색하지 않을 서슬퍼런 로맨티스트 브래드필드만의 서정성(또는 질주감)을 마음껏 전시한다. 제임스는 그 사이 어쿠스틱 연주곡과 일렉트릭 가사곡도 마주세워 칠레 현대사에 큰 획을 그은 비운의 운동가를 위한 늦은 추모를 차분하게 펼친다. 그런 추모를 끝맺는 곡은 바로 ‘Santiago Sunrise’. 산티아고는 빅토르 하라가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곳이다. 



의미를 지닌 노래는 고동치는 핏줄 속에 흐르지 
죽어갈 자의 혈관 속에서 참다운 진실을 노래하면서


빅토르 하라의 ‘선언(Manifiesto)’이라는 노래 가사다. 글쎄, 아마도 ‘세대를 대변한 테러리스트’로서 지성과 분노의 로큰롤을 하리라 선언했던 1992년 제임스의 마음도 빅토르의 그것과 크게 다르진 않았을 터. 음악으로 민중과 사회주의를 지지한 칠레와 웨일즈의 선후배가 만나는데 무려 반세기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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