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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Nov 23. 2020

30년 록 유행의 완벽한 재해석

Badlamb [Frightful Waves]

2018년 결성된 록 밴드 배드램의 첫 정규작 'Frightful Waves'. 중세 시대의 불안이 느껴지는 흑백 아트워크는 보컬 이동원의 솜씨다.


배드램은 록이라는 장르를 잘 이해하고 있다. 아니, 이해를 넘어 장르에 확신을 갖고 그 장르에 대한 나름의 해답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은 귀하다. 나약한 자아와 뒤틀린 욕망, 비열한 거짓과 비겁한 망각에 취한 현대사회의 디스토피아 속성을 폭로하는 이들 음악(‘The Plague’, ‘Gula’, ‘Sodom’은 정규작 발매에 앞서 ‘파멸 3부작’이라는 별도 시리즈로 세상에 공개됐다)은 앨범에 실린 모든 곡과 가사를 쓴 이동원의 냉소가 압축된 ’Sodom’이 증명하듯 말 그대로 “대중에게 시대정신을 전달하는 음악적 저널리즘 역할”에 정확히 부합하는 것이다.


그런 배드램의 록은 아수라장, 대혼란을 뜻하는 밴드 이름(배드램은 ‘Bedlam’으로도 적힌다)에 걸맞게 70년대 하드록, 80년대 헤비메탈, 90년대 그런지라는 30년의 유행을 가차없이 호명해 가장 합리적으로 뒤섞어 낸다. 가령 호쾌한 오프닝 곡 ‘Crucible’에선 에어로스미스와 건스 앤 로지스의 박력이, ‘Gula’와 ‘겁’, ‘La Plaga’에선 앨리스 인 체인스의 스산한 사이키델릭이, 그리고 ‘The Plague’에선 툴의 지적인 헤비니스가 어른거리는 식이다.


여기엔 보컬 이동원이 풀어낸 음표, 텍스트 만큼 중요한 기타리스트 편지효의 과감한 릭(Lick)들도 한 몫 했다. 국내 록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온 사람들에게 편지효란 까마귀와 타마 앤 베가본드로 안면이 있을 이름일 터. 하지만 그때의 편지효와 배드램의 편지효는 다른 편지효라고 봐야 한다. 편지효는 블루스와 재즈를 록으로 해석한 과거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배드램식 하드록, 그런지에 그야말로 ‘올인’ 한다. 스타일의 차이에서 불거진 이 긍정적 위화감은 비교하자면 ‘헐크’와 ‘와호장룡’의 이안까지는 아닌, ‘지구를 지켜라’와 ‘1987’의 장준환 정도에 가깝다고 보면 되겠다.



70년대 유에프오에서 마이클 쉥커나 1987년의 화이트스네이크에서 존 사이크스에 버금가는 존재감을 지닌 편지효의 기타는 실제 앨범에서 꽤 많은 부분을 책임지거나 표현하고 있는데, 이동원의 가사가 시로서 음악 위를 막연하게 떠도는 것이라면 편지효의 기타 솔로는 산문으로서 음악을 구체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앨범 타이틀을 우리말로 옮긴 ‘겁’이라는 곡을 들어보면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을 거다. 또한 그것이 편지효의 연주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힌두교의 지혜와 학문의 신인 가네샤의 축복을 그리며 조지 해리슨의 ‘Within You Without You’를 오마주 한 ‘Blessing Of Ganesha’도 이 앨범에서 현악기가 맡은 산문적 역할의 단편이라 할 수 있겠다.


클린과 샤우팅을 극적으로 넘나드는 이동원의 바리톤 보컬은 확실히 디스터브드의 데이비드 드레이먼과 앨리스 인 체인스의 레인 스탤리, 곡에 따라선 툴의 메이너드 제임스 키넌을 떠올리게 하지만 꼭 한정 지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해리 빅 버튼의 이성수처럼 이동원의 목소리에도 듣는 사람이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동원만의 개성이 분명 담겨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김소연의 베이스는 팀플레이 속에서도(주법에서든 톤에서든) 자신만의 연주 속내를 드러내보일 줄 아는 지혜를 갖추었고, 최주성의 드러밍은 밴드 음악의 프로그레시브 성향에 맞게 지루한 고속 주행 대신 잦은 변칙 기어로 리듬에 다양한 커브를 허락했다. 이 경우엔 ‘Gula’ 같은 곡이 좋은 예가 되겠다.


배드램이라는 이름은 두 가지 뜻을 갖는다. 하나는 앞서 말한 아수라장이라는 뜻의 ‘Bedlam’, 다른 하나는 표기 그대로 나쁜 양을 뜻하는 ‘Badlamb’. 아마도 ’Bedlam’은 이 밴드의 거친 음악 성향을 표현한 것일 테고, ‘Badlamb’은 밴드가 밝혔듯 인간들의 신을 향한 절대 믿음을 조소하는 중의적 표현이다. 한마디로 배드램의 음악은 삐딱하고 시끄럽다는 얘기다. 이는 물론 오해였거나 진실로서 ‘록’에 대해 사람들이 내린 오래된 가치 평가에도 겹치는 정의다. 역시, 배드램은 록을 잘 이해하고 있는 밴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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