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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Dec 08. 2020

경남 출신 하드로커의 '싱어게인'

정홍일 [숨 쉴 수만 있다면]


헤비메탈 밴드 바크하우스는 김해와 마산 등 경남·부산 쪽에서 활동해온 팀이다. 정홍일은 그 밴드의 보컬리스트로, 막연하기만 했던 자신의 두 번째 꿈(첫 번째 꿈은 ‘가수가 되는 것’이었다고 한다)을 이루려 이번에 개인 미니 앨범을 내놓았다. 제목은 ‘숨 쉴 수만 있다면’. 과연 밴드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솔로 활동을 바라온 예술적 절박함이 물씬 전해지는 타이틀이다. 정홍일은 이번 앨범에서 블랙 사바스와 주다스 프리스트 대신 커버 버전을 유튜브로 공개한 딥 퍼플의 ‘Soldier Of Fortune’과 포지션의 ‘I Love You’에 가까운 정서를 이끌어냈다.


바다와 바람, 갈매기 소리로 문을 열고 곧장 걸어 들어가는 첫 곡 ‘숨 쉴 수만 있다면’은 그런 이 앨범이 플레이 되는 내내 어떤 일관된 사색을 펼쳐나갈지 듣는 이들이 짐작할 수 있도록 한 흑백 예고편이다. 벌거벗은 고독, 텅 빈 마음이라는 앙상한 독백을 떠밀며 가는 그것은 한 인간의 고독과 사랑, 우리들의 희망과 연대를 엮어 피워올리는 작지만 뜨거운 음악의 향이다.


정홍일이라는 가수가 그동안 어떤 음악을 해왔는지 그나마 엿볼 수 있게 해주는 록 발라드 ‘나의 것’ 정도를 빼면 수록곡 대부분은 어쿠스틱 기타와 콘트라베이스, 첼로와 피아노에 자신의 운명을 맡긴다. 거칠고 어두운 헤비메탈 기운을 걷어낸 끝에 마련된 맑고 수수한 연주 세계에 덩그러니 남겨진 정홍일은 윤도현을 닮았되 윤도현을 극복해내는 창법으로 그동안 자신이 하려 했던 말들을 천천히 내뱉는다.     



피아노 반주와 어쿠스틱 기타 솔로가 엇갈리는 찰나가 아름다운 곡 ‘찰나’에서 그런 정홍일은 가장 수줍다. 내지르지만 않고 안으로 삼켜도 내야 하는 노래의 어려움, 매력이 무엇인지 그는 이 곡 안에서 실컷 겪는다. 잘게 썬 드럼 리듬으로 곡 뼈대를 세운 ‘별다를 것 없던 내가’에서도 마찬가지다. 정홍일은 넘치지 않으며 넘칠 줄 아는 가창의 이율배반을 이 곡 하나로 표현해냈다. 때론 화려한 블록버스터보다 가난한 독립영화 한 편에 마음을 더 빼앗기듯, 하드로커 정홍일의 조용한 외출이 품은 깊은 뜻이 저 곡엔 스며있다.


얼마전 JTBC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에서 ‘29호 가수’로 정홍일이 출연했다. 그는 ‘정통 헤비메탈’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내걸고 임재범의 ‘그대는 어디에’를 불렀다. 이선희의 호평을 등에 업은 정홍일의 커버는 심사 출연진 모두의 ‘어게인’ 버튼을 받아 현재까지 사람들의 꽤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그에게 인생의 기회가 될지도 모를 방송 출연에 앞서 발매된 이 앨범은 그래서 더 값져 보인다. 헤비메탈과 발라드라는 이분법을 넘어 노래라는 본질을 이해하고 소화해내겠다는 작자의 다부진 의지가 본작에는 있기 때문이다.


정홍일. 어쩌면 가수가 되겠다는 그의 첫 번째 꿈은 아직 덜 이뤄졌는지 모른다. 그의 꿈 앞에는 그를 숨 쉬게 할 ‘대중’이라는 수식어가 남았다. 이 작품은 그 꿈의 시발점이리라. 물론 그 꿈의 완성도 이 앨범을 통해야만 볼 수 있는 것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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