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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Jan 29. 2021

한국의 모터헤드, 와비 킹

Wabi King [You Can Bite]


한국의 모터헤드.


와비 킹의 음악은 어쩔 수 없이 이 뻔한 비유에 가둘 수 밖에 없다. 그의 음악은 모터헤드 같으면서 모터헤드와 같지 않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모터헤드를 좋아해(like) 모터헤드 같은(like) 와비 킹의 음악은 그러나 마냥 모터헤드와 같다(same)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같다’와 ‘(똑)같다’는 엄연히 다른 말이며, 그렇기 때문에 ‘Moscow Woman’은 ‘Ace Of Spades’에 대한 찬양적 오마주이지 단순 카피는 아니다. '같지 않은 같음'이란 면에서 와비 킹의 데뷔작은 한때 콘(Korn)을 적극 표방한 서태지의 여섯 번째 앨범과도 통한다.


이 음반은 눈치보지 않는다. 그저 앞만 보고 달릴 뿐이다. 예컨대 ‘You Can Bite’의 메인 기타 리프가 머금은 저 희뿌연 질주감은 마치 영화 ‘이지 라이더’(1969)를 떠올리게 한다. 변칙성과 혁신성보단 로큰롤이라는 정공법에 와비 킹의 음악은 목숨을 건다. 마초적 리듬과 사운드에 실려 가는 그 일상의 자조 또는 희망은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던 한 밴드의 사차원적 제안을 삼차원의 현실에서 실천하는 모양새다.  


목소리는 더 흥미롭다. 와비 킹의 창법은 웃음이 터질 정도로 레미(Lemmy Kilmister, 모터헤드의 리더. 암투병 끝에 지난 2015년 향년 70세 나이로 사망했다)와 비슷하다. 한 손엔 잭 다니엘, 한 손엔 말보로 레드를 들고 마이크 아래 45도 각도로 고개를 쳐든 채 포효했던 희대의 로큰롤러에게 바치는 와비 킹의 구수한 찬사는 그 자체 재미 있으면서 진지하다. 그의 구체적이고 노골적인 이 전면적 ‘따라하기’는 앨범 속 여덟 트랙(커버곡과 두 곡의 다른 버전을 빼면 사실상 다섯 트랙)이 내달리는 동안 굉장히 일관된 톤&연주로 듣는 사람을 로큰롤의 심연으로 가차없이 빠뜨린다.



그 심연 속엔 이펙터에 기댄 잔재주 따윈 없다. 그저 앰프 하나에 일렉트릭 기타만 연결하면 세상을 주무를 수 있는 AC/DC의 외고집만이 있을 뿐이다. 와비 킹은 자신의 앨범에서 리드와 백업 보컬, 리드와 리듬 기타를 맡아 열연했다. 또 수록된 다섯 곡들에선 직접 베이스도 연주했다. 밴드 음악이면서 솔로 앨범인 이 작품이 누구의 것인지 그는 작사, 작곡을 비롯한 자신의 음악적 기여도로 실컷 증명한 것이다.


창작곡들인 1~5번 트랙까지 드럼은 신영이 쳤다. 그는 크럭스(Crux)라는 밴드의 멤버이면서 헤비메탈 밴드 블랙 신드롬의 세션 드러머이기도 하다. 둔탁한 리듬을 부드럽게 어루만질 줄 아는 그의 기본기 충실한 드러밍은 와비 킹의 ‘모터헤드 바라기’를 가장 힘있게 받쳐주는 작품 속 숨은 공신이다. 또 하나 블랙 신드롬이라는 이름인데, 이 밴드의 리더인 김재만은 본작의 프로듀싱은 물론 끝에 실린 블랙 신드롬 커버곡 ‘Personal Loneliness(개인적인 외로움)’에서 기타까지 연주하며 와비 킹을 전폭 지지하고 있다. 다른 버전으로 실린 두 곡 중 한 곡인 ’Kill To The Death (Seoul Dogs Ver)’의 드럼과 베이스는 각각 이준호와 차현일이 맡았고, ‘Rocket Man (Jeju Language Ver)’에는 이영권(드럼)과 서민호(베이스)가 참여했다.


‘Rocket Man’의 다른 버전에서 알 수 있듯 와비 킹은 제주 사람이다. 앞서 들은 ‘Moscow Woman’ 가사도 다름 아닌 제주의 유흥업소 가격표를 읊은 것이다. 이 작품은 그렇게 두 차례 물 건너온 로큰롤 앨범이다. 영국 런던에서 한 번, 그리고 제주에서 또 한 번. 떠난 지 6년 된 레미의 영혼을 깨울 가장 그럴듯한 로큰롤 굉음이 장르적으로 척박한 동아시아의 조그만 나라에서 울려퍼질 줄은 고인도 우리도 몰랐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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