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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Mar 13. 2021

'트렌디한 비대중성'이라는 역설

야광토끼 [Kosmos]


2011년 3월. 야광토끼 1집을 만났다. 검정치마의 키보디스트로만 알고 있던 그의 데뷔 음악, 그러니까 우효가 자신만의 ‘소녀감성’을 우리에게 들려주기 3년 전 들려준 야광토끼의 소녀감성은 마냥 풋풋했다. 당시 밝고 상쾌한 그 음반을 틀고 나는 멈출 수가 없었다. ‘Long-D’에서 시작해 ‘조금씩 다가와줘’, ‘북극곰’으로 이어진 빼어난 코러스 멜로디는 이 음반을 중간에 끌 생각 따윈 애초에 접으라는 경고처럼 들렸다. 그것은 신스팝과 모던록에 양다리 걸친 하수빈이었고, 90/00 세대가 잊고 있었던 옛 청춘 감성의 복각, 재발견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마주한 그 과거지향의 음악 속엔 '네가 내게 주는 것들'의 가사 마냥 "투박한 따스함"이 있었다.


이듬해 내놓은 미니앨범 'Happy Ending'에 담긴 건 ‘Plastic Heart'가 들려줬듯 스니커즈에서 하이힐로 갈아 신은 야광토끼식 클럽 음악이었다. 멜로디보단 스타일에 방점을 찍은 이 이유 있는 일탈은 1집 느낌을 기대한 사람들에겐 괴리감을, 다른 느낌을 선호하는 이들에겐 기대감을 똑같이 안겨주었다. 다시 들어봐도 음악에서나 주제에서나 '북극곰'과 '왕자님'의 거리감은 꽤 먼 것이었다.


야광토끼의 두 번째 정규 앨범 ‘Stay Gold’는 그로부터 4년 뒤 나온다. 4년. 무시 못할 긴 시간이다. 그 사이 야광토끼의 음악도 많이 바뀌었다. 온통 사랑과 이별 노래로 채웠던 1집의 흔적은 주제 면에선 적극 응용됐을지언정 장르에선 소극적으로 반영됐다. 실제 1집의 그늘은 ‘All I Want Is You’나 ‘너여야’ 정도에서만 감지됐을까, 나머진 온통 낯설고 질퍽한 일렉트로닉 홍수였다.


그것은 분명 맑고 다정했던 1집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와 정서, 비트였다. 더 트렌디했지만 덜 대중적이었다. '트렌디한 비대중성이라는 역설'은 그래서 야광토끼의 음악적 미래처럼 보였다. 소심한 감성과 대담한 표현. 마치 자신이 진짜 하고 싶었던 걸 이제야 맘껏 꺼내보인 예술가로서 만족이 느껴진 작품이랄까. ‘New Moon’과 ‘나를 잊지 말아요’의 아득한 절망은 그걸 잘 말해주고 있었다.



결국 야광토끼 2집은 팝 팬들보다 일렉트로닉 팬들이 더 반길 만한 것이었다. 그리고 3집 ‘KOSMOS’는 그런 1집과 2집의 중간(사실 2집 쪽으로 좀 더 기울어 있는)에 있는 작품이다. 제목에서 칼 세이건의 유명한 책이 떠오르는 만큼 이번 작품에서 그는 전자음악과 팝 멜로디라는 바탕에 자신만의 음악 우주(Cosmos)를 더 진지하게 단, 어렵지 않게 일구어냈다.(시티팝에 가까운 'Call You'를 들어보자.) 바삭하고 또각거리는 비트를 타고 부유하는 그 공간 속엔 부재인 자를 향한 그리움과 지나쳐온 것에 대한 아쉬움, 겪고 있는 것들을 직시한 체념과 냉소(“분양이 아니면 죽음을 주세요” - ‘아파트 천국’ 가사 중)의 잿빛 심경이 한가득 엉겨 있다. 같은 사랑 이야기여도 ‘Twilight’와 ‘IDK’의 감정 온도는 제각각이며 무엇보다 ‘Bloom’이 증명하고 있는 야광토끼의 장르적 능숙함은 이 앨범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음악적 하이라이트다. 뭐랄까. 보이지 않던 해답을 찾은 자의 확신, 철학이 저 곡엔 있다.


혹자는 말했다. 우린 언제나 음악을 탐구하고 표현하고 교환한다고. 2021년, 데뷔 10주년을 맞은 야광토끼의 지난 세월도 그랬다. 트렌드와 대중성, 예술성 사이에서 했을 치열한 고민들이 바로 그의 음악적 탐구요 표현이자 교환이었다. 이제 다시 10년. 이렇게 야광토끼의 음악은 또 다른 출발선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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