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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Apr 24. 2021

내리막길에 선 네오 펑크 영웅

The Offspring [Let The Bad Times Roll]


지금은 음악을 가리지 않고 듣는 편이지만 90년대 중반부터 10여 년은 록 쪽을 집중적으로 들었다. 물론 그 취향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바뀌진 않았다. 나이가 들면서 재즈와 클래식으로 빠졌다며 “나도 철없던 시절엔 록/메탈 키드였지” 뇌까리는 알량한 우월감 따윈 나와는 거리가 멀단 얘기다. 나에게 록은 여전히 멋지고 훌륭한 장르이며, 죽을 때까지 공부해도 다 알지 못할 미지의 영역이다. 겨우 기본기 정도 듣고 마치 자신이 록과 헤비메탈을 통달했단 식으로 여기는 자들의 '철없는' 자신감은 공허하다. 그들이 나이 먹고 재즈와 클래식으로 빠진 건 록의 수준이 낮아서가 아니라 그냥 록을 포기한 것이다. 음악은 늘 그 자리에 있을 뿐. 다가오거나 떠나는 건 언제나 그걸 듣는 인간이다.


오프스프링과 그린 데이가 이끈 네오 펑크도 내가 90년대 중반에 즐겨 들은 록 장르다. 나는 그린 데이보다 오프스프링을 좀 더 좋아했는데 아마도 더 박력있고 그 와중에 멜로디도 발군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내가 처음 들은 오프스프링은 그린 데이가 스매시 히트작 ‘Dookie’를 낸 94년에 함께 나온 ‘Smash’. 이것은 이들의 세 번째 작품으로 89년 데뷔작 ‘The Offspring’, 3년 뒤 나온 범작 ‘Ignition’에 이은 결과물이었다. 나는 ’Smash’로 오프스프링을 알았고 ‘Smash’는 분명히 전작들관 달랐다. ‘Gotta Get Away’ ‘Come Out And Play’ ‘Self Esteem’ ‘What Happened To You?’ 등 히트곡들을 쏟아낸 이 앨범은 록의 대안(Alternative)이 제시된 90년대에 펑크의 70년대를 기분좋게 소환했고 또 합리적으로 소화했다.


다시 3년 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들 곡인 ‘The Meaning Of Life’ 수록 앨범 ‘Ixnay On The Hombre’가 발매됐고, 이듬해엔 대중이 제일 좋아하는 이들 곡 ‘Pretty Fly (For A White Guy)’와 ‘The Kids Aren’t Alright’이 실린 ‘Americana’가 나와 이 밴드를 한 번 더 세계 정상에 올려주었다. 이후로도 오프스프링은 앨범마다 반드시 원투 펀치를 심어 두어 ‘Original Prankster’ ‘Want You Bad’(이상 ‘Conspiracy Of One’)나 ‘Hit That’ ’Spare Me The Details’(이상 ‘Splinter’) 같은 상쾌한 곡들을 들려주었다. 2008년 당시 내가 국내반 라이너 노트를 쓴 ‘Rise And Fall, Rage And Grace’도 ‘Hammerhead’와 ‘You’re Gonna Go Far, Kid’를 앞세워 밴드의 명성을 이어나갔다. 4년 뒤 나온 9집 ‘Days Go By’ 역시 비록 전성기 때만은 못해도 ‘The Future Is Now’ ‘Days Go By’ 같은 곡들을 들려주며 간당간당해 보이던 팀의 수명을 겨우 늘렸다.



그런데 이번 10집 ‘Let The Bad Times Roll’은 좀 다르다. 우선 이 앨범에는 98년도부터 반드시 한 두 곡씩 있었던 히트 싱글감이 없다. 메시지는 저항적이되 음악은 풀이 죽은 첫 곡 ‘This Is Not Utopia’부터 그렇다. 잠시 뒤 ‘Behind Your Walls’에서 뭔가 보여줄 듯 하지만 그 의지는 셔플 트랙 ‘Coming For You’ 근처에서 휘청거린 뒤 ‘We Never Have Sex Anymore’의 로큰롤 혼(Horn) 섹션에서 완전히 좌초된다. 막간에 가까운 ‘In The Hall Of The Mountain King’과 마지막 ‘Lullaby’는 기어이 실소를 자아내게 하고, 97년 곡 ‘Gone Away’ 피아노 버전은 정말 뭐하자는 건지 모를 지경에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 그나마 이 앨범에서 들어줄 만한 곡은 하드코어 펑크 ‘Opioid Diaries’와 ‘Hassan Chop’ 정도일까. 무려 9년만에 내놓은 오프스프링의 새로운 음악이 앞으로 맞이할 그들의 퇴화된 9년의 전조인 것만 같아 그저 슬플 따름이다.


이로써 네오 펑크계의 ‘오아시스, 블러’였던 그린 데이와 오프스프링의 간격은 좀 더 벌어진 느낌이다. 2004년 ‘American Idiot’에 주도권을 빼앗긴 이래 오프스프링은 그대로 팝 펑크 신의 2인자가 된 것. 과연 그들은 1998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부디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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