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 카야마 유조

by 김성대


기타, 피아노, 우쿨렐레를 두루 다룰 줄 아는 싱어송라이터이자 배우 겸 화가다. 별명은 과거 스스로 주연을 맡았던 시리즈 제목이기도 한 ‘젊은 대장(若大将)’. 작곡가로선 단 코사쿠(弾 厚作)라는 가명을 쓰기도 한다. 연예계 유전자는 집안 내력으로 보이는데 어머니 코자쿠라 요코(小桜 葉子)와 아버지 우에하라 켄(上原 謙)이 모두 배우였다.


카야마의 음악 재능은 제법 이른 시기에 발견됐다. 8살 때 숙모가 치고 있던 ‘바이엘 75번’을 손가락 움직임만 보고 따라 친 것. 그는 이 때부터 음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걸로 알려져 있다. 아기 때 딕시랜드 재즈 연주를 자장가 삼았다는 에피소드도 전하는데 이는 조금 과장 같다. 재즈를 자장가 삼은 게 아니라 그냥 자는 사이에 재즈가 흘렀던 것으로 보는 게 상식적이다.


카야마가 피아노를 정식으로 배우기 시작한 건 중학교 시절. 통학길에 있던 러시아/독일계 피아니스트 레오니트 크로이처의 집에 머물다 그가 소개해준 한 여성에게 배웠다. 그는 이때 자신의 첫 작품 ‘밤하늘의 별(夜空の星)’을 작곡한다.


17살 때 스키 타러 간 시가고원(志賀高原)에서 한 친구가 가져온 우쿨렐레 소리에 흥미를 느낀 카야마는 짧게 지도를 받은 뒤 기초를 마스터 했다. 카야마는 그 친구 영향으로 내친 김에 기타도 배웠다. 20살 때 6인조 스쿨밴드 컨트리 크롭스(Country Crops)를 결성해 보컬과 사이드 기타를 맡은 카야마 유조는 컨트리와 로커빌리를 주로 연주하며 긴자의 카시 댄스홀, 요코타 미군 기지 등에서 무대 경험을 쌓았다.




1960년, 카야마는 영화 <남대 남(男対男)>으로 배우가 됐다. 이 영화를 제작한 도호(東宝)사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카야마는 프로듀서 후지모토(藤本)의 말을 듣고 도호 소속 동료 배우들과 함께 밴드를 결성한다. 라인업은 보컬과 기타에 카야마 유조, 드럼에 니헤이 마사나리, 기타에 츠다 아키라, 베이스는 사타케 히로유키, 그리고 페달 스틸 기타에 시로이시 타케토시까지 5인조로 꾸렸다.


'배를 띄운다'는 뜻에서 론처스(The Launchers)로 이름 지은 밴드는 당시 꽤 폭넓은 레퍼토리를 소화했다고 한다. 60년대 일본은 우리의 70~80년대처럼 밴드(그룹사운드) 붐이 일어난 시기이기도 한데, 많은 팀들이 유행한 미국 틴팝 히트곡들을 일본어로 번안해 불렀다.


카야마는 1962년 영화 <일본 제일의 대장부> 홍보용으로 만든 'Blue Suede Shoes'와 'Green Fields'에서 일부를 혼자 다중녹음으로 부르기도 했다. 3년 뒤 발표한 '그대와 언제까지나/밤하늘의 별'을 크게 히트 시킨 카야마 유조는 그해 일본 레코드 대상 특별상을 받는다. 그는 생전에 507편이라는 경이로운 작품 수를 남긴 한국의 신성일처럼 이후 엄청난 속도로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채우며 배우로서 전설도 착실히 쌓아나갔다.


1970년 33살 나이에 마츠모토 메구미와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교회에서 결혼한 카야마 유조는 1986년 NHK에서 <카야마 유조 쇼>를 직접 진행하기도 했다. 노래, 연주, 연기, 방송, 그림에 두루 재능을 지녔던 이 팔방미인은 우리네 60년대 스탠더드 팝 스타일에서 컨트리, 로커빌리를 두루 소화하며 제이팝 역사에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2021년 현재 84세를 맞은 그는 지금도 1960~70년대에 청년기를 거친 일본인들에게 확고한 '청춘의 아이콘'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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