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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Jun 04. 2021

다르지만 비슷한 두 음악 비평서

<다락방 재즈>(황덕호, 그책) & <한국힙합 에볼루션>(김봉현, 윌북)

<다락방 재즈>와 <한국힙합 에볼루션>은 비평의 방법론에선 다르지만 각자가 아끼는 한 장르를 파고든다는 면에선 같다.


최근 자기 분야에서 나름의 독창적 시각으로 비평서를 낸 두 평론가의 책을 읽었다. 한 명은 재즈 평론가이고 한 명은 힙합 평론가이다. 바로 황덕호의 <다락방 재즈(Jazz Loft)>, 김봉현의 <한국힙합 에볼루션>이 그것이다. 한 권은 2017년에 나왔고 나머지 권은 2019년에 나왔으니 조금 늦게 완독한 셈인데, 두 책은 비평에 있어 '관점과 서술’에 관해 똑같이 생각해보게 했다는 점에서 나에겐 의미가 있었다. 어쨌거나 비평이란 기본적으로 작품을 대하고 든 개인의 생각(관점)을 글로 쓰거나 말로 하는(서술/구술) 일이기 때문이다.


먼저 <다락방 재즈>부터. 이 책의 제목은 1970년대 뉴욕 맨해튼에서 태어난 실험적인 재즈(Loft Jazz)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저자는 영어 앨범들 제목도 한국어로 일일이 번역하는 습관이 있다.) 황덕호는 서문에서 과거 권위를 내려놓아야 하는 시대에 직면한 음악 평론가로서 처지를 직시한다. “자신들의 권위를 이용해 악취가 풀풀 나는 말들을 리뷰로 둔갑시킨 글들”에 대한 혐오를 그는 일단 드러내고 책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창작자와 감상자 사이의 거리를 좁혀주는 것” 즉, 음악 또는 음반의 해설자로서 평론가를 바람직한 평론가상으로 제시한다. 그는 그런 자신의 생각을 올해로 3년 째 접어든 재즈 전문 유튜버로서 실천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다락방 재즈>는 주로 글을 통해 재즈를 이야기해온 자신의 평론가 이력에서 한 단락을 정리한 것이다. 1장에는 그간 머릿속으로만 품어온 재즈에 관한 잡글을 실었고, 2장에는 잡지들에 실어온 리뷰들을(여기엔 서울 재즈 페스티벌과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에 대한 평가, 한국 재즈 역사를 다룬 책(<한국 재즈 100년사>)을 향한 반론이 포함돼 있다) 넣었다. 3장은 비평보단 해설에 무게를 두어야 하는 음반 라이너 노트에 할애했으며, 4장은 색소포니스트 스티브 레이시가 세상을 떠난 2004년부터 챙겨온 추모글로 꾸몄다. 루이 암스트롱의 [Satchmo: A Musical Autobiography]를 포함한 ‘불운의 재즈 앨범 20선’은 부록으로 책의 마지막에 배치했다.


일단 황덕호의 글은 재즈와 클래식에 관한 어느 정도 배경지식을 요구한다. 재즈와 클래식에 관심 없거나 문외한인 사람들에게 황덕호의 글은 불친절하다. <다락방 재즈>는 때문에 가벼운 재즈 입문서라기보단 마니아들이 손 뻗을 만한 본격 재즈 비평서에 더 가깝다. 과거 평론가의 권위를 비판한 그의 글에서 모종의 권위가 느껴지는 건 묘한 역설이지만 그럼에도 그 진지함과 꾸준함, 지식의 깊이에는 평론가의 자질(의무, 가치 등)에 대해 새삼 되새겨 보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이는 3장의 라이너 노트 중 ‘루디 반 겔더의 소리’와 2008년도에 눈을 감은 트럼페터 프레디 허바드 추모글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한국힙합 에볼루션>은 “1989년부터 2016년까지, 힙합이 처음 태동한 시점부터 대중문화의 주류가 되기까지 한국힙합의 거대한 진화를 담은 책”이다. 그러니까 저자 자신이 앞서 번역한, 1979년~2014년까지 매해 가장 중요한 미국힙합 곡들을 기록한 책 <더 랩: 힙합의 시대>의 한국 버전이 바로 이 책인 셈이다. 


황덕호의 책이 글 쓰는 평론가로서 ‘자기 정리’라면 <한국힙합 에볼루션>은 한 나라의 힙합 신을 당대 대표곡들로 들여다본 ‘시대 정리’다. 이 책은 27년이라는 세월을 놓고 각 시대를 대표하는 힙합 곡들을 하나씩 골라 그 곡을 만든 뮤지션이 한국 힙합계에서 가지는 위치, 내친 김에 한국 힙합 통사까지 훑어내는 영리한 접근을 해내고 있다. 가령 홍서범의 ‘김삿갓’은 “한국 최초의 랩곡”이란 이유로 이 책의 첫 장을 차지했고, 듀스의 ‘Go! Go! Go!’는 “한국어 라임의 기본 틀을 제대로 제시한 최초의 노래”였기 때문에 이 책에 실렸다. 또 버벌진트의 ‘Overclass’는 “한국어 라임 체계를 정립”했다는 이유로 한 챕터를 채웠으며, 키비의 ‘소년을 위로해줘’는 “한국힙합의 ‘힙합다움’과 ‘남자다움’에 문제 제기를 했”기 때문에 2003년의 한국 대표 힙합 트랙으로 평가됐다.


<한국힙합 에볼루션>은 재밌고 유익하다. 그러니까 미국 작가 필립 로스의 한 소설에서 학자 주인공이 지녔던 특징 즉, “전혀 학문적인 형식을 차리려 들지 않는데도 설득력이 컸기 때문”에 이 책은 만만하고 그래서 대중적이다. 한마디로 혼자 방구석에서 키득거리며 읽을 수 있는 책이면서 동시에 한국 힙합 역사 전반에 관한 공부도 되기 때문에 좋은 책이라는 얘기다. 또 하나 이 책이 강할 수 있는 이유는 인용과 반박이다. 황덕호가 자신의 책에서 다룬 재즈 평론가 냇 헨토프처럼 김봉현은 자신이 다루는 곡 주인들과 나눈 인터뷰 내용을 글에 주저없이 녹이며 자칫 느슨해질 수 있는 문맥에 탄력을 주었다. 또 자기 글에 대한 다른 필자들의 ‘반박’도 가감없이 실어 본인 주장이 빠질 수도 있는 편향성을 지양하고 대신 논리의 풍요를 지향했다. 


이처럼 <다락방 재즈>와 <한국힙합 에볼루션>은 형식과 지향점, 심지어 책 크기까지 도무지 같은 게 없지만 단 하나, 두 평론가 모두 힙합과 재즈에만 집중한다는 점에선 같다.(특히 김봉현은 <한국힙합 에볼루션>이 자신의 11번째 단행본인데 그 11권이 모두 힙합에 관한 책이다.) 비평가이기 전에 황덕호도 재즈 마니아고 김봉현도 힙합 마니아다. 둘은 자신들의 장르 외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행여 두 사람이 글 속에 다른 장르를 가져올 땐 무조건 ‘재즈나 힙합을 설명하기 위한 부수적 재료’로서 소환일 뿐, 다른 뜻은 적거나 없다. 모름지기 음악 평론가라면 자신의 장르 하나 쯤엔 달인이 되어야 한다는 평소 내 지론을 이 두 사람은 각자 방식으로 실천하며 사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도 두 책은 내게 의미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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