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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May 15. 2017

재미와 깊이를 한 번에!

<모던 팝 스토리>, 북라이프

과거와 달리 이제는 국내에서도 적지 않은 대중음악 관련 서적들을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거기에는 음악만큼 장르도 다양해 전문가들이 쓴 각종 대중음악/장르 통사 책과 평론가나 뮤지션이 쓴 에세이, 평전, 음반/뮤지션 소개서 외 강헌의 ‘전복과 반전의 순간’처럼 정치 역사와 인문학을 버무리거나 박희아의 ‘Idol Maker’ 같은 스타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것도 있다. ‘메탈리카: 백 투 더 프런트’, ‘모타운’ 같이 화보에 가까운 거대 양장본이 있는가 하면 ‘미국 대중음악’처럼 음악을 듣는 방법론을 다룬 책도 더러 있다. 그리고 장정일의 ‘악서총람’은 아예 저러한 음악 관련 책들만 모아 소개하기도 했다. 바야흐로 대중음악서의 춘추전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를 우리는 지금 살고 있다.

여기 소개할 ‘모던 팝 스토리(이하 ‘모던팝’)’는 그중 대중음악 통사 쪽으로 떼야 하겠지만, 이 책은 그런 딱딱한 역사 소개 차원을 넘어 뭔가 흥을 돋우며 독자에게 읽는 재미를 준다는 점에서 다른 책들과 구별된다. 말하자면 지식과 자료를 건조하게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이해하고 소화해 글쓴이 자신의 것으로 만든 뒤 풀어놓는, 마치 푸짐한 속과 질 좋은 김으로 만든 김밥처럼 한 입에 많은 것을 맛볼 수 있게 해주는 정성과 배려가 이 책에는 있다. 저자 밥 스탠리의 표현을 빌리면 그것은 “때론 도둑질하고, 큐레이팅 하고, 엮어보고, 이렇게 엮은 걸 다시 엮”은 뒤에 얻어낸 모던 팝의 치밀한 얼개인 것이다.

‘모던팝’은 한 번 읽고서 다 읽었다 말할 수 없는 책이다. 저자의 프롤로그에서 에필로그까지 무려 859페이지를 넘겨야 하는 이 책은 장르와 뮤지션(밴드), 레이블 이름보다 더 많은 곡 이름들을 다루는데 그 수가 거의 전화번호부 수준이다. 물론 그 곡들을 뇌리에서 실시간으로 재생하며 책장을 넘길 수 있는 리스너라면 상관 없겠지만 그렇지 못할 대부분 독자들은 일단 애용하는 음원 사이트나 유튜브 정도는 곁에 열어두고 정독해나가는 것이 좋겠다. 그래서 '모던팝'은 느리게 읽힐 책이다. 모르는 음악 찾아 들어야지, 들으면서 또 읽어야지. 아는 곡의 수와 책장이 넘어가는 속도는 아마도 비례할 것이다.

물론 그나마 저자 밥 스탠리의 뛰어난 글 솜씨 덕분에 덜 지루할 수는 있다. 그는 기본적으로 음악을 많이 알고 영미 팝 음악사를 손금 보듯 하며, 무엇보다 자신의 생각을 재미있고 압축된 글로 써낼 줄 아는 사람이다. 구슬 서 말도 꿰어야 보배라고, 밥이 만약 물리적으로 그러모은 자료들을 기계적으로 전달하는 데서만 그쳤다면 유력 매체들과 일반 독자들의 그 많은 찬사를 ‘모던팝’은 절대 이끌어낼 수 없었을 것이다.

밥 스탠리는 일단 훌륭하다, 대단하다, 천재적이다 같은 심심한 감탄이나 ‘천둥 같은 드럼 소리’ 따위 과장된 인상 비평은 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그만의 표현방식이 있고 서술 스타일이 있다. 예컨대 마빈 게이, 커티스 메이필드, 스티비 원더의 레코드 프로덕션은 그에게 “게토의 삶으로부터 창조된 교향곡” 같은 것이며, 포스트 펑크는 “벌거벗은 겨울나무나 더러운 눈 같은 음악”이다. 밥은 ‘스미스와 인디의 탄생’이라는 주제도 80년대가 아닌 드림위버스의 웨이드 버프가 1953년 작곡한 ‘It’s Almost Tomorrow’에서부터 짚어나갔다. 이처럼 시대와 시간, 장르의 줄 세우기를 그는 썩 즐기지 않는다. 대신 도발적인 서두에서 논리적인 본론을 이끌어내는 방식을 그는 자주 쓴다. 요컨대 개성 있는 시각과 문체로 음반, 곡들의 정곡을 찌르고 해당 뮤지션과 밴드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이들에게도 이 책을 읽을 권리를 주는 그만의 미니 바이오그래피는 월스트리트 저널이 왜 “경쾌하면서도 명확한 주관을 지닌, 대단히 흥미로운 책”이라는 서평을 이 책에 던졌는지 단박에 알게 해준다.

‘모던팝’은 이제 막 영미 팝 뮤직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초보자와 예전부터 영미 팝에 관해 써온 전문가들 모두가 볼 수 있는 책이다. 그만큼 경쾌한 호흡을 지녔고 만약 ‘팝 저널리스트 선발고사’라는 것이 있다면 최고의 참고서라 할 수 있을 만큼 그 내용 또한 알차다. 저자의 속도감 있는 문장에 역사의 디테일이 그림자처럼 따라 붙는다. 두 번 이상 읽어도 충분히 당신의 시간을 보상해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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