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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Jul 12. 2017

술은 술이요, 음악은 음악이라

<열정적 위로, 우아한 탐닉>


음악을 만드는 사람과 그 음악을 듣는 이들에게 술은 똑같이 좋은 친구다. 전자에게 술은 영감을 주고 후자에게 술은 영원을 준다. 내 경험에 술은 음악을 더 잘 들리게 한다. 음악이 더 친절해진다. 가령 평소엔 억눌려 있던 베이스 소리가 한 잔 불콰해지면 술과 함께 불거지는 식이다. 스틱에 눌려진 북피가 찰흙 반죽 마냥 납작한 드럼 소리. 거기에 한 잔 더 따르게 만드는 기타, 피아노, 색소폰 솔로가 수줍게 고백해올 때 음악은 비로소 완성된다. 술이 있어 재즈는 더 기름지고 블루스는 더 뭉클하며 일렉트로닉은 솟아나고 록은 타오른다. 영원으로 돌진하는 것이다.


이처럼 술은 음악을 만나 깃발이 되고 하늘이 된다. 듣는 나를 음악으로 이끌어 듣는 내 앞에 음악을 펼친다. 적어도 리스너인 나에게 술은 줄곧 그런 것이었다. 그러다 이 책 ‘열정적 위로, 우아한 탐닉: 예술가의 술 사용법’을 만났다. 고 신해철과 만남을 계기로 쓰이기 시작해 끝내 고인에게 바쳐진 이 책의 부제는 ‘팝 스타들의 음악과 인생 그리고 그들이 사랑한 술 이야기’이다. 즉, 듣는 사람이 아닌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거다. 그리고 그 중심엔 술이 있다.



물론 술을 마시다 어떤 곡을 써냈다는, 뮤지션과 술이라 하면 으레 떠올리는 컨셉이 이 책의 컨셉은 아니다. 현직 MBC 보도본부 기자인 조승원은 그보다 더 넓은 접근을 위해 2012년 한 해를 꼬박 자료 조사에만 할애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도 잘 없는 ‘술과 뮤지션의 이야기’를 위해 그는 해외 잡지와 신문, 아티스트들의 영문 자서전과 평전 등을 닥치는 대로 구해 읽으며 그야말로 고군분투 한 것이다. 여기에 술을 다룬 다큐멘터리 연출 경험까지 얹어 저자는 기자라는 직업이 가질 수 있는 가치를 십분 발휘, 이 책을 써냈다.


비슷한 음악 성향에 맞춰 기네스도 비슷하게 좋아했던 비틀즈와 오아시스, 죽을 때까지 복숭아 맛 리큐어 서던 컴포트를 사랑한 재니스 조플린, “전직 영화감독, 현직 와인 생산업자”인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와 함께 다룬 스팅의 와인 사랑 이야기, 돌연변이 유전자 덕분에 40년간 매일 양주 4병을 마시고도 멀쩡한 오지 오스본, 음악에선 전혀 다른 장르였지만 좋아하는 술은 잭 다니엘로 같았던 프랭크 시나트라와 머틀리 크루, 모에 샹동과 돔 페리뇽, 크리스탈 샴페인을 거느리고 등장하는 거물 래퍼 제이 지, ‘실크처럼 부드러운 위스키’ 제임슨을 사랑한 레이디 가가 스토리는 모두 그러한 작가의 노력이 있어 가능했던 읽을거리다. 그 안에는 하룻밤 3,400만원을 쓴 미카의 이야기 등 술과 관련한 뮤지션들의 에피소드와 밥 딜런 노벨상 수상, 글렌 프레이의 사망 같은 근래 사건들도 포함돼 있다. 고 신해철과 생전 입으로만 나눈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야 하는 강박이 저자에게 얼마만큼 큰 압박이었을지. 저 글들은 때문에 어떤 긴장마저 머금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결국 술을 말해야 하는 책이었다. 명 클럽 투르바도르에서 존 레논이 난동을 부린 것도 중요하지만 그 존 레논이 마신 브랜디 알렉산더가 어쩌면 이 책에선 더 중요할지 모른다. 세 번째 앙코르(Third Encore)라는 명분으로 욕조에 버드와이저 맥주부터 채우고 시작하는 이글스의 호화 백스테이지 음주파티보다 영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기네스가 과연 아일랜드 맥주인가 하는 질문이 이 책 안에선 더 의미 띤 주제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초의 믹솔로지스트(다양한 술들을 섞어 새로운 칵테일을 만드는 전문가) 마틴 윌키스 헤론, ‘moonshiner’가 밀주업자라는 뜻을 갖게 된 사연, 원조와 원재료를 둘러싸고 벌어진 두 차례 보드카 전쟁, 데킬라 등급 확인하기, 잭 다니엘에 관해 알아야 할 7가지 등 그래서 저자는 술에 관한 이야기도 책의 반에 담아 음악과 술 또는 음악보다 술을 더 좋아하는 독자들을 넉넉히 배려했다. 다리쉼 격으로 제공한 칵테일 레시피나 해당 술이 등장하는 음악 선곡은 그와 관련한 조촐한 서비스일 뿐이다.



술을 잘 못 마시는 사람에게 이 책은 글로 술을 마시는 이색 체험일 수 있다. 책으로 술을 배운다 해서 멋쩍어할 필요는 없다. 저자가 재즈를 책으로 배운 일을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듯 말이다. 그리고 한 가지, 나는 이 책을 읽고 술과 뮤지션을 다룬 한국판도 나왔으면 좋겠다 싶었다. 7억 3천만 원짜리 위스키 '맥캘란 M디캔터 임페리얼 에디션 콘스탄틴'이나 5천 2백 80만원짜리 샴페인 '아르망 드 브리냑 마이다스' 같은 술이 아닌 안동소주나 느린마을 막걸리 같은 우리네 술과 국내 뮤지션들의 콜라보도 듣고 싶은 것이다.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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