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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Jul 14. 2021

댄스 록의 '태풍'을 몰고 오다

Royal Blood [Typhoons]


로열 블러드의 첫인상은 '단출하다'였다. 그것은 2인조라는 밴드의 물리적 구성에도, 그 구성에 따른 음악의 내적 특징에도 모두 적용되는 것이었다. 그들 음악은 군더더기를 거부했다. 일렉트릭 베이스의 깊이와 전기 기타의 파열을 악기 한 대에 모두 욱여넣은 모습은 그런 미니멀리즘을 위한 최적의 구조였다. 결국 베이스도 기타도 아닌 '기타 베이스'에 먹인 이펙트는 음악에 임팩트를 주기 위한 도구였지, 소리를 치장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이건 그들의 세 번째 작품이다. 제목은 '태풍(Typhoons)'. 처음 이 앨범 티저 영상을 보고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과거 뮤즈가 네 번째 앨범에서 했던 것처럼 이들도 댄스 록을 들고 온 것이다. 당시 디스코텍에 록을 접목한 뮤즈는 꽤 잘 해냈지만 과연 이들도 그럴 수 있을까, 나는 로열 블러드 3집의 완성도에 확신을 갖지 못했다.


물론 그건 기우였다. 판단은 앨범을 들은 뒤 해도 늦지 않았다. 음악도 영화처럼 포스터나 예고편 같은 서론만으로 작품의 본론을 지레짐작하면 안 된다는 걸 나는 이 작품을 듣고 새삼 깨달았다.


예고한 대로 이들은 퀸스 오브 더 스톤 에이지가 개척한 스토너 록 사운드에 다프트 펑크('Million And One')와 시크(Chic), AC/DC적 요소를 버무린 그루브를 들고 왔다. 당연히 뮤즈('Mad Visions') 냄새가 나고 몇몇 지점에선 뮤직(The Music)도 아른거린다. 어쨌거나 이번 로열 블러드 음악은 댄서블과 바운시(Bouncy)라는 두 형용적 단서 아래에서 수사되어야 마땅한 소리 혐의를 머금고 있다. 특히 'Oblivion'의 뮤직비디오에서 이 느낌은 그대로 시각화된다.



사실 이들 음악에서 댄스 그루브가 감지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모던 하드록의 자장 안에 웅크리고 있던 마이크 커(보컬/베이스)의 검푸른 리프는 그 순간이 언제이든 '춤출' 준비가 되어 있었다. 즉 'Figure It Out'과 'Hook, Line & Sinker'는 'Oblivion'과 'Limbo'의 전조였던 셈이다.


무릇 음반에선 재생한 사람의 귀를 사로잡을 첫 트랙이 중요하고 그 관심을 지속시킬 다음 트랙은 더 중요하다. 또 이어지는 세 번째와 네 번째 트랙에는 앨범의 운명을 결정지을 킬링 송들이 배치되게 마련이다. 만약 여기까지 듣는 이를 데리고 왔다면 그 앨범은 거의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사람이 한 앨범에서 네 번째 곡까지 들었다는 건 그 작품을 끝까지 들어볼 의사가 있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처음엔 '오?'로 시작해 다음은 '오!'로, 그 뒤엔 '와우!'로 이어지는 청자의 거듭된 감탄사는 세상이 명반이라 부르는 역사적 결과물에 공통으로 새겨진 인장이었다.


로열 블러드 3집은 그런 점에서 명반으로 남을 확률이 꽤 높아 보인다. 들을수록 단단하고 단단해서 믿음이 간다. 오래가는 명반들은 그래서 질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앨범을 반복해 듣고 든 생각은 어쩌면 이런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 두 사람이 여태껏 달려온 것인지 몰라,였다. 화이트 스트라이프스의 진화 'Either You Want It',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겠다는 팀의 의지처럼 들리는 'Hold On'의 전개는 그 소소한 증거들이다. 결과적으로 1집과 2집은 놀기 좋고 듣기 좋은 3집을 위한 강렬한 애피타이저였고, 트리플 더블과 사이클링 히트를 위한 치밀한 몸풀기였다.


그리고 드럼. 군살 대신 근육만 남은 벤 대처의 드러밍은 이번에도 절도 있게 곡들의 중심을 파고든다. 그는 데이브 그롤의 힘과 채드 스미스의 샤프함, 브래드 윌크의 야생성을 체득해 2인조 밴드에서 드럼의 존재감을 베이스나 보컬보다 더 부각했다. 심벌과 북 사이에 잠들어 있는 리듬을 깨워 어떻게 자신만의 그루브로 키워낼지를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한 벤. 이번 작품의 백미인 'Oblivion'의 쫄깃한 바운스, 'Typhoons'에서 베이스 리프를 통제하는 그의 프레이즈를 들어보라. 지금 로열 블러드엔 두 명의 멤버, 두 명의 리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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