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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Jul 04. 2021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자들을 위한 음악

슬로우 퍼즈 [무지개다리 행진곡]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 4월 23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반려동물 양육 인구가 무려 638만가구(1530만명)에 이른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전년 대비 112만명이 는 것으로, 한국에서 반려동물을 포함한 새로운 가족형태가 4가구 중 1가구꼴이라는 걸 수치로 증명한 결과다. 이에 맞춰 반려동물 용품 시장 규모는 3조 3천 억원에 이르렀는데,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해당 시장 규모가 2027년엔 6조원까지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펫로스 증후군이라는 것이 있다. 함께 살던 반려동물이 죽거나 사라진 뒤 겪게 되는 상실감이 각종 질환으로 번지는 증세를 뜻한다. 보통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분류되는 펫로스 증후군은 죄책감과 우울증, 분노 조절 장애, 심할 경우엔 자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전해진다. 미국 수의사 협회는 이러한 펫로스 증후군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아래 다섯 가지를 제시했다. 

 

반려동물이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려 노력하기

슬픈 감정을 충분히 느끼기

반려동물과 추억을 떠올리기

반려동물이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되새기기

다른 사람과 감정을 공유하기


음악 프로젝트 슬로우 퍼즈(Slow Fuzz)가 내놓은 앨범 '무지개다리 행진곡'은 바로 저 다섯 가지 방법을 음악으로 해석, 제시한 작품이다.('무지개다리'는 반려동물들이 죽어서 건너는 곳이다.) 이 프로젝트의 주인은 바로 최경훈. 그는 발랄한 쓸쓸함을 들려준 미스티 블루와 벨 에포크에 몸담았던 인물이다. 또한 포스트록 밴드 모즈다이브에도 적을 두었던 그지만 '무지개다리 행진곡'은 아무래도 미스티 블루, 벨 에포크 시절의 정서, 예컨대 ‘별의 속삭임’(벨 에포크)이나 '너의 별 이름은 시리우스 B'(미스티 블루)에 담긴 서글픔에 더 다가서 있다.


'무지개다리 행진곡'은 펫로스 증후군을 겪은 이들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면서 동시에 최경훈 스스로를 위로하려는 작품이기도 하다. 한때 그에게도 반려견이 있었고(들으면 뭉클해지는 '뽀동이의 바람'에서 그 반려견의 이름을 짐작할 수 있다) 세월이 지나 결국 무지개다리로 떠나보낸 것이다. 이 앨범은 그렇게 함께 살던 반려견이 무지개다리를 건넌 뒤 남은 최경훈의 감정들, 즉 뽀동이와 함께 행복했던 날들부터 늙고 병든 날들, 죽음의 순간, 머뭇거리며 무지개다리를 건너가는 뽀동이의 모습까지 모두 담아낸 결과물이다.



모차르트의 '레퀴엠'과 영국 전통 캐롤을 뺀 모든 작곡과 작사, 어레인지, 연주와 프로그래밍, 녹음, 믹싱, 마스터링을 홀로 해낸 최경훈은 실내악과 뉴에이지 음악, 포크에 기반한 멜로디 풍경을 우리 앞에 하나둘 펼쳐보인다. 가령 피아노가 또르르 음을 굴리면 구름 같은 관악기가 그 위를 드리우고, 'Runner's High' 같은 곡에선 맑은 통기타가 청량하게 피어오르는 식이다. 또 '개화(開花)' 같은 곡에선 그냥 두면 심심했을 법한 공간을 둔탁한 드럼 비트로 채운다.


이렇듯 거의가 연주곡인 작품은 최경훈이 자신의 반려견과 함께 한 시간을 하나하나 추억하는 음악적 시간이 되어 차분히 흐른다. 둘이 함께 맞았던 아침('굿 모닝'), 뽀동이가 집에서 혼자 보낸 시간('Home Alone'), 도시를 만든 인간들을 향한 냉소('사람들은 도시를 만들었다'), 뽀동이가 아파서 병원에 간 날('병원 가는 날'), 하지만 결국 생을 다해 떠나고('Ashes To Ashes'와 'Wash Away All The Pain') 무지개 다리를 건너는 순간('무지개다리 행진곡')까지 최경훈은 작업하며 주마등처럼 스쳤을 반려견과의 기억을 하나하나 꺼내어 음표에 새겼다. 같은 차원에서 반려동물들의 목소리를 한 트랙으로 쓴 '천사들의 합창'은 때문에 반려동물 인구 1500만명을 맞은 이 시대에 가장 어울리는 피날레라 할 수 있다.


여태껏 반려동물을 위한 음악은 많았다. 하지만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인간을 위한 음악은 적거나 없었다. 나 역시 반려견 세 녀석을 떠나보내고 지금 네 번째 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오래전 떠나간 세 아이들을 떠올리면서 언젠간 떠나갈 한 녀석을 바라보며 쓴 글이다. 문득 떠난 그들에겐 미안함이, 떠날 아이에겐 고마운 마음이 든다. 음악이, 나를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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