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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Sep 08. 2021

자작돌, 아이돌의 미덕서 필수 요건 되나?


세계 아이돌 팝 시장은 1950년대 미국 '보컬 하모니 그룹'에서 시작했다. 당시 아이돌들은 제왕적 프로듀서의 권위에 눌려 어떠한 음악적 결정권도 보장받지 못했다. 그들은 그저 프로듀서가 시키는 대로만 해야 했고 대중이 원하는 것에만 집중해야 했다. 그 시절 아이돌에게 창의적 고민과 전략적 의견은 사치였다.


사정은 세월이 지나서도 마찬가지. "모든 흑인 그룹이 노래만 부를 때 자신들은 직접 악기를 연주하며 앨범에 실린 모든 곡을 만들었다"고 자부하던 어니 아이슬리(아이슬리 브라더스의 기타리스트)의 자존감은 아이돌 팝 세계에선 통용될 수 없었다. 결국 1980년대 모리스 스타라는 프로듀서가 뉴 에디션과 뉴 키즈 온 더 블록을 다룬 방식도, 90년대 음반 제작자 루 펄먼이 백 스트리트 보이스와 엔 싱크를 주무른 태도도, 나아가 2010년대 원 디렉션을 디자인한 사이먼 코웰의 복안도 모두 프로듀서의 생각과 계산이었다. 거기에 아이돌 개개인의 비전과 창작이 끼어들 여지는 적거나 없었다.



연습생 제도 즉, 공장형(Factory) 아이돌이라는 옵션을 붙여 미국의 시스템을 거의 그대로 가져온 대한민국에서도 아이돌의 음악적 결정권은 부분적으로만 보장됐다. 물론 멀게는 서태지와 김원준이, 가깝게는 지드래곤과 아이유, BTS가 자신들의 '창작 권리'를 발휘해 스스로는 무엇도 할 수 없는 수동적 '돌(Doll)'이라는 세간의 폭력적 편견에 맞선 사례가 없진 않지만 이는 선택받은 소수의 이야기다. 그 외 아이돌 음악이란 그저 2010년대부터 도입된 SM엔터테인먼트의 다국적 제작 구조(북유럽 작곡가+미국 안무가+한국 프로듀서)나 몇몇 스타 작곡/작사가에 기대 성공을 노리는 공식에 안주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2년 전이었나. 싱어송라이터 유행에 관한 한 기고 글에서 나는 '자작돌(자신이 직접 작사/작곡하는 아이돌)'에 관해 쓴 적이 있다. 그때 예를 들었던 것이 워너원의 메인보컬 김재환이 앨범 'Another' 수록곡 제작에 깊이 관여한 일과 원더걸스 출신 뮤지션 선미가 2018년작 'WARNING'에서 'Addict'와 '사이렌 (Siren)', 'Black Pearl'과 '비밀테이프' 작곡에 참여한 사실이었다.(선미는 같은 작품에 수록된 7곡들 중 ‘가시나’와 ‘주인공’을 뺀 모든 곡의 가사도 직접 썼다.) 또 엑소의 첫 듀오였던 세훈, 찬열이 앨범 제작 차원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공을 들인 미니앨범 'What A Life'와 뷔가 '풍경'이라는 곡을 포함해 BTS 보컬 멤버들 중 가장 많은 7곡 저작권을 기록해 화제가 된 일도 언급했다.



2015년에 발매한 세븐틴의 첫 미니앨범과 원더걸스의 'Reboot'가 촉발시킨 이 자작돌(또는 작곡돌)이라는 경향은 리더 소연이 쓴 'LATATA'로 2018년에 데뷔한 6인조 걸그룹 (여자)아이들과 앞서 내가 인용한 2019년의 도전들을 지나 2021년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단순히 그냥 이어져온 게 아니다. 그 사례는 점점 많아지고 있고 방식은 더 전면화되고 있다. 리더 방찬이 이끄는 프로듀서팀 '쓰리라차'를 엔진으로 장착한 스트레이 키즈를 비롯해 멤버 10명 모두가 작곡/작사를 할 수 있는 펜타곤, 2021년 상반기에 나란히 돌아온 몬스타 엑스와 엔플라잉, 워너원 출신 이대휘와 박우진이 이끄는 에이비식스(AB6IX), 작사/작곡은 물론 아크로바틱과 디제잉까지 소화하는 9인조 힙합 퍼포먼스 그룹 다크비, 제작자 비(Rain)가 선보인 싸이퍼, 데뷔 1년 만에 13곡 저작권을 확보한 엠씨앤디(MCND), 그리고 작사와 퍼포먼스 구상에 전 멤버가 참여하는 위아이까지. 차마 다 읊어내기에도 벅차다. 도대체 이들은 왜 자신이 만든(관여한) 음악을 그토록 들려주고 싶어 하는 걸까. '살인의 추억'은 봉준호의 영화이기도 하지만 송강호, 김상경의 영화이기도 하지 않은가. 연출과 연기는 떨어져선 성립할 수 없는 상호보완의 관계인데 이들이 굳이 '똥파리'의 양익준, '용서받지 못한 자'의 윤종빈이(두 사람 모두 자신이 연출한 작품에 직접 출연했다) 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2년 전 나는 그 이유를 '자아실현'에서 찾았었다. 맞다.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설에서 가장 꼭대기를 차지하는 바로 그 가치. 자아실현이란 자유의 영역 이전에 사람의 본능이고, 개인 잠재력을 극대화하려는 욕구인 동시에 자기완성에 대한 갈망이라고 나는 앞선 글에서 썼다. 그러니까 지금 '자체 제작돌'들은 어떤 결과물의 유일함, 그것의 대체 불가능성을 지향하는 것이고 그것을 자신의 설계 아래 짓길 원하는 것이다. 아이돌 팝이 태어난 1950년대부터 반 세기 이상 누락됐던 그 권리와 기회가 지금 대한민국에서 구체적으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저작권이라는 현실적 보상과 성취감이라는 심리적 자부심이 그들에게 더 그들만의 곡과 노랫말을 쓰게 만들고 있다.



하긴 이마저도 배려와 전략적 뉘앙스를 동시에 깐 소속사 대표(프로듀서)의 허락을 받아 이뤄지는 것일지는 모른다. 설령 그렇더라도 지금 한국 아이돌들은 어쨌거나 능동적인 창작 활동을 표면적으론 보장받고 있는 셈이다. 중요한 건 이것이다. 뭐 굳이 아이돌이 자작곡을 써내야 하고 안무를 짜고 프로듀싱을 해내야 하는 거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당연히 의무는 아니다. 나는 단지 펜타곤의 키노가 연습생으로서 느낀 압박감과 힘들었던 상황을 담아 'OFF-ROAD'라는 곡을 만든 맥락 정도는 한 번 짚어보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다. 너무 당연하게도 내가 겪은 이야기는 나만이 쓸 수 있다. 거기엔 진심과 진실이 담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것에 더 움직이고 반응한다. 실제 래퍼 투팍이 전설의 아이콘이 된 것도 듣는 이들이 그의 역경에 공감했기 때문이고, 아미가 BTS에 충성을 맹세한 이유 역시 그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대신 해주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동기부여라는 건 남이 나를 규정하고 남이 시키는 대로 나를 만드는 쪽에서보단 그 반대편에서 생길 확률이 훨씬 높다. '아이돌이 만들어낸 아이돌'이 가치 있는 이유다.


글쎄, 어쩌면 이런 글을 쓰는 자체가 '자신의 콘텐츠를 직접 만드는 아이돌' 신기해하는 것일  있어 조심스럽긴 하다. 사실 '자체 제작돌'이라는 말은 얼마나 거창한가. 얼마든지 그럴 수도 있는 일을 두고 우린 너무 호들갑을 떨고 있는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경향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보면 어떨까. 지금 대한민국 아이돌들은 래퍼와  밴드의 공통점을 공유하려는 것이라고. 바로 ' 가사는 내가 쓴다' '우리의 음악은 우리가 만든다'라는 불문율이다. 이른바 'DIY'라는 오래된 창작 철학이 지금 우리의 아이돌들을 자극하고 종용하는 중이다. 이제 그들은 자신들의 고민과 입장이 들어있지 않은 곡은 죽은 곡이라는 생각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그건 정체성의 문제인 동시에 자존심의 문제이기도 하다. 사활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 글은 ize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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