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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Oct 08. 2021

있지(ITZY)의 도전은 이제 시작

글로벌 '대세' 걸그룹으로 거듭나는 중인 있지(ITZY). 왼쪽부터 리아, 류진, 예지, 채령, 유나.


세상은 ITZY(있지)를 "4세대 대표 걸그룹"이라 부른다. 케이팝 걸그룹 계보가 어느새 여기까지 왔나 싶겠지만 그런 감탄을 하는 지금도 해당 계보는 언제든 뒤집히고 재배열될 준비가 되어 있다. 이 글을 쓰는 현재(2021년 10월 7일) 그 계보의 꼭대기에는 어쨌거나 원더걸스, 미쓰에이, 트와이스를 잇는 JYP의 야심작 ITZY가 '대표'로 자리매김해 있다.


4세대라는 말엔 두 가지 암시가 있다. 지난 1~3세대 걸그룹들의 스타일을 음악, 안무 등에서 두루 흡수했으리라는 것과 그들이 지금 10~20대의 대변자이리란 점이다. ITZY의 음악과 안무에는 실제 에프엑스와 레드 벨벳, 트와이스와 블랙핑크, 소녀시대와 여자친구의 요소가 알게 모르게 스며있고 그들이 던지는 메시지에는 MZ세대(1980~1995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을 일컫는 밀레니얼 세대와 1996~2010년 사이에 태어난 Z세대를 합쳐 부르는 용어)가 열광하고 공감할 내용들로 빼곡하다. 


지난해 8월 발매한 세 번째 미니 앨범 'Not Shy'를 예로 보자. 이 곡을 쓴 코비는 당시 스무 살이었다.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와 드럼, 기타를 만지기 시작한 그는 초등학교 2학년 때 2PM의 'Again & Again' 드럼 비트를 따라 연주하며 케이팝에 빠지기 시작, 중학교 2학년 때는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곡까지 쓸 수 있게 된다. 그가 음악을 업으로 삼으리라 다짐한 건 고등학교 1학년 때로 이후 박진영의 눈에 들어 JYP퍼블리싱 소속 작곡가가 됐다. 라틴음악과 트랩을 소스로 써낸 'Not Shy'는 일본에서 나온 갓세븐의 'Never Ending Story', 원어스의 'In My Arms' 이후 세상에 선보인 작곡가 코비의 세 번째 작품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Not Shy'가 코비의 세 번째 곡이라는 사실이 아니다. 중요한 건 그 역시 21살 리더를 가진 ITZY와 같은 MZ세대라는 점이다. 비록 가사는 회사 사장님(박진영)이 썼지만 그 음악만큼은 같은 정서와 문화를 공유한 송라이터, 퍼포머 사이에서 태어났기에 'Not Shy'는 분명 남다르다. 비록 '달라달라', 'Wannabe', 'Icy'의 릴레이 흥행을 충분히 견인하진 못했어도 'Not Shy'는 다른 세대 작곡가들과 협업한 ITZY의 곡들에 비해 확실히 더 자연스럽게 들렸다. 이는 당장 눈에 보이진 않지만 귀로는 은근히 감지되는 또래 사이 화학작용이 그만큼 강렬하다는 방증이겠다.


있지(ITZY)는 데뷔 2년 여만에 미니 앨범만 4장을 내놓았다.


ITZY는 2019년 2월에 데뷔했다. 겨우 2년 여 활동했을 뿐이지만 이들의 이력에는 벌써 미니 앨범 4장에 싱글만 5장이 들어있다. 짧으면 주 단위, 길어야 반년을 넘기지 않은 이 숨 가쁜 행보는 물론 사측의 전략이기도 했겠으나 그들의 젊음과 열정이 없었다면 해나가기 버거웠을 일이다. 좀 쉬어도 될 법 한데 ITZY는 기어이 지난 9월 24일 첫 번째 정규 앨범 'CRAZY IN LOVE'까지 발매하며 4세대 걸그룹 대표 주자 타이틀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거듭 내비쳤다. '미치광이'를 뜻하는 타이틀곡 'LOCO'는 이미 유튜브 조회수 6864만 회 이상을 기록(2021년 10월 7일 기준)했고, 'LOCO'의 코러스 가사에서 제목을 가져온 앨범 'CRAZY IN LOVE'는 빌보드 앨범 차트 11위로 데뷔했다.


빌보드 11위. '달고나'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세계인의 놀이가 되고 BTS와 콜드플레이가 함께 한 노래가 빌보드 핫 100 1위에 아무렇지 않게 오르는 현실에서 자칫 ITZY의 이 기록은 이젠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 중 하나로 치부될 수도 있다. 하지만 데뷔 2년 만에 첫 앨범을 낸 걸그룹이 세계에서 가장 큰 음악 시장의 대표 차트에서 11번째에 올랐다는 건 조금 다른 문제다. 이는 멤버 모두가 한국인이지만 이들의 존재감과 기세 만큼은 이미 글로벌을 향해 있다는 얘기와 같다. 케이팝은 더 이상 한국'만'의 팝이 아닌 것이다.


'#Twenty'라는 곡이 상징하듯 ITZY의 데뷔 앨범은 이들의 자체 성인식에 가깝다. 장르에선 기존 싱글과 미니 앨범들이 가져온 음악적 기조 즉 EDM과 힙합, 하우스와 덥스텝의 뒤엉킴이 여전하고 가사에선 여성으로서 주체성과 능동성을 강조('SWIPE')하며 스타로서 자신감('Gas Me Up')도 드러낸다. 또 'B[OO]M-BOXX'의 후렴구는 첫 싱글 'LOCO'의 뮤직비디오만큼 인상적이며, 'Sooo LUCKY'의 팝 코러스는 한편으론 '달라달라'의 변주처럼 들린다. 특히 팀의 시그니처 엔딩 안무를 닮은 '왕관춤'과 포인트 안무로 꼽은 '고양이춤'을 앞세운 싱글 'LOCO'는 틴크러시와 자유분방이라는 ITZY의 매력을 시각적으로 무난하게 전달해낸 느낌이다. 메인 래퍼 겸 리드 댄서인 류진은 디테일과 멤버 각자의 개성을 두루 챙겼다는 말로 그런 자신들의 안무 철학을 요약했다.  



ITZY의 데뷔작에는 총 16 트랙이 담겨 있다. 이중 아홉 곡이 신곡이고 나머지 한 곡은 'LOCO'의 영어 버전, 나머지 다섯 트랙은 '달라달라'부터 '마.피.아. In the morning'까지 기존 히트곡들의 MR 버전이다. 이는 그 자체 좋은 음악으로 팬들에게 또 다른 기쁨을 줄뿐더러 평소 ITZY 히트곡들의 트랙 소스가 궁금했던 사람들에겐 따로 좋은 학습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ITZY의 첫 풀렝스 앨범을 공들여 리뷰한 영국 음악 주간지 'NME'는 "실험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소리"라며 작품 전반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면서도 한편으론 후반 '뒷심 부족'(아마도 'Gas Me Up' 정도에서 불거졌을)을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 말대로 앨범 'Crazy In Love'는 앞날이 구만리인 ITZY의 첫 단추일 뿐이라 서둘러 미래를 예단하거나 팀의 음악적 향방을 결론내릴 단서까지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들의 도전은 이제 겨우 시작됐다.



* 이 글은 ize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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