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awberry Moon'
열다섯 살에 데뷔한 아이유는 성장의 아이콘이다. 1집 제목('Growing Up')부터가 벌써 그렇다. 그 앨범에서 아이유는 "중학생이었던 이지은이 벌써 고등학생"이 되었다('졸업하는 날')며 자신의 성장기 보고(?)를 시작했다.(아이유는 거의 모든 음반 재킷에 그 나이 때 얼굴을 싣는다. 그러니까 아이유의 작품들은 음악 앨범인 동시에 사진 앨범이기도 하다.) 이는 18세 소녀의 가슴앓이를 노래한 '좋은 날'을 지나 10대의 마지막 순간에 작별을 알린 2집 'Last Fantasy', 스무 살을 기념한 싱글 '스무 살의 봄', 20대 초반 자신의 지금을 바라본 '스물셋', 가는 20대와 오는 30대에 함께 건넨 인사 '라일락'까지 간다. 이건 언뜻 나오는 앨범마다에 자기 나이를 새기는 영국의 아델과 비슷해 보인다. 가수로서 독보적인 음색을 가졌다는 점에서도 두 사람은 닮았고, 심지어 둘은 데뷔 해도 2008년으로 같다.
아이유를 얘기할 때 '성장'이라는 단어가 중요한 이유는 말이 품은 뜻을 그가 실제 일구어 나갔기 때문이다. '좋은 날'이 히트한 세 번째 미니 앨범 'Real'을 계기로 단단한 인지도를 확보한 그는 두 번째 정규작 'Last Fantasy'에서 직접 곡을 쓰기 시작하면서 스스로가 단순히 노래만 부르는 가수, 특정 장르에 얽매여 반짝 인기만 누리는 아이돌 스타가 되길 거부했다. 아이유는 어떻게든 아티스트가 되려 했고 그 길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취향을 타지 않는 음악, 깊이와 변화를 전제한 창작의 융통성을 아이유는 진즉부터 목표로 삼아 결국 도달했다.
아이유는 23살 때부터 프로듀싱에도 관여했다. 음반 레코딩 과정 전반을 총괄하는 음악 프로듀서는 영화로 치면 감독이다. 따라서 프로듀서의 선택과 판단은 그 음반 또는 곡의 콘셉트와 질, 성격까지 좌우한다. 아이유는 부분적으로나마 20대 초반부터 그 일을 하며 자신의 음악을 통제하려 했다. 모든 가사를 본인이 쓴 'CHAT-SHIRE'를 포함해 'Palette' 이전까진 개인적인 이야기를 다뤄 그 그릇을 넓혔고 이후엔 주변의 이야기까지 소재를 확장해 해당 그릇을 채웠다.
그는 한 작품을 내고 나면 더는 미련을 두지 않는다. 미련이 남는 부분은 다음 작품에서 수정하거나 해소할 일이지 후회의 영역은 아니다. 아이유에게 음악이란 'Unlucky'의 가사처럼 "달릴수록 내게서 달아나"는 것이어서 그는 이미 세상에 푼 음악은 그대로 대중에게 맡기고 다음을 향한다. 그래서일까. 아이유는 자기가 만족하기 전까진 곡이나 앨범을 함부로 발표하지 않는다. 물론 자기만족이라고 해서 아티스트의 취향에 무게를 두는 건 아니다. 아이유는 철저히 대중 지향적인 음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마치 친구의 그것처럼 더 많은 사람들이 '오래 두고 가까이 사귀는' 음악이 바로 아이유가 원하는 음악이다. 활동 초기 '미아'와 'Boo'로 나뉜 장르적 이분법은 아이유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지난 10월 19일 자정. 그런 아이유가 3집 'Modern Times'에 이어 또 한 번 음악적 성숙을 거친 'Lilac'을 뒤로하고 새 노래 'Strawberry Moon'을 내놓았다. "사랑에 빠졌을 때 내 안에서 일어나는 믿기 힘든 판타지"를 6월 밤하늘의 딸기 색깔 달에 견준 곡이다. "아주 쉬운 곡"을 만들고 싶었다는 아이유는 가사에도 나오는 '무중력'을 표현하기 위해 일렉트로닉 요소를 더하고, 내지르는 후렴과 백킹 코러스로는 곡의 다이내믹을 살리는데 중점을 두었다고 소개 글에 꼼꼼히 기록해두었다. 여백과 최소(Minimal)를 노린 프리 코러스(Pre-Chorus)가 들려주듯 확실히 힘을 뺀 싱글이고 그래서 일면 평범하게 들릴 법도 하지만 "달이 익어가니 서둘러 젊은 피야"나 "바람을 세로질러 날아오르는 기분" 같은 노랫말에선 싱어송라이터 아이유의 무르익은 여유가 한껏 느껴져 좋다.
작곡은 과거 아이유를 발굴했던 최갑원이 기획한 보이그룹 하이포(High4)의 데뷔곡 '봄 사랑 벚꽃 말고'에서 만나 '꽃갈피' 앨범, '사랑이 잘 (With 오혁)', '팔레트 (Feat. G-DRAGON)' 같은 곡들로 인연을 이어온 이종훈이 아이유를 거들었다. 편곡은 이종훈과 이채규가 함께 했는데 두 사람은 'Zezé'와 '스물셋'으로 아이유와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아이유는 신시사이저(이종훈)와 드럼(이채규)까지 따로 연주한 이 편곡 듀오를 "내가 가장 믿고 의지하는 음악적 조력자들"이라며 큰 신뢰를 비쳤다.
음악으로 너와 내가 하나가 된다
새삼 이지은의 예명 'IU'의 뜻을 되새겨 본다. 그는 데뷔 때 이런 말도 했다. "내 노래를 통해 사람들이 잃어버린 꿈을 찾게 해주는 것"이 음악을 시작한 이유라고. 아이유는 타고난 성실과 재능으로 자신의 말을 지켰고 "나에게 너를 맡겨"보라는 이번 싱글로 그 다짐의 끈을 한 번 더 동여맸다.
*이 글은 ize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