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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Feb 13. 2016

모터헤드는 로큰롤 밴드였다!

 Lemmy를 추모하며......

 웨이브 오브 브리티시 헤비메탈(New wave of british heavy metal) 이야기   대중은 아이언 메이든(Iron Maiden) 데프 레파드(Def Leppard), 색슨(Saxon) 베놈(Venom) 정도를 퍼뜩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개념은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 밀어닥친 실체 없는 ‘경향(new wave)’ 아닌,  경향의 전제인 ‘헤비메탈(heavy metal)’이라는 장르 이름이다. 그랬을  우린 저들 만큼 중요한 밴드 하나를  언급해야 하는데 바로 영국 런던 출신 밴드 모터헤드(Motörhead)이다.   차별화를 주기 위해 나는  글의 주인공인 모터헤드(또는 레미 킬미스터(Ian “Lemmy” Kilmister, 이하 ‘레미’)) ‘스래쉬메탈과 하드코어펑크, 그리고 스피드메탈의 선구자 부르며 시작할 것이다. 적어도 이것은 평단과 팬들이 함께 인정하는 역사적 사실(fact)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 모터헤드의 리더였던 레미만은  사실을 일관되게 부정해왔다. , 그는 “모터헤드는 펑크(punk) 밴드가 아닌, 스피드메탈과 스래쉬메탈의 선구격 밴드라고 말한 올뮤직의 스타 필자 티븐 토마스 얼와인(Stephen Thomas Erlewine) 주장을 단호히 거부했다. 모터헤드는 헤비메탈 밴드가 아닌, 그저 로큰롤 밴드였을 뿐이라는 얘기다.



약물 문제로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호크윈드(Hawkwind)에서 나온(정확히는 ‘잘린’) 레미는 그렇게 ‘로큰롤 밴드’를 결성하고 싶어 했다. 물론 그 의지에는 몇 가지 조건이 붙는다. 일단 그 로큰롤은 엠씨파이브(MC5)처럼 사악하고 빨라야 했고 사운드는 130데시벨을 넘나들어야 했으며, 보컬은 거만하되 거칠어야 했다. 그리고 이 모든 조건은 다시 편집증과 스피드광이라는 기형의 정서에 녹아든다. 이것이 레미의 음악(또는 밴드)철학이요 청사진이었고, 모터헤드는 그런 레미의 바람이 현실로 나타난 팀이었다.


저 조건들을 다시 보라. 소리(크고)와 속도(빠르게!)에서 레미는 자신도 모르게 80년대에 유행할 하드코어펑크와 헤비메탈(스래쉬/스피드메탈)의 가장 큰 특징을 자신의 음악 목표로 삼고 있다. 모터헤드를 세상에 알린 [Overkill]과 [Bomber]가 나온 것이 1979년. 79년이면 도나 섬머(Donna Summer)가 ‘Bad girls’를, 빌리 조엘(Billy Joel)이 ‘My life’를 부르고 있을 때다. 키스(Kiss)와 밴 헤일런(Van Halen)이 있었지만 ‘I was made for lovin' You’와 ‘Dance the night away’가 ‘Overkill’ 만큼 헤비메탈이라는 장르 부흥에 영향을 줄 순 없었다. 그들은 나중에 조금씩 해당 장르에 발을 담근 뮤지션들로부터 큰 존경을 받아 나갔으며, 이는 ‘How you gonna see me now’를 부른 앨리스 쿠퍼도 마찬가지였다. 이른바 ‘순수 열혈’ 헤비메탈의 무게감과 질주감을 전수해준 밴드는 당시 모터헤드가 거의 유일했다. 모터헤드의 음악이 하드코어펑크와 스피드메탈, 그리고 스래쉬메탈에 강한 영감을 주었다는 세간의 평가는 때문에 옳다. 그리고 선과 악, 전쟁, 힘의 남용, 난잡한 성관계, 도박을 다룬 그 음악은 다시 펑크(물론 펑크도 로큰롤에서 파생된 장르다. 레미는 어쨌거나 모터헤드를 로큰롤의 틀 안에 (가)두고 싶어 했다)라는 70년대 대표 장르를 통해 정리, 전수되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데뷔 당시 NME으로부터 “세상 최악의 밴드(the best worst band in the world)”라는 쓴 소리를 듣기도 한 모터헤드의 주인 레미는 댐드(The Damned)와 ‘펑크 미학’은 공유하고 있지만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나 주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와 ‘헤비메탈 미학’을 공유하고 있진 않다고 했다. 비록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의 [No More Tears]에서 ‘I Don't Want to Change the World’와 ‘Hellraiser’를 비롯 총 4곡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레미는 1992년 그래미어워드 ‘베스트 메탈 퍼포먼스’ 상을 메탈리카(Metallica)의 [Metallica]에 빼앗긴 [1916] 수록곡 ‘R.A.M.O.N.E.S.’로 미국 펑크의 전설 레이몬즈(The Ramones)를 기렸고, 2000년작 [We Are Motörhead]에선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의 고전 ‘God save the queen’(“진정한 펑크 밴드는 섹스 피스톨즈가 아닌 댐드다”라고 말했던 레미는 한때 시드 비셔스에게 베이스를 가르쳐주기도 했다)을 뮤직비디오까지 따로 만들어가며 커버했다. 또 레미는 한때 댐드의 베이시스트(1978년)로 활약하기도 했다.



로큰롤의 빠릿한 그루브, 펑크의 뾰족한 파괴(또는 질주)감, 그리고 가끔씩 뽐내주는 느슨한 블루스(‘Whorehouse Blues’)까지. 레미는 모터헤드를 통해 재즈를 뺀 나머지 정통 대중음악을 구사하려 했지만 그 결과물들은 어쨌든 메탈리카 같은 밴드로 하여금 “음악을 시작하게” 만들었다.(메탈리카의 ‘Motorbreath’를 들어보자.) 1987년 발표한 앨범 제목처럼 모터헤드의 시작과 의도는 로큰롤([Rock ‘n’ Roll])이었지만 결국 그 영향은 수많은 헤비메탈 밴드들에게 미친 것이다. 가령 뉴저지 출신 스래쉬메탈 밴드 오버킬(Overkill)은 그 이름과 음악 스타일 덕분에 “스래쉬 메탈계의 모터헤드”라 불리기도 했다. 이는 한 뮤지션(밴드)의 의도가 역사의 평가와 상충하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누가 맞고 누가 그른 것인가. 당연히, 그럴 리가 없고 그럴 수도 없다. 뮤지션의 의도는 그 자체 옳고 그름의 잣대를 벗어난 것이고, 역사의 평가는 많은 시간과 경험, 그리고 다양한 시점을 담보한 ‘사실’이므로 그렇다. 모터헤드는 로큰롤 밴드이기도 하면서 헤비메탈 밴드이기도 했다.



2015년 12월28일. 레미가 죽은 뒤 기타리스트 필 캠벨(Phil Campbell)과 드러머 미키 디(Mikkey Dee)는 ‘당연히’ 모터헤드를 해산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Ace of spades’의 땀 내음을 그대로 간직한 ‘Thunder & lightning’이 담긴 레미의 유작이자 모터헤드의 마지막 작품인 [Bad Magic]의 마지막 곡은 다름 아닌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의 ‘Sympathy for the devil’ 커버 버전이었다. 아무래도 레미는 끝까지 ‘메탈러’ 보단 ‘로큰롤러’로 남길 원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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