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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Jan 05. 2022

'싱어게인' 53호 가수가 던진 질문

'싱어게인'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은 다시 노래 부르고 싶은 사람들에게 무대를 마련해줌과 동시에 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르려는 이들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데서 가치가 있다. 비교적 무명인 가수들이 나와 저마다 음색과 기교로 진검 승부를 겨루는 그 순간이 출연자들에겐 기회와 재기의 자리가 되고 시청자들에겐 감동과 치유의 시간이 된다. 부르는 자와 듣는 자들이 같은 만족으로 수렴되는 이 훈훈한 구조 속에서 '슈가맨'과 'OST'조는 옛 추억을 건드려 무대 안팎을 과거로 물들이는 한편 '찐무명'과 '재야의 고수', 그리고 '홀로서기'조는 몰랐던 보석을 발견할 수 있는 미래 가요계의 도화선이 된다.


그런 '싱어게인'이 지난해 12월 6일 '시즌2-무명가수전'을 시작했다. 자신의 이름을 지운 1호부터 73호까지 총 73명 "가수가 되고 싶은 가수"들이 참가한 이번 시즌도 시즌1만큼 아니, 어쩌면 그 인기를 능가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기량을 가진 '프로 무명'들이 자신들의 새 출발을 예고했다.


'53호' 가수 오열은 이미 자신의 미니 앨범 두 장을 가진 프로 뮤지션이다.


참가자들의 면면은 역시 다양했다. 아이돌 출신 싱어들부터 옛 인기 드라마 주제가를 부른 로커, 인디 신(scene)에선 이미 정평이 난 뮤지션, 과거 오디션 프로그램들에서 우승한 실력자들, 유명 기획사 보컬 트레이너 출신과 그 제자, 심지어 '신호등'의 이무진에게 과제를 내줬던 교수님까지 한자리에 모였다. 통기타 한 대로 블랙 뮤직에 뛰어드는(현진영의 '흐린 기억 속의 그대'를 편곡해 부른 11호와 42호 같은) 트렌디 싱어들이 여전히 눈에 띄고 70년대 후반 노래를 어쿠스틱 기타 반주로 부른 뒤 BTS 안무를 선보인 2002년생 참가자가 있는가 하면, 별빛 같은 김광석의 노래를 폭탄 같은 JK 김동욱식 발성으로 부른 가수도 있었다.


나는 이중 이상은의 '언젠가는'을 흐느끼는 창법으로 부른 53호를 주목하고 싶다. 그는 마치 93년에 태어난 원곡이 늘그막에 이르러 "젊어서 젊음을 몰랐던" 시절을 애석해하듯 불렀다. 그렇게 어느 기사의 헤드라인처럼 "말하듯 노래한" 53호의 퍼포먼스가 방송으로 나간 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음치"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음정도 제대로 못 맞추는 사람이 무슨 가수냐는 거였다. 나는 여기서 한국인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가창력의 기준을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었다. 아마 그들에게 '노래 잘하는 사람'이란 17호처럼 고음을 능란하게 올리거나 31호와 34호처럼 음정과 박자를 자로 잰 듯 정확하게 맞추는 싱어일 거다.



물론 저런 것들도 중요한 건 맞다. 단, 그것이 노래 잘 부르는 사람의 절대 기준이라고 말해버리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왜냐하면 그들은 음정과 박자와 고음 외 좋은 가수가 갖추어야 할 다른 조건들, 이를테면 노래를 대하는 감정, 독창적 곡 해석, 그 해석에 따른 표현을 간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래를 잘 부른다는 건 듣는 사람의 마음을 훔친다는 뜻일 텐데, 과연 가수가 음정/박자/고음만으로 그걸 해낼 수 있을까. 그런 면에서 53호의 '언젠가는'은 분명 잘 부른 노래였고 때문에 '음치'라 잘라 말한 사람들이 듣지 못한 세계로 심사위원 6명을 초대해 무사히 1라운드까지 통과할 수 있었다. 그나마 2라운드에서 7호와 함께 부른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이 방영된 뒤로 음치 운운은 잠잠해졌지만 그럼에도 53호의 음악성에 의문이 든다면 그가 오열이라는 이름으로 발매한 두 장의 미니 앨범 '단잠'과 '한강열차'를 꼭 들어보길 바란다.


그리고 또 하나, 나는 조별 카테고리 중 마치 오디션 전문 가수들로 굳어가는 듯한 '오디션 최강자'조의 존재에 눈이 갔다.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계속 오디션에 나오는 것인가. 다른 프로그램들에서 이미 우승, 준우승까지 한 사실상 프로인 사람들이 계속 오디션 문을 두드리는 모습은 꽤 모순적이다. 하물며 브로콜리너마저라는 인기 밴드를 이끄는 윤덕원 같은, 인디 음악계에선 거의 윤종신급인 싱어송라이터가 '재야의 고수' 정도로만 받아들여지는 모습에선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그들이 과연 2000년대 초반 'Heaven'을 부른 뒤 "천국과 지옥을 오간" 가수 김현성의 입장과 얼마나 다를까. 나에게 이는 월드컵 응원가로 유명 가수가 된 사람이 평창 동계 올림픽 무대에 선 재즈 가수의 발음을 지적하는 모습 만큼이나 아이러니한 장면이었다.



나는 부디 '싱어게인'에서 쏟아낸 출연자들의 역량이 오디션을 위한 오디션으로 소비되지 않고 이들 미래를 위한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디딤돌이 될 수 있길 바란다. 그때야 비로소 프로그램의 기획 취지 즉 "기회가 필요한 가수들이 대중 앞에 다시 설 수 있도록 돕는 신개념 리부팅"이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음치로 오해받은 오열은 그 수혜를 조금씩 누리는 듯해 안심이지만.



* 이 글은 ize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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