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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Feb 18. 2022

"펄펄 뛰는 활어"같은 록

오버드라이브 필로소피 [OVerdrive Philosophy]



오버드라이브 필로소피의 첫 앨범에는 막 썰어낸 펄펄 뛰는 활어를 맵싸한 와사비 간장에 찍어 소주 한 잔에 털어 넘기는 듯한 느낌을 줄 수 있는 곡들을 담았다

박근홍

허풍인 것 같나. 아니다. 보컬리스트 박근홍은 자신의 새로운 프로젝트 오버드라이브 필로소피('오버필')의 음악을 공감각적으로 정확히 묘사했다. 이 앨범은 정말 "펄펄 뛰는 활어"같은 연주로 "소주 한 잔 털어 넘기는 듯한" 알싸한 맛을 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도 이 앨범을 들은 내 느낌을 조금 묘사해보겠다. 단, 즉흥연주(Jam)로 곡을 쓰고 원테이크로 녹음을 한 앨범이라니 내 묘사도 즉흥에 기대려 한다.(물론 박근홍이 전한 인터뷰 내용은 조금씩 인용하면서.) 프론트맨이 게이트플라워즈와 ABTB를 거쳤다는 따위 전사(前事)는 알아서들 찾아보시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첫 곡은 '미세먼지'다. 베이스가 뚜벅이며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고 기타와 드럼이 가벼운 조율을 거치고 나면 곁에서 기침하던 박근홍이 벼락같이 외친다. "밖으로!" 그러곤 다시 잦아든다. "안으로..." 박근홍은 계속 부른다. "어제도! 오늘도... / 괴로워! 지겨워..." 무슨 말인가 싶었던 두 소절 시작에서 이제 가수는 무언가를 향해 구체적인 짜증을 풀어놓는다. 맞다. 지금까지 당신이 겪어왔고 그래서 지금 당신이 예감한 그것. 이건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지긋지긋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소재로 삼은 넋두리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이 소재는 남은 곡들에도 비교적 일관되게 적용되는데 거기엔 희망('구호물품 pt.1')도 있고 자조와 냉소('구호물품 pt.2')도 있으며, 신나는 선동('홀로디스코')과 정치적 일갈('모르는게약')도 있다. 이제 이 모든 화나고 슬프고 뼈아픈 상황들을 박근홍은 칠순을 넘긴 에디 베더가 들려줄 법한 포효(이건 칭찬이다)에 실어 날려보내는데 이게 아주 그만이다. 그리고 거기엔 박근홍 외 무자비한 기교로 중무장한 기타리스트 리치맨과 베이시스트 백진희, 드러머 강성실까지 함께 버티고 서 수정도 보정도 없는 "록, 블루스, 소울 최전성기의 심장 펄떡이는 사운드"를 직조해 듣는 이들의 고막을 무장해제 시킨다.



'미세먼지'에서 가장 주목할 연주자는 드러머 강성실이다. 그의 현란한 "브로큰 비트"에는 분명 힙합과 재즈와 록이 모두 들어있다. 그리고 그것은 박근홍의 표현대로 "육즙인지 핏물인지 모를 알 수 없는 것이 팡팡 터지는" 오버필 음악의 중심이다. 강성실 뿐만 아니다. 오버필에선 악기 모두가 솔로 연주 앞에서 절대 머뭇거리지 않는다. 서로를 배려하며 서로에게 간섭하는, 약속인지 우연인지 모를 자유로운 스케일을 그들은 마음껏 발산하는 것인데, 박근홍은 이 산화하는 음과 리듬의 자맥질을 중간에서 마치 지휘자처럼 이끈다.


가령 블랙 크로우스 같은 기타 리프로 문을 열어 알 그린과 레드 핫 칠리 페퍼스가 만난 뒤 마하비쉬누 오케스트라 풍의 연주로 문을 닫는 '구호물품 pt.1'이 좋은 예다. 특히 이 곡에선 맛깔스런 기타 연주를 들려준 리치맨의 단단하고 생기 넘치는 악기 톤에 주목해볼 만하다. 또 곧바로 이어지는 '구호물품 pt.2'에선 박근홍이 왜 백진희의 베이스 연주를 "바위같다"고 했는지를 들을 수 있는데 그는 이 곡에서 부서지고 돌출하는 기타, 드럼의 플레이 아래 끈질기게 안정을 추구하는 유일한 존재로서 존재한다. 만약 이들 음악을 '혼돈의 질서'라 부를 수 있다면 백진희의 베이스는 당연히 '질서' 쪽에 있다.


'라이브 녹음' 하면 으레 부틀렉처럼 조야한 사운드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런 작품에선 그런 걱정 붙들어 매도 된다. "미친 듯이 뻔뻔하게 앞뒤 재지 않는" 그루브의 끝을 들려주는 '홀로디스코'를 들어보라. 아니면 '모르는게약'에서 박근홍의 막간 소개로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어리언스처럼 세 사람이 번갈아 솔로로 나서는 순간들을 훔쳐봐도 좋고, 기타 리프 하나를 부여잡은 채 스스로를 부순 커트 코베인의 모습을 재현한 'Get Out'에 집중해도 좋다. 이 구김살 없는 소리를 만들어준 사람은 다름 아닌 세계적인 마스터링 엔지니어 테드 젠센. 이글스의 'Hotel California'와 그린 데이의 'American Idiot' 등 올타임 명반으로 통하는 작품들을 포함해 헤아리기 힘든 방대한 디스코그래피를 가진 인물이다. 아니, 이런 건 말이 필요없다. 그냥 직접 들어보면 된다. 믿기 힘들 만큼 말쑥한 '라이브 사운드'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대략 이런 느낌을 받으며 나는 방금 오버필의 데뷔 앨범을 '쓰면서' 들었다. 그리고 이 작품을 감상한 뒤 내가 내린 결론은 이거다. 삶이 위협받는 현실에서 음악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결국 생(Live) 녹음을 통한 삶(生)의 절규가 아닐까 하는. 부디 그들의 앞날에도 이 음악같은 활기가 이어지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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