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은 싸이가 데뷔한 지 22년째 되는 해다. 이 말은 애니콜과 아이팟 시대에 태어나 아이폰과 갤럭시 시대까지 그가 살아남았다는 얘기와 같다. 신작을 "디지털 시대에 역행하는 정규 음반"으로 규정한 것, 오래된 히트 번안곡을 까마득한 후배와 함께 부르는 뉴트로적 시도를 감행한 일은 그래서 '중견 가수' 싸이에겐 비교적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는 명실상부 5년 단위로 문화 천지가 개벽한 지난 20년 세월의 한복판에서 가요계의 판을 바꾸어버린 인물이었다. 조피디를 참고한 플로우와 라임, "배달 사고 없는 딜리버리"를 통해 직진하는 사랑 고백 및 직설의 사회 풍자를 일관되게 펼쳐온 그가 가수로서 마지막 앨범일지도 몰랐던 6집의 '강남스타일'로 세계를 접수한지도 어언 10년. 그 10년 사이 싸이는 자신의 애초 목표였던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를 피네이션(P Nation)이라는 이름으로 본격화 했고, 그러면서 수 년간 텀을 두었던 가수 활동에도 다시 눈을 돌렸다. 앨범 타이틀은 '싸다9'. 어떤 식으로든 '싸'와 '이'를 엮어온 그의 앨범 제목 역사에 과연 누를 끼치지 않을 최적의 이름이다. 참고로 '싸다9'는 싸이가 설립한 피네이션에서 나오는 첫 번째 싸이 앨범이기도 하다.
지난 세월 싸이는 샘플링과 리메이크로 집단의 과거와 개인의 취향을 챙겨왔다. 해롤드 팔터마이어의 'Axel F'를 가져다 쓴 '챔피언'과 2005년도의 리메이크 앨범 'Remake & Mix 18번'은 그 대표적인 기록들이다. 샘플링, 리메이크와 더불어 싸이 음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는 피처링이다. 스스로 꿈이었다고 밝힌 "재치있는 음악 프로듀서"로서 싸이는 이번에도 트렌드를 반영한 초대 손님 명단으로 팬들을 유혹한다. 비록 윌 아이 엠과 에드 시런 같은 이름은 빠졌지만 줌바 비트에 태운 타이틀 곡 'That That'에서 호흡을 맞춘 BTS의 슈가와 느린 사색의 트랙 'Happier'에 이름을 올린 크러쉬, 건반의 천연색 팝 그루브를 펼쳐낸 지코('Celeb')와 기리보이('나의 월요일')의 참여는 40대 중반이 된 싸이의 음악이 여전히 한국의 20, 30대를 타깃으로 삼을 수 있을 현실적 전제가 된다. 과거 '양아치'의 불안했던 간지를 걸쭉한 붐 비트 위 '월드스타'의 세련된 간지로 거듭 새긴 제시와의 호흡('GANJI') 역시 그런 전제의 일부다. 물론 해외 평단이 지적한대로 또 하나의 '강남스타일' 같은 'That That'의 안이한 콘셉트와 BTS 인맥이라는 "불필요한 술책"은 분명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That That'을 살려준 건 싸이의 개그가 아닌 슈가의 랩이었다는 것, 그리고 케이팝을 세상에 알린 가장 중요한 두 존재가 한 노래에서 만났다는 사실 만큼은 딱히 논쟁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또 하나 신보에서 주목할 노래는 리메이크 곡 '이제는'이다. 싸이에게 리메이크란 언제나 지난 가요(가수)와 지금 가요(가수)를 조화시키려는 의도였고, 피처링은 싸이 자신이 해낼 수 없는 영역을 이뤄내기 위한 전략적 수단이었다. 이재훈이 후렴을 부른 '아름다운 이별 2'와 성시경이 참여한 '뜨거운 안녕', 헤이즈가 함께 한 이번 앨범의 '밤이 깊었네' 등은 그 둘(리메이크와 피처링)을 적절히 뭉뚱그린 결과물들이다. 하지만 저곡들은 단순히 코러스 정도만 인용한 수준이었던데 비해, '이제는'은 싸이와 화사가 곡 자체를 통째로 다시 부른 완전한 리메이크 트랙이다. 그것은 김완선과 이선희, 조덕배 같은 80년대 가수들을 자기 음악 안으로 불러 레트로 냄새를 피워낸 과거 사례들과 반대로 싸이 자신이 아예 80년대 음악 속으로 뛰어들어 후배와 펼친 듀엣 퍼포먼스였다.
많은 사람들이 서울훼밀리의 곡으로 알고 있는 '이제는'은 사실 마이클 잭슨의 형인 저메인 잭슨과 배우 겸 가수였던 피아 자도라가 함께 부른 'When The Rain Begins To Fall'이 원곡이다. 6인조 밴드 서울훼밀리는 84년에 발표된 이 곡을 3년 뒤 '애창팝스 번안가요'라는 부제를 단 자신들의 스페셜 앨범에 번안해 실었다. 당시 김재덕의 편곡은 뉴웨이브/신스팝 풍 원곡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오동식이 다시 붙인 노랫말은 곡에 전혀 새로운 사연을 녹여내 한국 대중이 이 곡을 서울훼밀리의 오리지널로 믿게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오동식은 서울훼밀리의 대표곡 '내일이 찾아와도'를 작곡한 사람이다.) 탁성을 배제하고 위일청에 빙의한 싸이, 김승미의 카리스마와 다른 카리스마를 뽐낸 화사가 열창한 이번 버전은 뮤직비디오와 함께 즐기면 그 짜릿함이 배가되는데, 가사에도 나오듯 지난 시절 "그리움과 아쉬움"의 공간이었던 공중전화 부스를 둘러싼 우윳빛 영상은 현란한 편집보단 자연스런 동선을 앞세워 이미지 자체에서 이미 뉴트로스러움을 덕지덕지 묻어낸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 팔팔했던 싸이도 이제 40대 중반에 이르렀다. 중년을 가로지르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싸이 역시 지나온 인생을 음악으로 되돌아보는 일을 새 앨범의 주요 정서로 택한 눈치다. 가령 "데뷔 10년에 활동 2년"의 내막을 분노와 자조를 뒤섞어 풀어낸 5집의 '싸군'에 맞먹는 '나인트로(9INTRO)'부터 그런 조짐을 보이는데, 16년 전 히트곡 '연예인'을 뒤집어 다룬 'Celeb'에선 대놓고 1차원적 과거 회귀를 노리는 식이다. 그리고 지나간 추억과 지나갈 추억 앞에서 복잡한 감정에 젖어드는 '밤이 깊었네', 'Happier', 'Everyday', 'forEVER'는 이내 정답이 없는 삶을 사는 우리 모두를 '내일의 나에게'로 가만히 데려간다. 이처럼 '넌 감동이었어'를 부른 성시경이 참여한 '감동이야'까지 포함해 앨범 '싸다9'는 수록곡 절반 이상을 한 중년 가수의 회상 또는 회한으로 물들였다. 결국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내놓은 새 앨범은 반환점에 이른 싸이 음악의 재도약, 나아가 그 음악 무대의 제2막에 가까운 무엇처럼 보인다.
한동안 싸이의 자유는 타인에겐 불편이었다. 남눈치 안보는 그의 태도와 음악에 해방감을 맛본 자들도 물론 있었지만 그럼에도 세상은 대책없고 버릇없는 싸이와 그 추종자들을 꺼려했다. 3집 재킷 그림이 잘 표현했듯 어느 시대에 싸이는 위험한 문화적 바이러스였고 꺼뜨려야 할 사회적 빨간불이었다. 그런 싸이의 음악 여정은 실상 대중음악의 "다크니스"를 찾아헤매는 과정에 가까웠다. 그는 '싸이코'와 '배드 보이'를 정체성으로 삼아 성공한 보기드문 변종이었으며, '엽기'라는 불안 요소를 '재미'라는 반대급부로 소화시킨 영리한 청개구리 엔터테이너였다.
자연스러운 게 오래 가고 심플한 게 강력하다
이는 "변화보다는 업그레이드를" 추구하는 뮤지션 싸이의 오랜 신조다. 그것이 뉴 잭 스윙이 됐건 훵크가 됐건, 강력한 헤비 록이 됐건 '신나는 비트와 솔직한 가사'는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여전히 싸이 음악의 바탕을 이룬다. "자연스럽고 심플한" 싸이 음악의 뿌리와 열매는 그렇게 늘 한결 같았다. 육체의 감각으로 내면의 감성을 건드린다. 9집도 그렇고, 아마 이변이 없는 한 다음 앨범들도 그럴 것이다.
*이 글은 ize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