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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Sep 22. 2022

브런치를 통해 책을 내다

지금 내게 필요한 멜로디


2015년부터 꾸준히 브런치에 글을 올렸다.

'브런치북'을 노려봤지만 비교적 대중의 관심 밖(?)인 대중음악 글로는 여의치 않았다.

그럼에도 꾸준히 썼다. 그리고 브런치를 통한 이메일로 기회가 왔다.

플레이리스트 형식으로 책을 내보자는 출판사의 제안이 있었고 이후 5개월 정도 집필에 매달렸다. 이어 후반 교정과 디자인 편집 기간 2개월 여를 거쳐 이렇게 겨우 책이 나올 수 있었다.


아마도 내 첫 책을 플레이리스트로 꾸미게 된 건 시대의 반영일 것이다.


이제는 거의 모든 음원 사이트에 둥지를 튼 음악 큐레이션은 따지고 보면 과거 테이프와 시디에 곡들을 복사해 나만의 베스트 앨범을 만들었던 일과 본질상 같다. 그것은 내 음악 취향의 확인, 정리였던 동시에 타인과 내 취향을 공유, 소통하기 위한 과정이기도 했다. 미국 음악 저널리스트 로브 셰필드가 사랑했던 사람과 추억을 담은 카세트테이프 스무 개를 소재로 쓴 에세이 '파란 하늘처럼 하드록처럼 사랑해'에서 볼 수 있듯 그런 플레이리스트는 당연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이 세상에 완전히 객관적인 플레이리스트란 있을 수 없으며, 있다면 그것은 거짓이거나 허구일 확률이 높다. 플레이리스트는 내 취향에 대한 타인의 공감 또는 그 반대만 확인시켜 줄 뿐, 그 자체에 옳고 그름이나 최적을 매길 수는 없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고른 모든 곡들은 대중음악 리스너로 살아온 지난 30여 년간 내가 TV나 라디오로 보고 들었던, 테이프와 CD와 LP로 소장했던, 이제는 파일과 스트리밍 또 유튜브로 감상하고 있는 것들에서 고르고 고른 결과다.


하지만 책 쓰기의 멍석이 될 선곡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일단 '32가지 상황별 플레이리스트'를 표방한 책인 만큼 선곡 주제를 비롯해 곡들의 발표 시기 및 장르의 균형, 심지어 뮤지션들의 성별까지 염두에 둬가며 곡을 골라야 했던 터라 작업은 시작부터 만만치 않았다. 가늠조차 힘들 방대한 그 후보군에서 플레이리스트를 정리해 나가며 때문에 나는 나름의 원칙을 세워야 했다. 그러지 않고선 내 앞에 펼쳐진 음악의 망망대해에서 나는 허우적대거나 길을 잃을 게 뻔해 보였기 때문이다. 더 담백하고 진실한 리스트를 뽑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했던 필연이었달까. 그중 첫 번째 원칙은 바로 곡들의 발표 시기 즉, 연대(年代)다. 나는 그 연대를 편집자와 상의 끝에 1980~2020년대까지로 정했다.


정확히는 80년대 중반 언저리부터인데 그건 배철수가 제1회 해변가요제에서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노래할 때 태어난 내가 대중음악을 듣고 괜찮다 별로다 분별하기 시작한 때가 그즈음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에선 60~70년대 아레사 프랭클린이나 사이먼 앤 가펑클, 이미자와 배호는 만날 수 없지만 퀸이나 김수철처럼 70년대와 80년대 이후 똑같이 맹활약한 사람들은 만날 수 있다. 또한 70년대 핑크 플로이드는 2000년대 데이비드 길모어의 솔로 곡으로, 60년대 비치 보이스는 브라이언 윌슨이 빠진 80년대 영화음악으로 잠시나마 마주할 수 있겠다. 그렇게 80년대 이후 2020년대 이전 사이 10년 단위로 고른 여섯 곡(국내 5곡, 해외 1곡)에는 따로 글을 달았다. 반면 여섯 곡 뒤에 붙는 ‘더 들어볼 노래’는 같은 기준과 비율로 12곡을 뽑되 거기엔 별도 설명을 곁들이지 않았다. 물론 설명하지 않았다 해서 선곡 때 공을 덜 들인 건 아니다. 그것들 역시 글을 덧붙인 곡들과 똑같이 찾고 분류해 이 리스트 저 리스트에 포함시켰다 뺐다를 거듭하며 나름 골머리를 앓았다. 이 노래들은 모두 첫 느낌이 좋았거나 즐겨 들었거나 지금도 한 번씩 꺼내 듣는 곡들이다. 내 취향과 당신의 취향이 만나는 지점은 순전히 우연일 것이지만 그 우연은 나에게 기쁨을 가져다줄 거라 믿는다. 될 수 있으면 저 곡들도 글로 푼 곡들과 꼭 함께 찾아 들어주시면 좋겠다.


‘더 들어볼 노래’에는 되도록 제목만으로 챕터 주제가 연상되거나 그에 어울릴 수 있는 곡들을 넣으려 했는데, 아무래도 음악은 글과 다르기에 예외도 허용했다. 가령 '책 읽을 때'나 '드라이브할 때', ‘요리할 때’나 ‘운동할 때’처럼 음악의 표면적 주제보다 그 안에 담긴 공통된 정서(예컨대 잔잔함, 질주감 같은)를 강조해야 할 땐 노랫말과 장르, 시대를 떠나 음악 본연의 느낌에 좀 더 집중해 곡을 골랐다. 가령 록 밴드 애쉬와 얼터너티브 알앤비 뮤지션 위켄드를 운전할 때 함께 들어도 좋은 이유가 그런 경우다. 둘 다 신나기 때문이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이 책의 리스트는 적어도 곡들의 역사성(중요성)이나 작품성만을 따져 만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곡들은 어디까지나 한정된 연대 속에서 장르와 성별의 균형 아래 주제별로 통제된다. 예컨대 NCT 127에겐 작품성에서나 역사성에서나 'Cherry Bomb'이 더 중요하겠지만 상황별 주제를 고려해야 하는 이 책엔 비교적 덜 알려진 '내일의 나에게'가 들어갔다. 또 아이유의 경우 많은 오리지널을 두고 굳이 리메이크인 '가을 아침'을 고른 건 어느 세대에겐 낯설 명곡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도 독창적인 해석을 가해 알린 일을 짚고 넘어가기 위해 넣었다.


무슨 얘기냐면 이 책에서 모든 뮤지션은 되도록 한 번만 다루려 했다는 뜻이다. 단, 특정 팀에 있다 솔로 활동에서도 두각을 나타냈거나, 남을 돕기 위해 참여(피처링)한 경우 중복을 한 차례 정도 허용한다는 전제에서 그렇다. 예컨대 들국화의 전인권, 최성원이나 넥스트의 신해철, 롤러코스터의 조원선, 자우림의 김윤아는 밴드의 노래 외 자신의 솔로 곡들로도 한 번 더 다뤄질 여지를 갖는 것이다. 또 해바라기의 유익종은 자신이 노래를 부른 이두헌(다섯손가락)의 곡에서 재차 얼굴을 비칠 것이고, 이미 자신의 곡으로 다뤄진 김현식 역시 강인원의 ‘비 오는 날의 수채화’에 참여한 사람으로 다시 언급될 것이다. 처음엔 이를 인물 선택의 균형 차원에서 잘한 선택이라 여겼는데 리스트가 차오를수록 이 약속은 적지 않은 혼돈, 압박이 되어 나를 짓눌렀다. 사실 돌이켜보면 조금 무모하긴 했다. 어떻게 BTS나 마이클 잭슨의 곡들에서 한 곡만 고를 수 있으리라 생각한 건지. 그럼에도 나는 그렇게 했다. 원칙이었기 때문이다.


끝으로 선곡에서 또 하나 중요하게 여긴 건 기존 '~명반'이나 '~레전드' 기획에서 단골처럼 다뤄온 뮤지션들 곡들은 되도록 배제한 일이다. 그들은 웬만하면 재즈나 일렉트로닉, 힙합 등 내가 쓸 수 있는 것보다 쓸 수 없는 게 더 많은 장르 곡들과 함께 '더 들어볼 노래'에 주로 넣었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각자가 따로 책 한 권씩을 할애해 살펴봐야 할 사람들이므로 깊이 있는 추가 취재 없이, 그저 돌고 도는 세간의 정보에 내 느낌 몇 자 더 끼적여봤자 헛된 일이라 여겨 그랬다. 그동안 너무 다뤘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다뤄질 인물들에 굳이 이런 책에서까지 말을 보탤 필요는 없으리라. 수전 손택의 말마따나 범부가 천재에게 바치는 경의 대신 예술을 다루기 쉽고 안락한 것으로 만드는 '해석'만을 나는 이 책에서 고집했다는 뜻이다. 다만, 그럼에도 여기에서 우연히 언급된 그들(또는 그들의 노래들)은 엄격한 비평적 관점의 필요에 따른 것이 아닌, 어디까지나 리스트를 만든 내 취향이나 특정 주제에 부합하는 것으로만 엮었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요컨대 이 책에 흐르는 곡들은(아주 일부를 빼곤) 보통 사람들이 잘 모를 만한 것, 뻔하지 않은 곡들과는 거리가 있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일지 모른다. 그동안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고 나 역시 자주 꺼내 듣는 곡, 무엇보다 '할 이야기가 있는' 곡들. 그런 뻔하고 만만한 곡들을 골라 함께 들으며 이야기하는 그런 시간을 나는 책을 통해 만들어보고 싶었다. 따라서 음악을 진지한 분석 대상으로 보고 자신의 취향을 권력이나 계급 마냥 인식하는 마니아나 업계 전문가들은 글쓴이가 지향하는 독자층과 거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런 글이나 책은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쓰겠지만 여기선 아니다. 지금은 좁고 경직되게, 날을 세워 쓰기보단 넓게 듣고 쉽게 써야 할 시간이다. 부디 이 곡들에서 내가 받은 감동, 기쁨, 설렘이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전해졌으면 싶고, 이 플레이리스트가 내 것이면서 동시에 이 책을 읽는 모두의 플레이리스트가 됐으면 좋겠다.


- '작가의 말'에서 -



표면적으론 플레이리스트 콘셉트지만 알맹이는 정보와 비평을 겸한 책이길 바랐다.

부디 읽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다가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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