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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Dec 15. 2022

제프 포카로

Toto


그런 사람이 있다. 생각도 태도도 성품도 군더더기가 없어 완벽해 보이는. 하지만 그런 사람은 신뢰와 호감은 얻을지언정 인간미가 없다는 오해를  수도 있다. 제프 포카로는  간격을 메운 드러밍을 들려준 사람이다. 슬릭 (Slick Back) 머리를  학자 같은 외모. 그는 철학자가 사상을 사유하듯 리듬을 사유했다. 그리고 그렇게 사유된 비트는 절제된 기교에 올라 제프의 플레이를 다른 플레이어들과 분명히 차별화시켰다. 무엇보다 그의 프레이즈는 인간미도 갖췄다. 부드럽고 아늑했다. 완벽했던 것이다.


재즈 드러머였던 아버지 덕분에 일찍부터 드럼과 친하게 지낸 제프는 엘빈 존스, 필리 조 존스, 아트 블래키 같은 교과서들은 물론 짐 켈트너, 짐 고든에게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의 연주가 장르 지향을 지양하는 '퓨전'이란 스타일로 팝, 록, 재즈를 뭉뚱그려 일가를 이룰 수 있었던 건 다 저런 가리지 않은 드러머 취향 덕분이다.


제프 포카로의 리듬 노트와 톤은 잘 닦은 유리 같다. 투명하고 명징하다. 그는 리듬과 싸우지 않고 리듬을 설득했다. 뭉친 리듬은 풀어주고 부푼 리듬은 가라앉힌다. 경쾌하고 부드러운 제프의 리듬 라인은 그래서 감성과 이성이 결부된 곳이었다. 그는 미술관에 내건 작품처럼 사람들이 리듬을 감상할 수 있도록 연주했다. 점잖고 사려 깊고 세련된 그 느낌은 차라리 귀족적이기까지 했다. 토토의 'Georgy Porgy' 같은 곡을 들어보면 이 말 뜻을 대번에 알 수 있다.


1971년부터 본격 세션 활동을 시작한 제프의 그 독보적인 솜씨는 세련된 재즈 팝 그루브를 원하는 사람들로부터 무수한 러브콜을 받았다. 거기엔 마돈나와 도나 섬머, 핑크 플로이드와 폴 맥카트니, 나탈리 콜과 셀린 디온, 다이애나 로스 등이 포함됐고 마이클 잭슨의 'Beat It'과 'The Girl Is Mine', 'Heal The World'도 그 안에 엮였다. 때론 세르지오 멘데스와 삼바 리듬을 탐닉하고 마이클 볼튼이 커버한 'When A Man Loves A Woman', 리오 세이어의 'When I Need You'에서 결벽에 가까운 톤과 플레이를 시전 하기도 했으며, 리처드 막스의 'Hands In Your Pocket'이나 셰어의 'Could've Been You'처럼 쨍쨍한 록 드러밍도 들려주었다. 물론 기타리스트 리 릿나워, 래리 칼튼, 에밀리 렘러(Emily Remler)의 앨범들에선 자신의 장기인 퓨전 재즈의 말끔한 그루브를 뽐내기도 했다.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마지막 정규 앨범에도 그런 제프는 함께 했다. 팀 동료였던 스티브 루카서의 말처럼 70~80년대의 제프 포카로는 그야말로 "모두의 드러머"였다.


제프의 연주는 기본적으로 하이햇 악센트에 따른 비트의 다이내믹을 강조한다. 스틸리 댄의 'Night By Night' 같은 곡에서 그 습관을 들을 수 있는데, 토토의 'You Are The Flower'는 그 다이내믹을 극단으로 몰아간 순간이었다. 리듬의 노출과 은닉을 동전의 앞뒤에 새긴 듯한 이 팽팽한 긴장감은 토미 볼린의 'Teaser'에서 하이햇의 여닫기로 리듬을 쪼개는 과정을 거쳐서도 미련 없이 전시된다.


'Rosanna'의 드러밍은 뭇 드럼 키드들에게 하프타임 셔플 리듬의 바이블이 되어버렸다.


제프는 곡 안에서 다양한 리듬 패턴을 다루는 것도 즐긴 편이다. 가령 레 듀덱(Les Dudek)의 'Don't Stop Now'에서 폴리 리듬과 하이햇으로 16비트를 다루는 솜씨는 그 좋은 예다. 잭슨 브라운의 'Daddy's Tune'에서 슬로 고고로 가다 셔플 리듬으로 바뀌는 극적 템포 체인지도 그랬고, 조 카커의 'Civilized Man'의 8비트 드러밍에 고스트 노트를 섞어 상쾌한 긴장을 우려낸 것이나 토토 시절 'I'll Supply The Love', 'Africa', 'Mushanga', 'White Sister' 같은 사례들도 모두 리듬의 응용, 교배, 변칙을 즐겼던 제프의 성향을 대변하는 곡들로 팬들 기억에 남아있다.


얘기가 나왔으니 고스트 노트를 짚고 가지 않을 수 없다. 제프의 연주에서 고스트 노트는 그의 또 다른 특징인 정확성과 완전히 다른 뉘앙스로 제프의 플레이를 설명해주는 테크닉으로 'These Chains'나 'Rosanna' 같은 곡에서 그 기교는 매섭게 적용됐다. 특히 토토의 대표작인 'IV'에 수록돼 토토를 대표하는 곡이 된 'Rosanna'는 제프 포카로라는 드러머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곡으로, 아마추어 이상의 드러머를 지향하는 이들에겐 하프타임 셔플 리듬의 바이블 내지는 반드시 한 번은 거쳐야 할 관문 같은 것으로 자리매김해 있다. 제프가 흠모한 또 한 명의 드러머 버나드 퍼디가 드럼계에 선물한 리듬인 하프타임 셔플은 스틸리 댄의 'Home At Last'와 레드 제플린의 'Fool In The Rain'을 거쳐 보 디들리 비트(Bo Diddley Beat)가 장착된 베이스 드럼을 타고 'Rosanna'의 감성에 성공적으로 안착해 제프 포카로라는 이름을 세계 팝록/재즈 팬들 뇌리 깊숙한 곳에 새겼다. 고꾸라질 듯 하면서도 중심을 정확히 잡아야 하는 셔플 리듬은 이후 고스트 노트와 더불어 '압도적 기교로 듣기 쉬운 연주를 펼치는 드러머'인 제프의 드럼 철학을 지탱하는 개념이 되었다.


제프 포카로는 자신의 시그니처를 지키면서도 협업 뮤지션들의 개성 역시 부각해준 이타적 드러머였다. 조지 벤슨의 'Lady Love Me (One More Time)'에서 들을 수 있듯 그러한 제프는 16비트를 쳐도 더블 핸드보단 싱글 핸드를 선호했는데, 이유는 싱글 핸드로서만 맛볼 수 있는 손과 손목의 부드러운 연결감 때문이었다. 벨벳 같은 드럼 톤에 닿아 보즈 스캑스의 'JoJo', 마이클 맥도널드의 'Any Foolish Thing', 알 자로의 'Mornin''을 낳은 그 전대미문의 감각은 예의 편안한 압도감으로 70~80년대 재즈와 팝, 팝과 록, 록과 재즈의 가교 역할을 했다. 그것은 퓨전 드러머 비니 콜라이우타의 말처럼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진정 제프 포카로만이 전해줄 수 있는 경지요 느낌(It's A Feeling!)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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