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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Oct 20. 2022

신스팝으로 돛을 올린 찬혁의 솔로 항해


팀에 있던 뮤지션이 혼자만의 무엇을 궁리할 때 그 창작물은 온전히 개인을 향한다. 왜냐하면 팀에 있을 땐 팀 색깔과 그에 어울리는 메시지, 멤버 간 조화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하지만 솔로 프로젝트에서 그 제약은 현저히 희미해지기 때문이다. 홀로서기를 결심한 이상 그 음악가는 이제 천천히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그동안 해온 생각들과 겪은 일들을 곰곰이 반추하게 된다. 악뮤(AKMU)의 이찬혁도 마찬가지다.


작은 단서가 있거나 타인이 공감해주리란 확신이 들면 노래든 그림이든 자신만의 예술 방식으로 속내를 표현한다는 이찬혁은 그 결과물에 자기를 진정 녹여낼 수 있는지를 창작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역설과 자조적 뉘앙스의 제목을 단 데뷔 8년 만의 솔로 앨범 'Error(오차, 과실)'에서 그가 확보한 단서는 죽음이다. 구체적으론 '당장 내일 찾아올 죽음'이다. 악뮤의 근작에서 자이언티가 피처링한 'BENCH'의 가사에 담긴 조금은 경솔했던 사랑과 자유의 너스레에서 출발한 이 조마조마한 생각을 찬혁 본인은 (음악적) 초심을 찾는 여정이자 20대 후반 자기 삶의 방향성을 찾기 위한 것으로 설정했다. 이는 마치 그림책 '에일리언'에서 자신을 부모이자 교육자로 상정한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찬혁은 거기에 과거의 후회, 현재의 모순, 미래의 욕망을 모두 담으리라 마음먹었다. 그 안에선 때때로 종교적 구원의 숨결마저 느껴진다.


'Error'는 그래서 죽음과 후회라는 얼굴로 모순과 욕망에 손짓하는 콘셉트 앨범에 가깝다. 그 정황은 트랙 여기저기에서 피어나고 증명된다. 가령 악뮤 때 부른 이별 발라드의 '주마등'이 삶을 향한 집착을 담은 '파노라마'로 바뀌는 부분이 그렇다. 주마등과 파노라마는 사실 같은 말임에도 노래의 주제가 사랑이냐 삶이냐에서 악뮤와 찬혁은 하나인 듯 둘로 나뉜다. 또한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무드를 전하는 'Time! Stop!'은 죽음의 순간을 늦추고 싶은 개인의 절박함이며, 언젠가 찬혁이 유재하의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을 부른 순간을 닮은 '뭐가'는 그럼에도 닥치고 만 마지막 날의 후회다. 생애 마지막 날이라는 작품 테마에 조용히 부합하는 청하의 피처링 곡 '마지막 인사'도, 바쁘게 사느라 소홀히 한 통화들에 보내는 '부재중 통화'도 물론 내일 닥칠 죽음 앞에선 모두 소중한 것들이다. 이 세트로 포장된 우울한 기운이 성공을 향한 진심을 담은 어쿠스틱 팝 넘버 '내 꿈의 성'과 대비되면서 찬혁의 첫 솔로작은 온통 후회의 냉기와 욕망의 열기로 뒤척인다.



이 후회와 욕망의 온기를 식지 않게 데워줄 메인 장르로 찬혁은 세계적 대세이기도 한 레트로 신스팝을 택했다(앨범 곳곳에 스민 종교적 감성을 감안할 땐 신(神)스팝이라 해도 무방해 보인다). 더 정확히는 그 대세의 주인공인 위켄드(The Weeknd)를 의식한 작법이다. SF 영화의 스틸컷처럼 보이는 재킷 아트워크를 표현한 듯한 노랫말("빛이 확 하는데 펑 하더니 superman이 되었어요")을 가진 첫 곡 '목격담'은 비록 영국 록 밴드 뮤즈(Muse)를 닮은 일렉트로닉 텍스처를 앞세웠지만 이어지는 'Siren'과 '파노라마', 'Time! Stop!'과 '당장 널 만나러 가지 않으면' 등에선 영락없는 위켄드의 그루브가 무차별로 작렬한다. 차이라면 마이클 잭슨, 프린스에 영향받은 위켄드와 달리 찬혁의 보컬 스타일은 자이언티에 더 가까운 정도일까. 그러고 보니 'BENCH'라는 악뮤의 곡은 찬혁의 다음 에피소드(next episode)를 위한 비공식 티저 예고편이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든다.


찬혁은 '악뮤보다 나은 결과물'을 자신의 솔로 데뷔를 위한 명분으로 삼았다. 스스로는 10년을 훌쩍 넘겨 주어질 명분이라 생각했지만 때는 생각보다 일찍 왔다. 다 대중적 캐릭터로서 존재감과 노래에 대한 감을 익힌 덕에 감행할 수 있던 도전이었다. 악뮤의 이찬혁 대신 인간 이찬혁을 내세운, 그러니까 "다시 태어난 이찬혁"의 이번 음악을 들으며 나는 쿠마자와 나오토 감독의 '무지개 여신'이라는 영화를 계속 떠올렸다. 영화감독을 꿈꾸다 비행기 사고로 최후를 맞는 작품의 주인공 아오이는 학창 시절 단편 영화 한 편을 만든다. 단편의 제목은 '지구 최후의 날'. 지구 멸망을 며칠 앞둔 주인공이 사랑했던 사람의 부재에 전전긍긍하다 끝내 연인과 마지막 키스를 한 뒤 죽음을 맞는다는 내용인데, 그 영화의 마지막 대사가 "끝난 건 나 혼자 뿐이었다"였다. 즉 '지구 최후의 날'은 아오이가 자신의 미래를 예견한 영화였고, 제목에서 '지구'란 결국 홀로 끝나버릴 아오이 자신의 은유였다. 일렁이는 보코더를 쓰며 이승에서 마지막 날과 저승에서 첫날의 아스라한 경계를 묘사한 'A Day'와 '장례희망'('장래'희망이 아니다)에서 내가 '무지개 여신'을 느낀 건 그래서였다.


프랑스 사상가 모리스 리즐링은 말했다. 인생은 끝내 우리 모두를 철학자로 만든다고. 이찬혁20여년 지난 인생에 비춰 자신의 음악에 철학을 가져왔다. 그것도 흔히 가장 난해한 철학적 질문이라 일컫는 죽음을.



*이 글은 ize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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