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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Oct 24. 2022

위로와 공감의 팝을 들고 온 허클베리핀


허클베리핀의 음악은 거칠었다. 고독이 담보된 엄숙한 활기에 휩싸인 그것은 또한 어둡고 쓸쓸했다. 마크 트웨인이 남긴 미국 현대문학의 금자탑 속 주인공이 1990년대 대한민국 모던록을 만났을 때 음악은 울음인지 포효인지 모를 시어(詩語)들을 벗 삼아 비뚤어진 세상을 서럽게 파고들었다. 세상의 부조리에 자주 화가 나 있던 그들 음악은 그렇다면 우린 그 부조리에 맞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 질문하고 사유했다. 그것은 거의 경험의 재구성에 가까웠는데, 하물며 만들어낸 듯 보이는 상상의 영역조차 이들 음악을 통과할 땐 일상의 생생함을 간직했던 터였다. 한때 학교 생활이 힘들 만큼 우울한 아이였던 팀의 메인 송라이터 이기용이 외삼촌에게 건네받은 통기타로 처음 음악을 만난 이야기는 그래서 허클베리핀 음악의 기원이다. 신보에 있는, "뒤틀린 곳에서 태어나 아무도 모르게 나만의 길을 갔다"는 'Tempest'의 가사가 허클베리핀, 나아가 이기용의 작가적 고백으로 들리는 건 그래서다.


어느덧 일곱 번째 작품. 3 반에   격이었으니 다작은 아니다. 중간중간 이기용은 솔로 프로젝트도 병행했지만 그건 엄연히 스왈로우(Swallow) 역사다. 그렇게 밴드 결성 25주년을 맞아  7집에서 이기용과 멤버들은 지난 수년  힘든 시기를 버티게 해준 하늘과 바다, 길을 음미한 전작을 지나 다시 힘겹게 살아가는  위의 사람('' 들어보고) 지구의 환경('금성' 들어보자)으로 시선을 돌렸다. 실제 '의 빛'라는 조금은 환상적인 앨범 제목은  걷히지 않은 코로나 팬데믹의 먹구름 아래 여전히 신음 중인 사람들에게 건네는 밴드 측의 위로와 공감이다. 한마디로 허클베리핀 7집은 좌절한 인간을 위한 빛의 위로, 아파하는 환경을 위한 연대의 호소쯤으로 요약해볼  있다. 6 트랙의 제목 '아래로' 때문에 절망의 물리적 방향이 아닌 희망의 정서적 반향에  가까워 보인다. 지금 허클베리핀의 모험은 (anger) 아닌 조화(harmony)에서 이뤄지고 있다.



작품이 지닌 저 인간적인 면모, 공동체적 질감은 두 가지 상반된 무드에서 비롯된다. 하나는 벅찬 감정의 소용돌이로, 또 하나는 깊이 가라앉은 심상의 무늬로. 가령 친구가 팔에 입은 화상이 새를 닮은 것에서 영감을 얻은 '적도 검은 새'의 미니멀 기타 리프가 디스코 비트를 만나 수줍게 반전하는 장면은 전자와 어울린다. 반면 비움을 추구한 6집의 창법으로 이소영과 이기용이 '밤'과 '잠'을 나눠 부르는 7집의 종반부는 후자에 부합한다. 이기용이 언젠가 7집의 포인트가 될 것이라 한 'Sunlight'는 아마 그 중간 어디이리라. 그리움이 첨부되고 행복이 결부되어 있는 이 여백의 미학은 밴드 허클베리핀이 도달한 음악적 현재이기도 하다.


나는 방금 '밴드' 허클베리핀이라고 썼다. '록밴드' 허클베리핀이 아니다. 2022년의 이기용은 더는 자신의 밴드를 록의 범주에만 가둘 생각이 없다. 가령 전하려는 메시지에서부터 온통 빛과 햇살로 가득한 7집을 위해 그는 두아 리파와 카디 비, 빌리 아일리시와 테일러 스위프트, 위켄드를 연구했다. 라디오헤드와 마룬파이브, 콜드플레이와 뮤즈가 그랬듯 이기용도 록의 한계를 한계로서 인정한 것이다. 세간이 경계 지어온 일렉트로닉과 일렉트릭, 어쿠스틱 음악의 경계를 지워내고 팝과 힙합에도 얼마든지 마음을 열겠단 의지를 천명한 이기용의 이번 행보는 5집과 6집을 거쳐오며 내성이 생긴 사람들에겐 밴드가 거쳐야 할 또 한 차례 변화, 적응 내지는 진화로 받아들여질 만하다.


이기용은 시간과 반복을 견디는 음악, 그러니까 언제 들어도 오래 들어도 질리지 않는 음악을 좋은 음악이라고 했다. 내심 자신들의 음악도 그런 것이 되길 바랄 이기용은 때문에 늘 "아름다움의 기준에 충실한 음악"을 들려주려 노력해왔다. 외롭고 힘든 사람들의 손을 잡고 빛으로 나아가는 음악을 담은 허클베리핀 7집에서 그는 어느 정도 그걸 이룬 것으로 보인다. 좋은 음악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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