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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Nov 10. 2022

재즈 보컬리스트 김주환의 10번째 노래 비평

Kim Ju Hwan & His Trio [Candy]

냇 킹 콜과 재즈는 발아하는 봄보다 익어가는 가을에 더 어울린다.


대중음악에서 스탠더드란 후세 음악가들을 통해 다루어져야 하거나 다뤄질 법한, 또는 이미 쉴 새 없이 다뤄져 온 '표준'을 뜻한다. 끊임없는 재해석의 대상이란 면에서 그것은 클래식과 같고, 만만한 대중성 면에서 스탠더드는 말 그대로 다수를 위한 음악, 팝이다. 재즈 보컬리스트 겸 프로듀서 김주환은 자신의 재해석 목록에 올려둔 그런 스탠더드를 꾸준히 음반으로 발표해왔다. 11년 전 로즈메리 클루니로 시작한 그의 빅피처는 리처드 로저스와 콜 포터&해롤드 알렌 송북을 지나 영화 음악, 나아가 자신이 좋아했던 팝 뮤직에까지 뻗었다. 그것은 한 재즈 뮤지션의 스윙에 대한 헌정, 재즈 팝 또는 재즈와 팝을 향한 경의, 사랑이었고 스스로의 음악적 복습이자 보컬 연구자로서 써낸 목소리 논문, 노래의 비평이었다.


그런 그가 열 번째 앨범에서 선택한 주제는 냇 킹 콜이다. 정확히는 냇 킹 콜과 그의 트리오(Nat King Cole Trio)다. 단, 냇의 지문 같은 올타임 레퍼토리 대신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냇 킹 콜을 조명하기로 김주환은 마음먹었다. 얘기인즉슨 김주환은 이번 앨범에서 드럼과 'Unforgettable'이 없는 냇 킹 콜, 그러니까 자신이 20대 후반 그리고 2020년 즈음 즐겨 들은 1940년대 중반~50년대 초반까지 냇 킹 콜을(상큼 발랄한 첫 곡 'Frim Fram Sauce'가 정확히 1945년에 녹음한 곡이다) 불러보겠다는 의지다. 앨범 제목은 'Candy'. 수록된 노래 제목이기도 한 그것은 단어 자체가 머금은 달콤함을 넘어 노랫말에도 등장하는 댄디(Dandy)함까지 머금은, 냇 킹 콜 트리오 음악을 묘사하는 단 하나 어휘다.



냇 킹 콜 트리오 하면 고급스러운 턱시도와 교양 있는 대화로 예열된 살롱이 떠오른다. 거기에 적당한 취기, 여유로운 미소, 와인 잔을 들어 올리며 날리는 점잖은 윙크 정도가 가미되면 이제 음악이 흐를 준비를 마치는 식이다. 냇 킹 콜의 노래는 애절한 발라드 'For All We Know'와 완강한 베이스를 피아노가 부드럽게 설득하는 'When I Grow Too Old To Dream' 마냥 나에겐 늘 다정한 달빛, 쓸쓸한 햇살 같은 음악이다. 'Sweet Lorraine'의 가사를 빌리자면 "여름 하늘보다 더 밝은" 선명도가 거기엔 있다. 유리알처럼 굴러가는 피아노, 베이스와 기타가 마련한 스타일리시 그루브. 냇 킹 콜은 재즈를 모르고 재즈를 꺼려하는 사람들이 재즈의 본질을, 장르의 내막을 쉽고 즐거운 팝처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 준 사람이었다.


김주환은 그런 냇 킹 콜과 그의 트리오를 맞아 믹싱과 마스터링을 포함한 사운드 디자인만 몇 달에 걸쳐 했다. 여섯 차례 지우고 다시 부른 보컬 녹음은 앨범의 전체 어레인지를 맡은 준 스미스(기타)와 피아니스트 강재훈, 베이시스트 박진교의 외유내강형 백업에 힘입어 작전처럼 진행됐고, 그런 사운드 세공에 대한 김주환의 집착은 결국 그만이 도달할 수 있는 소리의 미장센으로 확장됐다. '집착'이란 말에 오해할 수 있는데 소리, 노래를 향한 김주환의 완벽주의와 강박은 저 단어가 가진 부정의 뉘앙스와는 무관하다. 그것은 그저 노력의 다른 이름이요, 노력 끝 성취의 동의어일 뿐 다른 뜻은 사족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편하겠다. 앨범 'Candy' 똑같이 불러야 가치를 갖는 '히든싱어'보단 원곡의 가치를 존중하며 다른 편곡을 지향하는 '복면가왕' 쪽에   가깝다고. 원곡보다 느린 템포로 원곡보다  호흡을 전주에 새긴 'Too Marvelous For Words' 대표하듯 그런 김주환의 세심한 프로듀싱엔 때문에 사랑스러운 스릴로 한가득이다. 마치 흑백 영화의 거친 화질을 4K 해상도로 즐기는 기분이랄까.  나은 결과물을 위해 예정했던  대신  좋은 만추에 발매한  또한 얼마나 다행스러운 우연인지.   콜과 재즈는 발아하는 봄보단 익어가는 가을에 훨씬  어울리지 않는가.


평론가로서 나는 한때 많이 듣는 것에 집착했다. 싫든 좋든 장르 구분 없이 일단 들어두면 나중에 어떻게든 써먹을 때가 올 거라며, 듣는 양이 글의 질을 담보하리라 생각한 것이다. 아니었다. 글의 질은 감상의 넓이보단 그것의 깊이에서 나왔다. 천 가지 발차기를 할 줄 아는 사람보다 한 가지 발차기를 천 번 연마한 사람이 더 무서웠다는 이소룡의 말처럼, 나 역시 100장의 음반을 듣는 것보다 한 음반을 100번 들을 때 내가 원하는 퀄리티의 글을 써낼 수 있다는 걸 뒤늦게나마 알게 된 것이다. 10년에 10장. 그럼에도 아직 멀었다는 듯 향후 스탠더드 400곡 이상을 더 녹음하고 싶다는 김주환은 거의 여생을 이 일에 바치려는 듯 보인다. 그리고 그런 김주환과 나는 어쩌면 같은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미술 평론가 로버트 휴즈의 말마따나 "죽은 자의 불멸의 위원회로부터 심사를 받는 예술가의 모든 행위"를, 즉 김주환은 흘러간 주옥같은 스탠더드를, 나는 과거 단순 감상에만 그쳤던 뻔하지만 평생 곁에 둘 명반/명인들을 추적하고 이해해 비평하는 것이다. 그는 노래로 나는 글로. 냇 킹 콜은 이번에 그 둘을 만나게 해주었다.



*이 글은 <마이데일리>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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