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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Jan 06. 2023

한국형 시티팝의 시작이자 완성, 김현철


오랜만에라는 노래가 있다. 싱어송라이터  프로듀서인 김현철의 1989 데뷔작을 ‘춘천 가는 기차 함께 대표한 곡이다. 그로부터 29년이 지난 2018 9.  숨은 명곡을 1993년생 가수 죠지가 리메이크 한다. “시대를 앞서간 숨은 음악의 재조명 기치로  프로젝트 ‘디깅클럽서울  번째 결과물이었다. 리메이크 버전은 나오자마자 젊은 세대의 구체적인 반응을 끌어냈고 죠지는 내친김에 자신의 공연에 대선배를 게스트로 초대했다. 김현철은 거기에서 DJ 타이거 디스코를 만나 그가 일하는 채널1969라는 클럽 무대에까지 서게 되는데, 클럽에선 100 가까운 MZ세대들이 김현철의  다른 히트곡 ‘ 그래 목청껏 따라 부르며  주인을 깜짝 놀라게 했다. 김현철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시티팝(City Pop) 거장이 되어 있었다. 그는 죠지의 리메이크를 계기로 한동안 접었던 음악을 다시 꺼내  결심을 하게 된다. 그의  번째 앨범 <> 13 만에 대중에게 공개된 배경이다.



바야흐로 뉴트로의 시대. 뉴트로(Newtro)란 현세대가 옛것(Retro)에서 새로운(New) 매력을 발견해내고 그걸 음미하는 문화 현상을 뜻한다. 그 옛날이란 다름 아닌 90년대와 2000년대다. 한마디로 X세대에겐 추억을 선물하고 MZ세대에겐 재미를 안기는 것이 뉴트로의 정체, 가치인 셈이다. 패션계를 중심으로 ‘Y2K 감성’으로도 불리는 이 유행의 역습은 방송, 예술 등 주요 콘텐츠를 만드는 주축 세대가 90년대와 2000년대에 10~20대를 보냈기 때문에 부상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개인주의와 소비주의가 맞물린 물질적 풍요 속에서 ‘글로벌 문화’라는 것을 처음 제대로 맛본 그들에게 젊음은 영원할 것처럼 보였을 일. 하지만 그들도 어느새 나이를 먹었고, 그럼에도 그 시절을 잊지 못해 자신들의 방식으로 젊음을 소환한 것이 지금 대한민국의 뉴트로 현상인 것이다.


 글은 오운문화재단 매거진 <살맛나는 세상>에도 편집본으로 실렸습니다.


김현철을 되살린 시티팝은 2010년대 후반 이후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그 뉴트로를 대표하는 말이 됐다. 물론 시티팝은 장르는 아니다. 시티팝이란 보통은 70년대에서 출발해 80년대에 전성기를 누리고 90년대까지 전해진 제이팝의 음악적 경향을 뜻한다. 영미권의 신스팝, 퓨전 재즈, 소프트 팝/록, 펑크(Funk) 요소를 두루 머금은 그것은 음악 자체가 도시의 화려함 내지는 도시인의 쓸쓸함을 껴안았던 탓에 결국 ‘도시의 팝’이라는 느슨한 개념으로 정착해 오늘날에 이르렀다.


그리고 젊음. 시티팝은 무엇보다 청춘의 음악이었다. 러시아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문장을 빌리면 시티팝 또는 김현철의 음악은 “우리가 젊을 때만 만날 수 있는 그런” 음악이었다. 젊음은 어느 시대에나 있으므로, 또 도시는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삶의 배경이기에 30년 전 김현철을 받아들인 청년들과 30년 뒤 김현철을 받아들인 청년들은 그래서 본질상 같다. 펑키한 피아노 솔로와 포근한 색소폰 솔로, 쉽고 다정한 보컬 멜로디와 일상적인 구어체 가사는 그 장르 아닌 장르의 파릇한 속살이었다. 어떤날과 래리 칼튼, 데이비드 포스터와 마츠시타 마코토를 손에 쥔 21살의 김현철은 그렇게 21세기 대한민국 청년들의 감성 레이다를 통해 조용히 ‘발견’됐다.



추천 곡 & 앨범     



'계절은 이렇게 내리네' (1988, 동아기획)




들국화의 최성원이 기획한 옴니버스 음반 <우리노래전시회 III>에는 김현철의 곡이 처음 공식 수록돼 의미가 있다. 10대 때 김수철의 공연을 보러 갔다 게스트로 나온 어떤날 무대에 더 마음을 빼앗긴 김현철. 그는 자신에게 감동을 준 어떤날의 조동익을 통해 최성원을 소개받았고, 최성원은 박학기라는 가수의 사정을 말하며 김현철에게 곡 하나를 받아주었으니 그 노래가 바로 이 앨범에 실린 ‘계절은 이렇게 내리네’였다. 여리고 여운이 있는 이 말쑥한 발라드는 이듬해 나온 박학기의 데뷔 앨범에도 실렸는데, 김현철만의 이 독보적 감성은 이후 장필순, 이소라의 작품들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김현철 Vol.1> (1989, 동아기획)




김현철을 대표하는 앨범이자 한국 대중음악이 풋풋한 80년대에서 세련된 90년대로 장면 전환하는데 크게 일조한 작품이다. 조동익에게 배운 ‘쓸쓸하면서 따뜻한 감성’을 AOR(Adult Oriented Rock), 퓨전 재즈, 펑크 팝에 녹여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찾은 김현철에게 1집은 그야말로 시작이자 완성이었다. 왜냐하면 이후 김현철의 음악은 이 앨범에서 빼고 더하거나 이 앨범을 비틀고 진화시킨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바람 같은 ‘오랜만에’, 나른한 ‘춘천 가는 기차’와 ‘아침향기’, 그리운 ‘동네’ 등이 히트했다. 이후 뇌혈전을 앓다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큰 위기를 맞지만 김현철은 3년 뒤 많은 마니아 팬들에게 그의 양대 명반으로 통하는 2집을 발표하며 멈출 뻔한 자신의 음악 여행을 이어간다.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 OST> (1994, 동아기획)




김현철과 이현승 감독은 ‘도회적 모던’이라는 공통분모를 안고 총 세 편의 영화를 함께 작업했다. 강수연, 안성기가 주연한 <그대 안의 블루>(1993)가 그 시작이었고 이정재, 전지현이 함께 나온 <시월애>(2000)가 그 끝이었다.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는 둘 사이에 선보인, 문성근과 채시라가 주연을 맡은 페미니즘 영화로 알려져 있다. 아프리카 케냐에서 촬영했고 채시라의 스크린 데뷔작이기도 했던 이 영화에 김현철은 문명(네온)으로 잉태된 첨단 사운드를 자연(노을)의 품에 안기는 음악을 들려주었다. 이정식(색소폰)과 이주환(트럼펫), 손진태(기타)와 한충완(건반), 전태관(드럼)과 이태윤(베이스)이 함께 해 가능했다.   


  

<유재하를 추모하는 앨범 1987 다시 돌아온 그대위해> (1997, 서울음반)




이소라는 자신의 1집에 “나도 모르는  목소리를 찾아내  김현철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남겼다. 김현철은 활동 초기  인터뷰에서 “가수가 되고 싶은  아니라 가수들이 노래할  있도록 뒤에서 돕는 프로듀서가 되고 싶다 말한 적이 있다. 그런 김현철이 가수가 아닌 프로듀서로서 정점을 찍은 작업이 바로  추모 앨범이다. 유재하에게 직간접으로 영향받은 국내 정상급 음악가들이 그의 10주기를 맞아 내놓은  작품은 고인이 생전에 남긴 유일한 정규 앨범 수록곡들을 비롯해 한영애의 ‘비애’, 이문세의 ‘그대와 영원히까지 모두 챙겨 일찍 우리 곁을 떠난 음악 천재를 다채로운 호흡으로 음미했다. 이후 김현철은 8 <...그리고 김현철>, 프로젝트 앨범 <Brush> 등을 통해 프로듀서로서 자신의 역량을 계속 펼쳐나간다.



<키즈팝 1, 2> (2004/2006, T Entertainment/Lojit, 서울음반)




키즈팝은 뜻 그대로 ‘아이들의 팝’이다. 어린이들이 불러도 좋을, 어린이들이 불러야 좋을 가요다. 하지만 키즈팝은 동요와는 다르다. 형식적 한계를 안고 있는 동요와 달리 김현철의 키즈팝은 그런 틀에서 자유로운 ‘팝’의 현장으로 아이들을 데려간다. 물론 아이들의 팝이라 해서 어른들이 못 들을 것도 아니다. 예민의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와 여행스케치의 ‘별이 진다네’가 그랬듯. 김현철은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이라는 시즌송을 남긴 이 프로젝트를 코로나19가 끝나면 다시 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번엔 김태원, 윤도현 등이 함께 한다고 하니 기대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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