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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Jan 05. 2023

이란성 쌍둥이들의 치열한 경쟁?

<불타는 트롯맨> vs <미스터트롯2-새로운 전설의 시작>


트로트 세대가 달라졌다. 부르는 세대가 달라졌다는 뜻이다. 젊은 팬들도 물론 있겠지만 아무래도 트로트를 즐기는 사람은 세월 따라 중장년층이 압도적이다. 하지만 그 트로트를 노래하기 위해 마이크를 잡는 세대는 계속 어려지고 있다. 그러니까 젊을 때부터 트로트를 좋아하기 시작해 나이가 들어서도 트로트를 좋아하고 있는 지금 중장년층과 달리 조금은 다른 동기와 목적으로 어리거나 젊은 트로트 가수들이 주요 콘텐츠 공급원으로서 끊임없이 유입, 양성되고 있는 게 작금의 시장이라는 얘기다. 때문에 대한민국 트로트 팬들(특히 중장년 여성 팬들)은 마치 귀여운 조카를 바라보듯,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 대하듯 자신의 스타를 챙긴다. 이 모든 현상은 3년 전 방영된 한 트로트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비롯됐다. 바로 TV조선의 야심작 '내일은 미스터트롯'이다.


줄여서 '미스터트롯'인 이 프로그램은 2020년 1월 초부터 그해 3월 중순까지 방영돼 코로나19로 메말라가던 시청자들 가슴에 불을 댕기며 전대미문의 사랑을 받았다(시청률은 최고 35.7%를 찍었다). 당시 사랑을 준 사람들은 앞서 얘기한 중장년층, 그걸 받은 이들은 거의가 아들뻘 청년들이었다. 이는 마치 아이돌에게 애정의 시선을 던지는 30~40대 팬덤의 샤이한 지지와 흡사했는데, 이 야릇한 현상을 이끌어낸 사람은 서혜진이라는 PD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사회 노령화와 실제 노령에 접어든 당사자들이 가진 문화적 수요의 규모, 생리를 눈여겨 본 끝에 '미스터트롯'을 기획한 그는 사실 같은 방송국에서 '내일은 미스트롯', '내일은 국민가수'까지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는 박수를 받으며 끝내 TV조선을 떠난다. 특정 조직에의 소속을 거부하고 자신의 제작사를 직접 차리는 독립적 행보를 펼친 것이다.


흥미로운 건 그가 제작사 대표가 되어 처음 기획한 프로그램이 MBN의 트로트 오디션 '불타는 트롯맨'이라는 사실이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서 대표가 퇴사한 회사에서도 이틀 뒤('불타는 트롯맨'은 지난해 12월 20일 첫 방송 됐다) 비슷한 콘셉트를 가진 오디션 프로그램을 선보였으니 다름 아닌 '미스터트롯'의 후속 시즌인 '미스터트롯2-새로운 전설의 시작'이었다. '미스터트롯2'의 사회자인 김성주의 말처럼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오리지널 트롯 오디션"을 만든 사람이 또 한 번 새 판을 짜면서 그 획을 연장시킬 만한 구도가 자의든 타의에서든 마련된 셈이다.



겉으로만 보면 트로트라는 소재만 같지, 엄연히 다른 방송국에다 콘셉트도 제각각일 것 같다. 그런데 따져보면 두 프로그램은 사실 그리 멀지 않은 사이다(심지어 프로그램별로 아내(장윤정)는 심사위원을, 남편(도경완)은 사회를 본다). 다른 듯 같다. 일단 프로그램 모토부터가 그렇다. "인생을 바꾸고 싶느냐"라고 물으며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설정(공중에 메단 투명 머니볼과 운동복 복장)을 인용한 '불타는 트롯맨'의 친자본주의적 콘셉트는 "준비된 자만이 승리를 쟁취한다"라고 단언하며 시작한 '미스터트롯2'의 무한경쟁 논리와 쌍곡선을 이룬다. 주제곡도 전자가 돈을 향한 '불타는'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 박현빈의 '앗 뜨거'를 택한 한편, 후자는 승리를 향한 단 하나 신념을 드러내기 위해 박성철의 '무조건'을 선곡했다.


닮은 듯 다른 건 출연진을 조별로 나눈 데서도 마찬가지인데 '불타는 트롯맨'이 1~3년 차 트로트 신인과 이미 지역 무대에 오르고 있는 프로들(10조의 경우 구성자들 트로트 경력만 137년이라고 한다), 뮤지컬/팝페라/판소리 등 다른 장르 음악가들을 묶어 조 편성한 것에 맞게 '미스터트롯2'도 타 트로트 오디션에서 나름 성과를 거둔 인물들을 모아둔 우승부와 사실상 프로 활동을 하고 있는 현역부, 이름부터가 다른 장르 출신임을 안고 가는 타장르부를 꾸몄다. '미스터트롯2' 측은 여기에 아이돌 생활 경험이 있는 아이돌부,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출연자들이라는 뜻의 나이야가라부, 누구보다 독하게 연습해온 독종부, 그리고 벨리댄스/발레/비트박스 등으로 세계를 넘나들며 활약 중인 국가대표부를 만들어 시청자들이 쉬 채널을 돌릴 수 없도록 했다.


카메라 동선까지는 아니어도('불타는 트롯맨' 쪽이 더 현란하고 파격적이다) 두 방송의 미묘한 차이는 심사 방식과 상금 제도에도 있다. 특히 뉴트롯맨과 인생역전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불타는 트롯맨'이 예심 대상 100명(총 10조로 구성)을 놓고 국민 대표단 200명을 동원한 모습은 따로 참신하며, 기본 상금 3억 원을 천장에 매달고 '무제한 증액' 방식을 룰로 잡은 것도 우승상금 5억 원을 시작부터 못 박은 '미스터트롯2'와 차이를 둔 부분이다. 퍼포먼스를 펼친 가수가 심사위원 모두의 선택을 받은 것 역시 결국엔 같은 행위임에도 '불타는 트롯맨'은 '올인(심사위원 한 명이 버튼을 누르면 10만 원, 13명 전원이 누르면(즉, '올인'하면) 총액의 두 배인 260만 원이 상금으로 적립된다)'으로, '미스터트롯2'는 '올하트'로 달리 쓴다.


이처럼 각자 분야 및 언더그라운드에서 날고기던 이들이 트로트라는 장르 아래에서 부와 명예를 놓고 또 한 번 살벌한 경연을 벌이게 됐다. 심사위원단과 무대/대기실 출연자, 방청석 반응을 교차 편집으로 비추는 '예능'적 연출, 출연자들의 외모와 이름을 두고 잡담을 나누거나 저들의 실력을 두고 의견을 나누는 심사위원들의 모습, 도전자들의 노래에 맞춰 율동과 몸개그를 펼치는 심사위원들의 개인기(?)는 이제 익숙하다. 가끔씩 저 사람이 트로트와 무슨 상관인데 심사를 보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들고, 그런 사람들의 자격을 의심케 하는 허탈한 심사평도 들리지만 '불타는 트롯맨'의 조항조, 윤일상, 윤명선이나 '미스터트롯2'의 김연자, 진성의 것들처럼 진지하게 귀 기울일만한 평가도 분명히 있다. 또 약속이나 한 듯 근래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던 인물들이 두 프로그램에 똑같이 심사위원으로 등장한 것에 불편을 느끼는 사람들도 없지 않을 터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 오랜만의 '더블' 트로트 오디션이 다시 사랑받고 있는 이유라면 역시 도전과 좌절, 희망이라는 삶의 축소판을 특정 음악 장르를 통해 즐길 수 있기 때문일 게다. 그 사이 두 프로그램이 다르지 않을 방송 취지, 즉 심사위원 이석훈이 말한 대로 "결이 다른 스타"가 될 "원석" 발견은 자연스레 이뤄질 일이다. 부디 참가자 모두의 행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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