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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Dec 14. 2022

비틀스를 닮은 화보같은 음악

좋아서 하는 밴드 [우리가 계절이라면]


왜인진 모르겠지만 그들은 비틀스 같다. 4인조 밴드 편성에 멤버 모두가 싱어송라이터(자신이 만든 곡은 스스로 부르는!)라는 표면적인 이유들을 빼고도 그들을 비틀스와 비교할 수 있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을 것만 같은 느낌. 밴드 음악에서 드럼과 건반 악기들에 자리를 내주기 일쑤인 퍼쿠션, 아코디언을 메인 악기로 쓰는 탓일까. 우리에겐 간접 이미지이지만 그 자체가 자유와 여유, 그리고 낭만의 상징이 된 집시의 정서가 이 밴드의 음악엔 있다. 길을 잃기 위해서 길을 떠난다는 사유, 달을 녹인다는 발상이 그냥 무턱대고 나온 건 아닐 거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길을 잃기 위해서'는 베이스를 맡은 백가영의 것이다. 곡은 단도직입인데 나중에 나올 코러스 멜로디를 최성은의 바이올린이 메인 테마로 먼저 터뜨리기 때문이다. 평범한 백가영의 목소리와 비범한 백가영의 작곡력이 얌전히 공존하고 있다. 다시, 나는 백가영을 편애한다. 이는 'Hey Jude'보단 'Across the Universe'를, 그것들보단 'Here Comes the Sun'을 더 좋아하는 것과 같다. 물론 여행스케치식 메시지와 브로콜리너마저의 감성이 어울린 '잘 지내니 좀 어떠니'를 즐겨 듣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아코디언과 피아노를 다루는 안복진은 '뽀뽀'라는, 제목만으로도 설레는 곡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따뜻한 트롬본 솔로 밑을 휘젓는 베이스 라인은 '잘 지내니 좀 어떠니'의 후반부 연주와 더불어 베이시스트 백가영을 평가할 만한 부분이다. 인디적인 감성이란 것이 정말 있다면 '너 때문이야'는 그 감성을 온전히 표현한 대표곡이 될 것이다. 어쿠스틱 기타를 맡고 있는 손현의 작품으로 비틀스의 'Rubber Soul' 시절이 연상되는 코러스 라인은 특히 아름답다. 여기서 과거 통기타 판매고를 앞지른 우쿨렐레가 처음 등장하고 있다.


우쿨렐레 연주는 좋아서하는밴드의 '링고 스타' 조준호(퍼쿠션)가 한다. 그의 첫 곡은 존재의 이름을 쫓던 하이데거 마냥 감정의 이름을 노래한다. 모종의 사유는 결국 사랑이라는 다소 뻔한 결론에 이르러 허탈하긴 해도 연인의 왼쪽 눈을 바라보며 설레는 그 소박한 감정은 끝내 아련한 무명無名으로 남는다. 밴드를 왜 하냐고 물었을 때 "좋아서 한다"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


앙증맞게 일관할 것 같던 안복진은 두 번째 자신의 트랙에서 꽤 성숙한 소리를 들려준다. 제목도 시적인 '달을 녹이네'에선 루빈이라는 기타 연주자가 등장하는데 그의 담담한 솔로는 바닥을 기던 곡의 감정선을 조용히 끌어올려 구체화 시킨다. 인간의 감정폭을 전달하는 데서 특효를 발휘하는 벤딩, 비브라토 주법을 내가 사랑하는 이유가 그 조용한 솔로엔 있다.



동요라 불러도 손색없을 쉬운 왈츠곡 '10분이 늦어 이별하는 세상'. 안복진의 피아노와 아코디언 소리는 백가영 곡의 숨통이 되어 준다. 손현의 마무리는 스산하지만 그것은 어떤 면에서 조니 미첼 같기도 하다. 이들의 음악에 전반적으로 드리워진  수수한 동심은 손현과 안복진이 함께  '샤워를 하지요'에서 절정에 닿는다.  


멤버 한 명 한 명의 곡이 맞춰져 나가는 앨범의 형상을 제목으로 택한 듯 '퍼즐조각'은 백가영의 순수한 느낌을 좀 더 극적인 곳으로 이끈다. 여기서 안복진의 아코디언은 앨범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멜로디와 리듬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곡의 주인 조준호는 두 트랙 뒤 브라질 탬버린 판데이로까지 동원한 '보일러야 돌아라'에서 이 곡과는 전혀 다른 리듬 세계로 우리를 안내할 것이다.


어느 정도 꽉 찬 느낌이 전해져오기 시작할 열 번째 트랙을 지나도 이들은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팻 메시니의 'Last Train Home' 마냥 들뜬 리듬에 담긴 온 세상이 뿌옇게 보이는 시력 0.4의 슬픈 사연은 앨범의 늦은 하이라이트다. 각자의 독백 같은 '네가 오던 밤(손현)'과 'Lilly(조준호)'는 그 하이라이트의 안착을 돕는 날개라면 맞을까.


화보라는 개념을 남용하던 시대에 진짜 화보를 재킷으로 삼은, 그런 화보 같은 음악이 담긴 좋아서하는밴드의 1집은 그렇게 환하게 밝혔던 가정假定의 네온을 끈다. 무슨 뜻일까. 우리가 계절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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