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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Feb 21. 2023

'무명가수에서 유명가수로' 이승윤의 두 번째 음악 여정


'싱어게인 우승자'로 대중에게 알려질 무렵 이승윤은 이미 데뷔 10년차 싱어송라이터였다. '흩어진 꿈을 모아서'를 쓴 17살 때부터 따지면 15년차다. 오디션 기간 동안 꼬리표처럼 따라다닌 무명가수에서 그는 오디션 우승 뒤 하루아침에 유명가수가 됐다. 2011년 'MBC 대학가요제' 본선 진출 이후 몇 장의 싱글과 미니앨범을 내고 오디션 프로그램, 인디 밴드 활동을 지나 2021년 11월 24일 자신의 첫 솔로 앨범 '폐허가 된다 해도'를 발매한 이승윤은 마침내 음악을 하기 위한 제대로 된 환경을 맞게 된다.


삶을 공허에게 전부 빼앗기기 전에 선수를 치자. 앨범이나 일단 내자. 그리고 그 앨범에 영혼을 전부 다 남김 없이 쏟아내보자. 그 이후에 내가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이야기하자.

'꿈의 거처' 소개글 중에서


 다짐을  것이 2022 4. 이후 9개월 여동안 그는  번째 앨범을 구상하고 구현해나간다. 작품엔  12곡이 담길 예정이었는데, 개중엔 기존에 발표한 곡들도 있었다. 누군가의 앨범을 만날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역시 커버 아트워크. 별이 박인 우주에  나침반  개가 부서지고 있고, 사막 같은 지상 위엔 망가진 기차와 누운 닻이 무기력하게 러져 있다. 그리고 모래 속에 반쯤 잠긴 나침반과 부서져 떨어진 나침반 사이로 날카로운 유리 파편을 줄에 매달아 끄는  남자가 힘겨운 걸음을 옮기고 있다. 불안한 '꿈의 거처' 표현한   초현실적 그림은 며누(myeonoo)라는 그래픽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의 작품이다. 사전 회의에서 몇몇 후보작들이 있었지만 이승윤의 취향에 부합한  며누의 것이었다. 며누는 "엉뚱한 상상력에 기반해 세상 만물을 주제로 괴이하면서도 친숙한 일러스트를 만드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는 이승윤의 노래만을 단서로 삼아 선공개 싱글  장과  번째 정규 앨범 아트워트에까지 자신의 세계를 남겼다. 작가에게  어떤 주문도 하지 않은 앨범 주인은 만든 사람 고유의 창작물로 완성된 며누의 그림을 매우 마음에 들어했다.


이론에 얽매이기 전 자유로운 곡 쓰기를 먼저 안 탓에 이승윤의 음악은 언제나 벌판 위의 야생마다. 자칭 '맥시멀리스트'인 그는 또한 두터운 참여진을 등에 업고 광활한 편곡을 즐기는데, 이력에서나 장비에서나 전보다 나아진 지금이 반영된 사운드의 질(quality)은 확실히 이전을 능가하고 있다. 거기엔 '비싼 숙취' 같은 우직한 록 사운드도 있지만 아무래도 이승윤의 지향점은 극적인 스트링에 더 많은 지분을 두고 있는 듯 들린다. 실제 그는 오래전부터 스트링이 곁들여진 음악을 많이 들었고 그걸 좋아했고 그래서 자신의 곡을 떠올릴 때도 근저엔 웬만하면 스트링을 배치한다. 어릴적 그를 지배한 스트링의 이미지는 그토록 강렬한 것이었다.



이승윤은 신작을 '조희원과의 공동 작품'이라고 했다. 조희원은 그간 이승윤의 음악을 꾸준히 따라온 사람에게라면 그리 낯선 이름은 아니다. 그 자신도 송라이터 겸 프로듀서인 조희원은 밴드 알라리깡숑에서 이승윤과 함께 활동했을뿐더러 악기와 믹싱, 작곡 등으로 이승윤의 솔로 작업까지 쉬지 않고 도왔다. 이승윤이 굳이 이번 앨범을 그와의 공동 작품이라고 한 건 보통 밴드에게 건네기 전 자신이 전부 그리던 음악적 밑그림을 이번 작품에선 조희원과 함께 그렸기 때문이다. 이승윤은 그래서 이번 앨범이 조희원의 프로듀서 데뷔작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더불어 자신의 음악 동지가 가진 음악 견해를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길 원하고 있다. 과연 '시적 허용' 같은 곡이 품은 잔잔한 격조나 이승윤이 창작자로서 가장 뿌듯해한 마지막 곡 '애칭'에서 두 사람의 호흡이 일궈낸 깊이가 느껴진다. 혹 '애칭'에서 비틀즈 느낌을 따로 받았다면 당신은 이 앨범을 제대로 들은 것이다. 왜냐하면 2집 데모를 만들던 때 비틀즈의 'Let It Be' 앨범 제작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비틀즈: 겟 백'을 본 이승윤이 한동안 비틀즈 노래를 다시 들었기 때문이다.


이승윤의 가사는 독백하는 대화다. 그는 세상과 담론을 나누는 방식으로 노랫말을 쓴다. 의견을 내고 고백하고 지적한 뒤 반론한다. 보통의 삶, 보통의 경험, 보통의 감정을 느끼다 그 이면이 궁금해져 얻은 것들이 아이디어로 자리한 이번 앨범에서도 그 성향은 얼추 같다. 심지어 앨범에서 유일하게 타인(시인 최지인)이 쓴 글인 '1995년 여름'마저 "염세주의와 이상주의를 동의어라 생각하는" 이승윤의 지론에 부합하고 있는 것은 꽤 일관되게 그가 자신의 철학과 정서를 유지, 주장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단, 작사가로서 이승윤은 누군가를 특정하는 이야기엔 거리를 두는 편인데, 이승윤의 시는 그저 자신이 겪은 경험을 씨앗으로 삼아 그 씨앗이 상상이라는 열매를 맺을 때 진짜가 되고 현실이 된다. 1집 곡 '교재를 펼쳐봐'의 쌍둥이 노래 '영웅수집가'의 "진열장에 놓을 영웅" 같은 표현이나 '말로장생'의 3단 라임(칼럼이 된 도시 / 탄두가 된 토씨 / 포로가 된 서시)이 그렇고, 특히 '한 모금의 노래'가 풀어내는 첫 네 소절은 잔나비의 최정훈에 대적할 스토리텔러로서 이승윤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보통 이승윤은 작곡 때 뼈대는 외롭게 구축하고 살을 붙일 땐 밴드를 동원한다. 그러니까 '혼자 모든 걸 해내는 천재'라는 허상보단 '좋은 걸 함께 잘 만들어내는' 쪽을 그는 선호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음악엔 어떤 왁자지껄함이 있다. 2집의 경우 1집 때 밴드 멤버였던 이정원(기타)과 지용희(드럼)가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반면, 베이스 자리엔 송현우라는 인물이 들어왔다. 건반 주자 복다진도 멤버 중 한 명이다. 클럽 공연에서 이승윤과 만난 그는 '음악적'이라 할 수 있는 부분에서 거의 유일하게 이승윤과 접점을 찾을 수 있는 존재로, 가령 이승윤이 모양만 대략 잡아놓은 피아노 코드를 구체적인 형상으로 만들되 화성적으로나 기교적으로 "덜 훌륭하게" 만들어낼 줄 아는 융통성까지 지닌 연주자다. 이승윤은 음악가로서 복다진을 조희원만큼 신뢰하는 듯 보였다.

2집에 참여한 뮤지션들 면면에선 잠비나이의 이일우도 빼놓을 수 없는데, 이승윤은 자신의 보컬 스타일을 가리키는 듯한 '야생마'라는 곡에서 신스틸러로 활약한 이일우의 태평소와 피리가 "노래 전체를 잡아 먹어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데모 완성 단계 때부터 그를 섭외하리라 생각했다고 한다. 당연히 섭외는 성공적이었다.



이승윤의 음악은 '코미디여 오소서'에서도 들려준 바, 비극을 전시하며 희극의 속살을 드러낸다. 신나는 디스코 위에서 냉소를 춤추는 '누구누구누구'가 그 좋은 예일 것이며, '폐허'에서 '꿈'으로 이어진 1집과 2집의 상징적 서사에서도 그 역설은 유효하다. 이승윤은 1, 2집을 가르는 두 단어의 서사가 사실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나에게 말했다. 자신이 '꿈의 거처'라 부른 것들이 언젠간 폐허가 되리란 건 자명한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필연적 폐허가 주는 압도적 공허함보다 현재의 거처를 소망하는 일에 더 집중하자"는 생각으로 그는 두 번째 큰 걸음을 내디딘 참이었다. 이런 문장은 어떤가.


완벽함이란 불완전 할 때가 진짜다(True perfection has to be imperfect).


트래비스(Travis)와 더불어 이승윤에게 큰 영향을 준 오아시스의 'Little by Little' 가사 중 일부다. 흥미롭게도 이승윤은 자신에게 음악가란 직업을 마음먹게 한 저 곡의 노랫말처럼 이번 앨범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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